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43요 1; 9-14 세상에 심판과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예수님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3요 1; 9-14 세상에 심판과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예수님_1
2022. 12. 25. 주. 주일오전예배. 성탄절.
*개요: 성탄절의 예수님의 구원의 의미, [55동행]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탄의 기쁨과 함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구원의 가능성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나 전파되지 못했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파되었고 믿을 수 있는 이 시대에 태어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시대에 구원과 생명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빛처럼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지는 것처럼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이 되시고 생명이 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고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빛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오늘 말씀은 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참된 빛이요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고 할 때 그 빛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을 비추는 빛이 되셨습니다. 이 말은 이 빛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황을 들여다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면 그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그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모습은 겉으로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구원에 대해서 그 구원의 의미를 알고 영접하는 사람이 있지만 반대로 구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마음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듣지 못했으니 구원을 못 받았는가를 물어보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예수님의 구원은 듣게 된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구원의 원리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평하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 때 예수님의 구원은 불공평한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바로 이러한 각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반대로 이런 것들에 의심을 품지 않고 믿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왜 과거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 것일까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에게 빛을 비춰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 됩니다. 내가 그 구원을 받은 것이 감사한 것이지 그 구원을 누군가에게 주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감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 소식을 믿지 않는 자들의 모습은 안타까운 일일 뿐이고 그 감사를 거부하거나 구원을 부정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복음의 전파를 아쉬워하기는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구원의 소식이 전파되고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믿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내가 아는 한 사람을 예수님을 믿게 하기도 너무 어려움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도를 해 보면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감사한 정도인데 이전에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가능성이 있고 없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각자에게 증조 할아버지가 있고 고조 할아버지가 있고 그 이상도 있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과거의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다하는데 그 이상의 더 오랜 과거의 분들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구원의 소식은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나게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믿게 되기를 바라고 구원받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고 영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자신들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구원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구원의 원리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구원도 부인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논리와 이론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소식이 바로 심판과 구원의 의미를 이렇게 빛처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빛되신 예수님의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더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빛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비춰 주십니다. 그 길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11절부터 보십시오.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영접할 것이냐 아니면 영접하지 않을 것이냐에 따라서 그 다음이 결정됩니다. 영접하는 자들은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데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이는 말하자면 일종의 멤버쉽을 얻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멤버쉽을 주십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갔다가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으로의 시민권이 있어서 금방 입국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국민은 자기 나라에서 환영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도 역시 동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완성이 됩니다. 그렇게 그렇게 되는 원리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과 영접은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성탄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있습니다. 시므이와 안나가 있습니다. 이들은 그냥 예수님의 경험자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사모함과 간구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기뻐하고 반가워하며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과 기쁨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도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영접함과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주시는 구원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논리적이며 자연적으로 생기는 심판도 받아들입니다. 누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모두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누리는 구원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며 의지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조차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하고 확실한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의 현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뿐입니다. 모든 심판과 구원을 주님께 맡기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때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속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속에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성탄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깨닫고 이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귀한 심령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4극본적해석 1.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을 비추는 빛이 되셨다. 2. 그 빛을 통해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과 알고서 영접하는 자가 생겼다. 3. 우리는 영접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다. 4.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을 깨닫는 자들이 되자.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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