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의 모습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여러 가지 출처 속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알고자 합니다. 때로 그런 정보들은 유익하기도 하지만 유익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맞을 때도 있지만 맞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는 오직 하나님만이 정답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통한 대답이 아니라면 그 모든 제안들은 무의미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봐야 합니다. 성경만이 유일한 해답이며 온전한 해답입니다. 신앙에 대해서 만이 아닙니다.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도 역시 성경은 유일하며 온전한 해답이 됩니다. 특별히 가정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자 할 때에 우리는 사회학이나 인류학, 혹은 교육학을 참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르치심 속에 가정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가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가정의 시작과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해서 가장 태초의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 가정은 어떻게 시작되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가정이 시작되고 남편과 아내가 생기게 된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독처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hayah’라고 하며 존재하다, 있다 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이미 혼자서 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지만 그 일도 역시 혼자서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로움을 하나님은 좋지 않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와의 창조의 목적을 단지 아담의 외로움과 적적함을 위해서만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혼자 창조된 아담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한 사람이 에덴동산에 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시기에 좋지 않았고 이미 계획된 대로 그를 돕는 배필로서의 의미로 하와가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다른 존재로 같은 남자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남자의 존재는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갈등과 다툼을 불러 일으킬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에 연합할 수 있는 존재로서 여자를 만드시고 하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경쟁하고 다투는 대상이 아니라 아담과 연합하고 그와 함께 있어서 그를 말그대로 돕는 자, 돕는 배필, 히브리어로 ‘ezer’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1장 8,9절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이로써 남자가 여자의 의미를 다시 기억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의 의미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고전11: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로써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남자는 여자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는 남자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관계, 이를 가정이라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로 연합된 부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 부부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이끌어서 데리고 오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22절은 결혼식의 의미를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혼식의 모습입니까? 모든 동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와에 대한 결혼서약을 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여기서의 남자는 히브리어로 ‘`ish’이고 여자는 히브리어로 ‘`ishshah’입니다. 남자의 꼬리표가 붙는 것이지요. 이로써 남자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돕는 배필을 삼게 되고 여자는 남자에게로 이끌려서 그를 돕는 자가 됩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부인 것입니다.
이러한 부부의 모습을 우리가 삶 속에 이루어갈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나는 자녀들도 미래에 자신들이 만들어갈 가정에 대한 아름다운 이상과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남편은 아내를 돕는 배필로 받아들여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가정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부부는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이 아내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해보십시오. 아내가 할 일이 없어집니다. 경제적인 부분에, 신앙적인 부분에, 관계적인 부분에 기타 여러가지 사회적인 부분에 아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독처하려고 해 보십시오. 아내와 결혼한 것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끌어주신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또한 아내와 연합하지 않고 부모님과 연합하려고 한다든지 다른 친구나 이웃이나 직장동료와 연합하려고 한다든지 하면 그것은 온전한 부부의 모습이 아닙니다. 24절을 보십시오.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남자는 아내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룹니다. 결코 아내를 제외하고 홀로 설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가정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내도 남편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배필입니다. 남편을 아내가 도와주려고 하지 않으면 결코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아내가 나름의 취미가 있고 나름 바쁘고 나름 피곤하고 나름의 독처하는 다른 일이 있어서 그 일에 심취해 있어서 남편은 돕지 않는다면 결코 아내는 자신을 남편에게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아내들은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되지 못할까요? 남편이 아내를 돕는 배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로부터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아내가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것이 있을 때 결코 도와주지 못합니다. 부끄러움 뿐만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감정이 있을 때에도 역시 도와주지 못합니다. 아니 도와주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아내도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있지만 감정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연합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서 우리는 태초의 부부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음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다시 성경의 가르침을 받고 의지하고 순종할 때에 아담과 하와가 이루었던 온전한 연합을 다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할 수 있고 아내는 남편에게 내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연합할 때에 하나님은 그 가정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연합을 이룬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성경에서 찾아볼 때 우리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연합된 모습으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바울은 무한한 사랑을 받았고 무한한 감사를 돌렸습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둘이라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그런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보십시오. 그러면 자녀들도 주님 안에서 더욱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안에서 하나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연합이 힘들더라도 그 연합을 목표로 해서 더욱 노력해서 점차 하나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가정에 태초에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그 온전한 사랑과 평화가 다시 넘쳐날 것입니다.
*구성
1.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배우자를 주시면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2. 그 가정은 독처하지 못하도록 돕는 배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 사람은 자신의 돕는 배필을 통해서 온전해 질 때에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4. 우리는 배우자와 온전한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 몸을 이루며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