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년 송구영신예배때 우리의 기도제목을 적고 소원을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원이 올 한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또한 지금도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노력하며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때 제가 그렇게 기도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올 한해 우리 가운데에서 승진하는 사람이 있게 하시고 취업하게 하시고 진학하게 하시고 물질을 얻게 하시고 능력을 갖게 하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학교성적이 높아지게 하시고 교회가 부흥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서 2008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가지고 달려나가는 우리에게 오늘 주님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지금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너무나 어이없어 보이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왜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대답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너는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도다” 도대체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 긴히 말씀을 드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아들들을 위해서 이렇게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어머니로서 그녀는 자기 아들들의 입신양명을 원했습니다. 그당시 구름떼와 같은 군중을 몰고 다니며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진정한 메시야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 그 나라에서 예수님이 왕이 되고 자기 아들들은 그 옆의 양팔이 되는 높은 신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자기 아들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제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앉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예수님께 나아와서 이러한 소원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동일한 내용이 마가복음 10장에도 나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나아와 예수님께 오른쪽과 왼쪽 자리를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야고보와 요한과 그들의 어머니는 모두 예수님께 간절하게 양옆의 자리를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바로 옆에 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높아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하십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어이없는 답을 했습니다. “할 수 있나이다” 늘 그 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답도 그렇게 간단합니다. 정말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잔과 그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늘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나서 늘 그 비용과 희생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요청하고 간구합니다.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불행을 기사로 접하면서 우리는 복권에 당첨되기를 원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낙마와 불명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심적 스트레스를 접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연봉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그 잔과 그 잔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지 모릅니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더라도 또는 정말로 그 잔을 마실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잔을 마시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좌우편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정해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좌우편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희생과 고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을 요구하는 마음 그 자체입니다. 좌우편에 앉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왜 문제일까요? 인생에서 높은 곳에 서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세간에 유행하는 자기 개발서들이 있습니다. 일전에도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베스트셀러 상위를 랭크하는 도서들은 대개 축복과 발전, 자기성장과 관계된 것들입니다. 이런 서적들은 불량식품과 같습니다. 많이 팔리고 많이 읽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영혼은 파괴되고 피폐해지는 그런 것들입니다. 오늘날 술과 담배회사가 많은 돈을 벌고 그것들은 많이 팔리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건강을 해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찬가지로 신앙도서의 영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해로운가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와 반대로 세상에서 불량식품같은 신앙서적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더욱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고 우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왕이 되어야 한다.” 정확히 반대되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주님은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라고 가르치시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높은 자리를 얻고자 하고 으뜸이 되려고 합니다. 어디에서든지 말입니다.
가정에서는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찾고 으뜸이 되는가를 놓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자녀와 부모사이에서 이러한 경쟁이 일어납니다.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쟁이 있습니다. 또한 교사와 교사 사이에서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일어납니다. 직장에서는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에서 선공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같은 입사동기 사이에서 승진경쟁이 일어납니다. 사회에서는 이웃집이 우리집보다 더 잘 사는지 혹은 자신의 친척이 나보다 더 잘 나가는지를 집요하게 의식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성도들과 목사가 성도들과 성도들 사이에서 누가 더 높은 위치에서 으뜸이 되는가를 결정하기 위해 다툼이 벌어집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정확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반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는 송구영신 때 이런 저런 기도제목을 냈습니다. 지금까지 그 기도제목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시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것을 왜 원하고 있습니까? 그 목표가 잘못 자리잡고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목표로 계속 진행하고 있다가는 나중에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일단 그렇게 시작되어 버리면 나중에는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중간에 바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왜 원하고 있을까요? 그것이 정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고 종이 되기 위한 것입니까? 우리가 공부 잘하고 돈을 잘 벌고 승진하고 취업하고 결혼을 잘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고 그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진실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그들의 종이 되기 위한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정말로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크게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으뜸이 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크게 되고 싶고 으뜸이 되고 싶어서 섬기거나 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섬기고 종이 되는 것이며 그럴 때에 크게 되고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을까요? 왜 우리보고 크게 되고 으뜸이 되라고 하시지 않고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이 정말로 주님의 말씀이면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해 주셨을까요? 주님은 바로 그것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에게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역시 동일한 목적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고 그분을 나타내는 자고 그분의 분신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들으신 여러분, 이제 다시 주님은 여러분께 묻습니다. 2008년도 새해의 계획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주님께 나아온 우리에게 주님은 물으십니다.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이제 우리의 소망은 바뀌었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소망은 변치 않았을 지 모릅니다. 여전히 우리는 가정을 원하고 직장을 원하며 학교를 원하고 교회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다시금 주님의 질문을 받게 됩니다. “너희는 너희의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이 말은 다시 어렵게 들리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간단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왜 원하느냐?” 부디 이 질문에 우리 모두는 올바로 대답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크고자 하기 위함이나 으뜸이 되기 위함이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것을 원하는 이유가 더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더 종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랑스럽게 예수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만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섬기고 희생하기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