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1.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성령에 대한 증거로 이어진다.
복음의 전파내용은 하나님의 사랑을 포함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을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전도가 이 둘을 빼놓고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전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홍보일 뿐입니다. 전도는 교회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원리를 전하는 것이 진정한 전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을 증거하였다면, 이제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복음은 그 둘에 대한 증거로 끝이 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충만’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충만에 대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한다는 것에 대해서 주저함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성령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혹은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하기를 중단해 버립니다. 또한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을
말했다면 그 다음에 말할 수 있는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전도입니다.
2.성령충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해 줄 수 있다.
성령충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성경에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말씀이 단지 믿는 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전에 이어지는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어떤 맥락에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하는지를 본다면 이말씀이 분명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증거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잠자는 자는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에게 증거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먼저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세월을 아끼라고 하십니다. 악한 때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촉구를 우리는 믿지 않는 자에게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지혜없는 자가 되고, 세월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안좋은 감정이 있으세요?”
그런 감정이 있는 지를 물어보고 그 대답을 기다린 다음에, 성령의
충만을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에 대한 고민 속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장면을 발견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말씀은 먼저 주의 뜻을 이해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에 그 다음 구절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당신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 혹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때 술
취하게 됩니다. 어떤 감정과 괴로움 속에서 술을 먹게 되지 멀쩡한 정신으로는 술먹지 않습니다. 괴로움이 있을 때 감정이 있는 것이고 성령의 충만은
그때 필요한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성령충만은 믿는 자들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에게 성령충만을 말하는 것은 어떨까요? 너무나
쉽고 간단하며 당연한 이야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믿지 않는 자에게도 성령충만을 말하는데 믿는 자에게는 얼마나 분명하게 성령충만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도 성령충만은 술취하는 자, 어리석은 자, 잠자는
자에게 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 성령충만은 믿는 자에게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찬미와 찬송과 감사로 이어집니다.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기에서 나타난 일들을 성령충만 없이 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 화답하며, 찬송하며, 감사하며, 피차 복종한다는 것은 술취함이 아닌 성령충만함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도
‘성령충만을 받고 계신가요?’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성령님은 당신이 더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전에 성령충만을 받고 있어도, 혹은 받고 있지 않아도
다 해당되는 말을 해주게 됩니다. 성령충만을 받고 있다면 더 그 충만함을 받으라고 격려하는 것이고, 받지 않고 있다면 받으라고 말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4.우리는 성령충만을 증거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자.
우리는 이러한
성령충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복음에 대한 증거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구원, 그리고 성령님의 충만이라는 삼위 일체적인 복음전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술취하지
말고 성령충만을 받으라 라는 구절과 연결되는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회심하기 전, 어거스틴은 자신의 죄문제로 인해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끊어버리지 못하는 많은 죄와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날 그는 가까운 집에서 나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라는 가사였습니다. 그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시선이 닿는 첫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때 그가 본 말씀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로마서 13장 13-14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그는 오랜 방황을 끝냈습니다. 그순간 그는 인격적 변화를 경험했고
세상에 대한 야망을 포기했습니다. 비로소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던 삶이 끝이 났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도 우리에게 주님의 나라로 와서 성령과 동행하기를 촉구합니다. 그러한 말씀을 듣고 우리가 먼저 반응하고
그 반응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권할 때에 주님은 늘 목말라 하며 늘 괴로워 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영혼의
생수를 찾아 주님께로 나아올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사모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전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더욱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