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위축과 실족함은 여러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사명감당하다가 실족하고 성령충만하다가 실족하고 구원확신 속에 있다가도 실족합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이고 흔한 실족은 구주믿음에서 실족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구주로 믿고 있었다가 어떤 이유로 그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믿음이 오락가락한다고도 합니다. 믿음이 흔들린다고 하기도 합니다. 믿을 때가 있고 믿지 않을 때가 있고 어떤 때에는 굳게 믿음이 생기다가도 어떤 때에는 전혀 믿을 수 없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주믿음 단계에서 실족하는 것입니다.
때로 전혀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었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당황을 넘어서 분노까지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자 반역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오래 다녔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교회봉사를 많이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던 사람이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실족한 사람들은 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버릴 때에는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어떤 다른 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경우보다도 더 불신앙의 골이 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과연 이전에 가졌던 믿음을 다시 갖게 할 수 있을까요? 실족한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주어야 그 실족함으로부터 다시 굳건한 믿음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2.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그 하나님을 붙들어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일어납니다.
믿음의 구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상(事象)이나 명제(命題) ·언설(言說) 등을 적절한 것으로서, 또는 진실한 것으로서 승인하고, 수용하는 심적(心的)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승인하고 수용하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승인하고 수용하고 의지하고 바랄 때에만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어떤 정지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쉽게 말해서 믿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믿고 싶어하고 믿기를 원하고 믿도록 노력할 때 비로소 믿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단순히 믿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에 떠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물에 떠있기 위해서 물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내어 밀고 있을 때에 그는 물에 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배는 물에 떠 있기 위해서 장력이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그 장력이 깨어지면 더 이상 배는 떠 있을 수가 없고 가라앉게 됩니다. 부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고기에게는 부력이 있어서 떠오르고 가라앉고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 부력을 잃어버린 다음에는 물고기는 죽어서 둥둥 떠나니게 됩니다. 물에 생명을 가지고 떠 있을 때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쓰레기가 되어서 둥둥 떠나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에게 향한 의지와 간구와 소망이 있을 때 그 믿음이 의미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향한 어떠한 소망이나 의지도 없는데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있으나 마나한 믿음이고 그런 믿음은 믿음도 아닌 것입니다.
3.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는 하나님을 붙들어서 구원을 얻고자 했고 그럴 때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의미를 귀신들린 아비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아비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그 아비가 자신의 믿음없음을 자각하고 도와달라고 외칠 때에 그에게 믿음이 의미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믿음이 없던 상태는 예수님에게 대한 아무런 소망과 기대와 간구도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상태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믿음을 갖도록 촉구하셨고 단지 ‘하실 수 있거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러한 말씀에 자극을 받아 그는 믿음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께 대해서 기대와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 어떠한 것이라도 불가능한 것이라도 바라고 구하는 것이 있다면 믿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믿음을 갖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자신을 믿는 그 사람을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그 당시 귀신들린 자들이 많고 그런 아들을 둔 아비가 많았지만 오직 믿음이 있는 이 아비만이 주님의 도우심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믿음이 있기를 원하는 자들의 믿음을 받아주시며 구원을 얻기를 원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주님은 믿음이 있기를 원하는 자들의 간구를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얻기를 원할 때 믿음을 갖게 되고 그렇게 믿음을 가지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전옥지기에게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싶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질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을 다시 가지게 됩니다.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있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십시오.
“5.하나님을 구주로 믿으시나요?”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당황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의 구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을 구주로 믿고 진정한 구원을 얻어보십시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알려줄 때에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심판에 빠지지 않고 다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족했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롭게 실족한 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다시금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