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면서 기뻐하였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난 구멍을 보면서 다시금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정말 그 손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마 정말 그랬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은 분명히 자신의 나타나심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그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듣고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닷가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놀라운 은혜와 복과 능력을 주님으로부터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닷가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따라 나왔던 바로 그 삶으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 본다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저들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왜 제자들은 그들이 보았고 들었으며 깨닫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주님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왜 여전히 그들이 있는 곳은 바닷가일 수 밖에 없을까요? 왜 자꾸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일까요?
부활절을 보내고 이제 오후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우리는 어쩌면 다시 원래대로의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버리는 바로 그 삶으로 말입니다. 고난과 부활과 그 기쁨과 영광의 시간은 이제 다 끝나버렸고 우리는 다시 두려워하며 걱정하고 염려하며 근심함으로 결국에는 스스로 고기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 속에서 바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역시 바다는 우리를 두렵게 만들 것이며 때로 고기는 잡히지 않을 것이고 순간 순간 두려움과 싸우며 그렇게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지난 시절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많은 시간들은 과거의 경험일 뿐이고 그랬다는 것일 뿐이고 현재는 그렇지 않은 삶 속에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이 왕년에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과거에 교회봉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많이 개척했다고도 하고 자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외국인 선교사를 도와 전도에 힘을 썼다고 합니다. 기도를 많이 했고 성경을 많이 읽었고 말씀을 많이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우리는 무수히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묻고 싶습니다(실제로는 묻지 않습니다). “과연 당신은 지금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전에는 산과 들을 누비며 다녔지만 지금은 바닷가에 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전에는 믿음으로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였지만 지금 겨자씨 만한 믿음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전에는 직분과 사명을 가지고 살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책임이나 목표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바닷가로 돌아가 있습니다. 그들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했건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고기를 잡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될 어부일 뿐이었습니다. 과거에 예수님과 산과 들을 누비며 다녔던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은 한낱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고기를 잡는 자일 뿐인데. 그렇게 그들은 빛을 잃고 생명을 잃고 목표를 잃고 사명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모습 때문에 예수님은 그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그들 때문에 예수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그들을 만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 나타나심에 대해서 특별히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주님은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번째도 역시 앞서 나타난 첫번째, 두번째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항상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로 다시금 믿게 하고 계십니다. 믿지 못하면 또다시 믿게 하십니다. 그래도 믿지 않으면 한번 더 믿게 하십니다. 이제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믿게 해주십니다. 이번에도 역시 무엇인가를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앞서 나타나셨을 때에 평강을 주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세 번째 나타나셔서 역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주님은 저들에게 떡을 주시고 생선을 주셨습니다. 특히 그 생선은 주님의 말씀대로 잡은 153마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실질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축복 속에서 물질을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주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너무나 예수님의 공급하심이 필요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에게는 특별한 공급함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너무나 큰 상실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믿음에 있어서 많은 손실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으로 그 손실을 회복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바로 세번 주님을 부인했기 때문에 주님은 세번 시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비자와 대제사장의 종들 앞에서 세번 부인했던 것이 반해서 이제 다른 여러 제자들 앞에서 말하게 하십니다. 그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말하게 하십니다. 따로 불러 조용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 있는데서 다 듣도록 크게 말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그의 세번의 부인이 세번의 시인으로 변하는 순간이었고 이로써 베드로는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주님의 세번째 나타나심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님이 세번째 다시 나타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이 정말로 세번씩 나타나신 이유는 바로 그 다음에 있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여기서 ‘내 어린 양’이라고 표현된 것은 헬라어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ta arnia mou’이라고 합니다. 단수는 ‘arnon’이고 복수가 ‘arnia’입니다. 이는 우리말 성경에서는 명확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자세히 말하면 ‘내 어린 양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어린 양들을 먹이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신 일이었고 그것이 주님이 세번째 다시 나타나신 목표였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주님의 어린 양들을 생각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고기만 잡고 있지 말고 다시 돌아와 주님의 어린 양들을 돌아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구원받을 어린 양들과 구원받은 어린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바로 베드로가 해주기를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도피했던 베드로와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셔서 주님은 다시 그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돈을 원했습니까? 주님은 돈을 주셨습니다. 승리를 원했습니까? 주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평강을 원했습니까? 주님은 평강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죄악된 소원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님은 그 뜻 가운데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은 바로 우리가 주님의 양들을 돌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어린 양들을 치라”
그 부활하신 주님을 세번째 만나는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고난과 괴로움과 슬픔과 좌절의 시간을 다 보내고 이제 2008년도에 부활하신 주님을 또다시 만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우리에게 베드로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해야할 일이 남았습니까? 아직도 우리에게 도마처럼 여전히 주님께 대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아직도 우리는 다락방에서 문을 닫고 숨어 있던 제자들처럼 주님이 부활하심을 믿지 못합니까?
그러면 주님은 또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것이 세번째, 혹은 네번째, 혹은 다섯번째라도 주님은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가 먹여야 할 양들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양들을 돌아봅시다. 그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 나아갑시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아갑시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더이상 바닷가에서 고기잡지 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형제들과 자매들과 함께 주님의 나라를 이룹시다.
우리 모두가 그 나라로 돌아가 더욱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그 유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