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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감정] 42눅 9; 51-56 불을 내려 저희를 멸하리이까?



누가복음 9:51-56 불을 내려 저희를 멸하리이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아직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꽤 오래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고 그저 본능적인 생각과 판단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부족과 한계를 성경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한 촌에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자신이 자기들의 마을에 들어와 머무르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했던 것만큼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러한 증오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간다는 말을 듣고서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기들의 마을에 들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일에 대해서 흥분한 사람들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않고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처럼 대해주지도 않는 것에 분개했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마땅히 제공할 수 있는 선의의 도움까지도 거부해 버리는 것에 분통을 터트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분한 마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제자들은 정말 불이라도 내려서 그들을 멸하고 싶었습니다. 망해버렸으면 했습니다. 저주를 받았으면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했을 때 그들이 받은 것은 자존심의 상처요 모욕이며 멸시받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우리 주님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그러한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이럴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주의 복음을 거부할 때는 화가 납니다. 어리석게도 주님의 복음을 업신여길 때에는 기분이 상합니다. 그들 자신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놓는 것이라고 애써 마음을 돌려보기도 하지만 기분 나쁜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믿음과 신앙과 종교는 언제든지 우리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힙니다.
그래서 우리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속으로는 제자들처럼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치기를 소원합니다. 어려움을 겪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의 자존심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멸시받은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해주기를 원합니다. 다분히 인간적인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러한 소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러자고 하셨습니까? 당장 불을 내려 그 마을을 다 소진시키고 멸망시켜버려도 좋다고 하셨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제자들의 권한입니까? 그럴 만한 능력과 권세가 제자들에게 주어져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머무를 곳을 찾기 위해서 나아가셨습니다. 다른 마을에서 쉴 곳을 찾고자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할 때에 그분은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고 오직 그 장소를 조용히 떠났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마음으로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조용히 그 곳을 떠나셨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곧이어 나오는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실 때에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마음자세였습니다. 이곳에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어느 한 곳도 편안한 곳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곳은 인자의 쉴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인자가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쉴 곳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 속에서 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거부와 모욕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꾸짖고 저주하기 보다는 그러한 그들의 죄성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일이 예수님의 자신의 자존심이나 명성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환영받지 못하는 분이며 머리 둘 곳이 없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우리의 이루고자 하는 뜻을 방해하며 우리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받은 대로 동일하게 앙갚음을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인자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 뿐입니다. 사람들의 환영이나 영접이나 기뻐함이 없다 할지라도 오히려 사람들의 거부와 적대와 멸시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가야할 길을 가야 하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그들과 싸울 필요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몇 번 더 해주셨습니다.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10: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10: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시는 원리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거부당하셨는데 우리가 거부당하는 것을 왜 이상하게 여기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보다 크지 못한데 어떻게 예수님과는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꼭 복음을 인하여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거부하고 대항하며 멸시하는 경우는 우리가 복음을 들고 있을 때 뿐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복음을 다시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임을 기억하고 참고 인내하면 됩니다. 우리의 핍박을 받는 이유가 신앙적이거나 종교생활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있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는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이 세상에 대한 온전한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수 있게 됩니다.
부디 저주보다는 축복을 하며 축복을 못하겠거든 그냥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삶의 기회를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고 그리스도의 길을 동일하게 따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2005. 8.10 주일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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