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입어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15 지금 여러 박사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로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능히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16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1. 영어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내용을 읽고 그 의미를 깨닫게 하는 도구입니다.
영어가 비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영어를 듣고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읽고 쓸 수 있게 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읽고 쓰는 것이 더 기본적이고 익숙한 면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읽지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읽지 못하니까 쓰지도 못하고 거기에 듣거나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단지 영어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외국어를 생각해보아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어나 중국어를 읽거나 쓸 수 있습니다. 혹은 듣거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언어를 잘 하는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사람으로서 일본어나 중국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지만 영어를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잘 하지 못합니다. 영어가 기본과목으로써 중고등학교 과정 중에서 다 배웠지만 일본어나 중국어를 하는 것 만큼은 잘 하지 못합니다. 그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의미를 깨닫는 것에 집중을 하지 않고 성적을 올리는 것에 목표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영어과목을 공부한 것 뿐입니다. 예를 들면 체육과목을 들 수 있습니다. 저희 공부할 때에는 체육과목이 있었는데 체육과목을 어떻게 점수를 매겼는가하면 필기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체육교과서를 잘 외워서 시험을 보기만 하면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체육을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영어도 영어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영어교과서에 나온 것에 대해서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아무리 영어를 공부했었어도 영어성적이 좋았다 하더라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 다니엘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내용을 읽고 그 해석을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다니엘이 처한 상황에서 우리는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해석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어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활용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5지금 여러 박사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로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능히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벨사살왕은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때부터 왕을 섬기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그 아들 벨사살 왕때에도 왕을 모셔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재능이 다니엘에게 있었는데 그것은 해석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요구되었던 일은 그 지혜를 활용하여 주어진 글을 해석하는 일이었습니다. "16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다니엘이 이일을 잘 해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일을 잘해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석을 정말 벨사살왕에게 알게 하였습니다. 그 해석 속에는 하나님이 벨사살 왕에게 하고자 하시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 뜻을 다니엘은 잘 풀어서 설명해 주었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 잘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의미를 깨우치는 일이 우리로 하여금 그 언어를 잘 공부하게 합니다.
3. 하나님은 그 뜻과 계획을 전하여 줄 그 누군가를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영어를 잘 배워서 책을 읽으려고 하고, 영어를 잘 배워서 영화를 보려고 하고, 영어을 잘 배워서 신문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 영어공부가 의미가 있습니다. 해석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쓸모가 있습니다. 남들은 해석하지 못하는 것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남들은 쓰지 못하는 것을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영어를 통해 해석을 알게 하고 그 해석을 전해줄 수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이것은 다른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바울은 그가 헬라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행21:37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하나님은 만약 우리가 모국어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를 할 줄 안다면 그것을 통해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외국어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준비될 수 있다면 무엇인가를 말하거나 들려줄 수 있습니다. 혹은 이해할 수 있고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4. 우리는 영어를 비전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됩시다.
영어를 단지 성적향상을 위한 도구로만 삼는다면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는 우리들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영어가 단지 한다는데 의미를 두는 과목이라면 다른 일에 바쁜 우리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어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준비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해외로도 보내실 수 있고, 우리를 외국인에게로 보내실 수 있으며, 우리를 영어공부로 힘들어하는 자녀들이나 혹은 그 어떤 사람에게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만남이 결국에는 우리를 통해 행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일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공부해서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마십시오. 혹은 공부한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비전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애쓰는 시간들입니다. 그런 시간들이 우리로 하여금 좀더 인생을 넓게 보고 준비하며 하나님의 일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영어가 우리 교회의 비전인데 이러한 비전을 이해하며 함께 동참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함께 나누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a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