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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성숙] 42눅24; 16-31 확신을 잃어버린 자들을 돌이킴

42눅24 확신을 잃어버린 자들을 돌이킴_2


2011.11.13.주, 주일오후, [5충만]

*개요  {5복음서} <A적용> [3감정]-[5은혜]

1.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더 나빠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이자 변화의 과정이지만 이전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가 그 확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전에 가졌던 구원의 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구원의 확신이건, 성령충만이건, 사명감당이건 그 수준에서 실족하는 사람들은 그 한단계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불신앙적인 삶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실족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삶 속에서 이런 실족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떨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되지 않으려 할 때 더욱 강퍅해집니다. 다시 회복 될 수 있다면 누구나 예전의 신앙을 되찾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더 큰 신앙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어떻게 그 확신을 다시 갖게 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면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리고 실족해서 교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다시 교회를 나올 수 있도록 전도할 수 있으며 교회는 나오고 있더라도 확신을 잃어버려서 기쁨과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을 진정한 희락과 화평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혹은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 정말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를 물어봅시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6.구원의 확신이 있으신가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혹은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가 잃어버린 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구원의 확신을 다시 갖게 할 수 있을 까요?


2. 엠마오의 제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갇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렇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가 엠마오로 떠나간 두 사람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단지 확신만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수준이었다면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확신의 상실은 더 큰 절망과 낙심이 되어서 도저히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엠마오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도시인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 라는 촌으로 낙향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뒤로 한채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전의 구원의 확신에서 벗어나서 의혹과 의심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엠마오는 결코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의심과 절망의 이유를 우리는 성경에서 두 가지로 보게 됩니다.
“19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첫 번째, 그들의 절망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신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사형당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던 분이 어이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에 대한 실망감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다른 의혹도 있었습니다.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두 번째, 그들은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보았다고 말을 들었으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들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커다란 절망과 낙심과 의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그들의 고민을 보다 보면 공통적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확신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의심에 빠진 이유는 이루어지는 사건과 상황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선지자였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는 안된다는 자기 자신의 판단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판단했습니다. 또한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여인들의 증거와 예수님의 부활의 약속을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스스로 절망과 의심에 빠져들어 가고 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을 알게 하셨고 그럴 때 그들의 눈이 떠졌습니다.

윌리엄 폴 영이라는 사람이 지은 ‘오두막’이라는 소설에 보면 한 오두막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은 예수님을 보면서 이전에 생각했던 예수님의 모습과 사못 다르다는 것에 다소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과 말씀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예수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 중 매우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물위를 걸어서 호수를 건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처음 물 위를 제대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걱정했던 대로 그는 물 속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온 몸이 다 물에 잠겼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옆에 있는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있으니 물을 걷지 못하면 헤엄이라고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뭔가 밟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밟으며 조금씩 몸이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정말 완전히 수면위에 떠올라 물을 걸어서 호수를 건넜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은 결국 예수님께 대한 확신입니다. 예수님을 확신할 수 없다면 결코 구원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확신의 부족은 마침내 절망과 두려움으로 귀결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시한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다시 확신과 담대함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말씀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모습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비참한 죄인의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에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시는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모습임을 알려주십니다.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그 영광의 모습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았던 상황과 형편을 마음으로 다시 재구성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예수님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성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예언하신 것들을 다시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자들의 증언을 믿지 못하던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선지자들의 의미와 여자들의 증언의 의미를 다시 알게 하신 것입니다.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모든 성경은 결국 간접경험입니다. 그 간접경험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직접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간접경험을 거부해버리면 성경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증언의 목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간접경험도 여러가지가 통일된 대상을 증언하는 것이 된다면 역시 구체적인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예언하였던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서 그들의 증언이 사실임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4. 우리들은 자신의 생각에 갇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으로 눈을 떠서 구원의 확신을 다시 붙드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갇히지 않도록 예수님에 대한 설명과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의 행하신 일의 의미를 설명해 줄 때에 다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이전에 가졌던 구원의 확신을 다시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여기에 대하여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봅니다.
“당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희생하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져보십시오. (6구원확신, 2성자: 죽음부활)”

구원의 확신은 결코 인간의 감정과 지식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 설명을 다시 들려주며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할 때에 구원의 확신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될 때 실족했던 각 사람의 눈이 떠지며 그로 인해서 간접경험이 아닌 직접 경험으로 주님을 깨닫게 됩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설명하시던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심을 나중에 깨달은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설명하는 그 과정 중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실족한 자들이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여러분도 증거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정말 원하시는 구원의 확신을 다시 갖게 하는 일들에 동참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번 한주 자기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다시 갖도록 더욱 예수님께 집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바로 여러분과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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