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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편안] 32욘 1; 1-5 폭풍 가운데서 잠을 자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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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1-5 폭풍 가운데서 잠을 자는 이유_1

  

 

  

2022. 9. 4. . 주일오전예배.

  

 

  

*개요: 요나서에서 신앙을 세움, 26심층, 42편안/52능력, 71충성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1: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1: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여러분께서는 다른 선지서들과 달리 요나서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거나 읽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요나서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유명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장면도 나오고 극적으로 니느웨가 회개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다른 선지서들과 달리 요나서는 요나의 선포와 예언보다 요나 자신의 삶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예언서로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한다면 요나는 삶을 통해서 증거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이 바로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회개를 외치는 그 자신이 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나서를 보면서 우리는 성도의 삶도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인생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성도도 삶을 통해서 그 신앙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하나님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성도가 위대한 일을 하지 않거나 대단한 사역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신앙과 생활이 하나님 안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 삶을 바라본 가족이 있고 자녀가 있으며 후대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신앙과 삶이 있었기 때문에 가정이 유지되고 교회가 세워지며 기업이 발전하고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식이 있을 때 성도들은 진실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삶으로 나타나는 신앙의 의미를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요나의 삶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서 회개를 외칠 것을 말씀하신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저 큰 성읍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선지자 요나에게 대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호세아와 같은 동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부흥과 발전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를 전파하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 그대로 니느웨가 아닌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출발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멀리 있고 전혀 니느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는 것이었고 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그 의도와 목적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일은 악한 것이었습니다. 중립적이거나 선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서 도망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지자로서 어떻게 하나님을 피해 도망갈 생각을 했을까요? 그러나 그는 정말 그렇게 도망가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도망가고자 할 때의 형통함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마침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고 그 배에 탄 자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정당한 배삯을 지불하였고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모든 것은 정상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요나의 삶을 보면서 현재도 그런 일들을 일어날 수 있음을 봅니다. 성도가 자신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지 못하면 아무 생각 없이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그 부르심을 알더라도 따르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각 사람이 어떤 분야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지를 깨닫고 그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모든 성도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럴 때 삶의 모든 것이 결실이 되고 열매가 되며 하나님 나라에 커다란 유익이 됩니다.

  

종종 선교사님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선교를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서 태권도를 가르치기도 하고 공부를 가르치기도 하며 영어나 한국어 등 언어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에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그 일에 수익을 추구하거나 확장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원래의 목표를 벗어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본질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그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아야만 근원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 되고 구원의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래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우리에게 부르심이 있고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잘 감당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유명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사소한 믿음의 일을 행하는 것으로도 그 역사 속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속에는 아주 단순한 일들을 순종함으로 감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시기 위해서 물을 퍼와서 나눠주라고 할 때 순종한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예수님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실 때 준비된 장소를 내어드렸던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요나의 힘든 시기를 사는 사람들이 되어 버립니다. 그가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붙드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스로 가는 배편을 못 구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풍랑을 만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1: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1: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하나님께서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고 큰 폭퐁을 일게 하시는 것은 요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요나와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커다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신을 불렀고 배를 가볍게 해서 폭풍에 뒤집어지지 않도록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배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사생결단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은 아닌가를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고 강력한 부르심을 주고 계신데 그것을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아무 생각도 없고 고민도 없이 무조건 좌절이나 절망이나 회피로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요?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이 왜 자신의 신을 부르고 자신의 물건을 버렸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폭풍의 위협 앞에서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을 통해서 생명을 구하기도 하였고 자신의 물건을 버리면서도 생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라는 배에서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하고 생명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만약 요나가 잠이 들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신인 하나님을 부르고 자신의 물건을 버리면서 생명을 얻게 되기를 위해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과 그 부르심을 피하고 있다는 생각 속에 있으니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속에 있는 마음은 하나님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었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잠을 자자고 했던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성도가 하나님을 피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열정과 에너지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입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풍랑을 즉시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성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우리는 선지자의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를 발견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 관계의 문제 속에서 더욱 나아가는 모습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면 현재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4극본적 해석

  

1.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앗수르의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하였다.

  

2. 요나는 반대로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나아갔다.

  

3. 하나님은 요나를 붙드시며 폭풍이 일게 하셨지만 요나는 잠을 잘 뿐이었다.

  

4. 우리에게 대한 부르심을 기억하며 주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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