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
이 세상에는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성공 속에는 여러가지 복이 있습니다. 그가 타고 난 복과 그가 자라면서 얻은 복, 그리고 그가 열심히
노력했을 때 따라오는 복이 있습니다. 이 모든 복에 대해서 사람들은 부러워합니다. 그 복을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우리가 복만을 바라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복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축복을 사모한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에게 주신 축복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다윗은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복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우리도 다윗의 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받은 축복은 세 가지였습니다. 다윗은
이 세 가지 축복을 받으면서 그 근원되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이 받은 첫 번째 축복은 ‘네 이름을 존귀케 하리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9절입니다.
“9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신다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이름이 존귀한 자의 이름이
되었고 다윗의 이름은 그 모든 대적을 물리치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신뢰성을 가졌고 그가 한다고
한다면 이루게 되는 결과가 따라왔습니다. 그러면 왜 그는 이러한 축복을 받았을까요?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가 기억나십니까?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이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괴로워했고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겨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썼고 결국 그 이름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의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히 여기게 해주시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과 함께 했던 기업가의
성공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던 운동선수의 성공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던 목회자와 평신도의 간증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던 그들의 진실한 신앙을 보면서, 우리는 그로부터 오는 축복보다 그렇게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때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두 번째, 다윗이 받았던 축복은 ‘너를 평안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1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하나님은
다윗이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늘 대적에게서 시달리던 다윗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얼마나 감사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항상 쫓기고 항상 숨어지내고 항상 도망치던 지난
날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고
하십니다.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하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자, 이제 아까처럼 이 축복은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이렇게 다윗을 평안케 하신다고 하셨는데, 다윗은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은 악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당장은 먹고 살아야 하겠고, 당장은 목숨을 부지해야 하겠고, 당장은 나부터 살고 봐야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쫓기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순간에서 그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삼상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그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을 죽이면 자기가 편할 수 있었는데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금하시는
일을 하면 편하지 않지만 그는 그렇게 편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기가 편하면서까지 하나님의 금하시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은 그를 편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이 편안의 축복을 얻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악을 행하는
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편안케 하셨습니다.
횡단보도가
저기 있을 때 굳이 이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육교가 바로 앞에 있는
데 그 밑을 꿋꿋이 지나는 사람들은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휴지통이 저기 있는데 그 휴지를 이곳에다
버리는 사람들은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나라를 여행을 했는데 그곳에 관광온 그 나라 사람들은
앉아서 오만 곳에다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서로들 그 쓰레기를 피해서 앉다보니까 결국에는 앉을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편안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편안하기를 원할 때 신앙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가깝고
시원하고 재미있고 인테리어가 잘되어 있고 편안한 곳을 찾아 헤메다 보면 결국 하나님을 안 찾는 것이 더 편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버릴 때, 모든 대적들이 다 좇아 옵니다. 그를 지켜주시던 그 하나님을 버리니 아무도 그를 지켜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편안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지켰습니다. 자신의 불편을 감수했을 때 돌아온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편안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축복의 이면에 있는 다윗의 복받을 행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복 그 자체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복을 얻게 되는가를 눈여겨 봐야 합니다.
세 번째, 다윗이 받은 축복은‘네 위를 견고케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16절입니다.
“16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의 집과 너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 속에서 그가 얼마나
기뻐했을 지가 눈에 선합니다. 그가 이러한 축복을 받은 이유는 그가 주님 앞에서 늘 보전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자신의 집과 자신의 나라를 뒤흔드는 삶속에서 살았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시글락에서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 했던 것을.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의지해서 쫓아가서 다 찾아왔습니다.
“삼상30:8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 앞에서 인도함을 받고자 했기 때문에 그 인도함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뻔 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그였기에 그의 집과 그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마음속에 와닿는 축복이었습니다. 다윗은 한순간에 무너질뻔한 자였기에
견고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견고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견고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실 견고해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분입니다.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합니다. 변화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자신의 가정이 올바르게 세워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늘 제가 달려가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네가 정녕 따라잡으리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래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기업을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참된 능력이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견고해지는 비결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대가 흘러도 이 원칙은 변함없습니다. 다윗이 견고해진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견고하게 세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다윗이 받은 축복만 보입니까? 다윗이
의지했던 하나님은 안보이십니까? 우리는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받은 이 축복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나단에게 이야기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 것처럼 다윗이 단순히 성전을 짓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복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위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겠다는 말도 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대신 이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비록 자신이 성전을 짓지 못했어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받으셨음을 깨닫고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복받을 일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잠8:17절의 말씀은 이러한 원리를 너무도 잘 보여줍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는 자가 그 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복받을 만한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복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능력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축복을 주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받은 축복만 보지 말고 다윗이 바라보았던 그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존귀케 해주시는 축복과, 평안케
해주시는 축복과, 견고케 해주시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더욱 진실히 의지해서 그분의 놀라운 축복의 능력을 온전히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