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13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 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발하니
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1. 성경은 교리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번 한달 동안 성경에 대한 비전설교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성경말씀을 잘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절대로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이해하는 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가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논에 모를 심을 때 열을 맞추지 않고 한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모양도 안좋고 수확도 거두기 어렵겠습니까? 밭에 작물을 심을 때에는 더합니다. 가로 세로를 맞추지 않으면 나중에 그 작물들은 관리도 어렵고 수확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성경은 교리를 이해할 때에 비로소 성경읽기가 의미가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리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허물과 범죄함을 의미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우리는 성경말씀을 보지만 교리를 알때에 그 의미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리에서 죄의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않는 것은 허물과 범죄함으로 나뉩니다. 허물과 범죄가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그 허물과 범죄를 발견합니다.
“12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13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 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발하니”
여기에서 허물은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범죄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물과 범죄는 그냥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인 죄의 종류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것이 우리와 함께 있고 그 죄를 우리가 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내용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포학과 패역과 거짓말을 발하는 것이었습니다.
3. 하나님은 이러한 허물과 범죄를 분노하시기 때문에 성도는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죄악을 심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허물과 범죄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 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결국은 하나님이 친히 감찰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그 행위대로 갚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죄인된 자들은 죽으면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서의 심판을 이루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그 심판을 이루셔서 대적에게, 원수에게, 섬들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범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는 자들은 선처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시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를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회하며 돌이키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죄가 있는 곳에는 그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한 구원도 있는 것입니다.
“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주님은 그 구속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를 믿으며 의지하여 죄를 떠나는 자들에게 구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4. 우리는 모든 허물과 범죄를 버리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법의 심판내용 중에는 집행유예라는 것이 있습니다. 징역형을 받아도 집행유예가 있으면 그 기간동안은 범죄를 하지 않으면 징역형도 없애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행유예기간동안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원래 주고자 했던 징역형을 부과하게 됩니다. 또한 다른 범죄를 저질러도 역시 원래의 징역형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집행유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계속 범죄의 삶을 살게 된다면 우리를 용서하시는 그 용서하심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또한 구속자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죄함을 버리기 위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됩시다. 그럴 때 주님의 용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놀라운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