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2:7-13 (신134) 요약: 제자들은 예수님께 유월절 만찬을 위한 장소에 대해서 물었고 예수님은 직접 준비하신 특별한 장소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곳은 주님이 원하시는 곳이었고 친히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늘 준비하신 것을 보여주시며 그것을 따라가야 하고 또한 따라갈 때에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장소가 우리의 장소보다 항상 더 지혜롭고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제: 합의
7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8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7And the day of unleavened bread came, on which the passover must be sacrificed. 8And he sent Peter and John, saying, Go and make ready for us the passover, that we may eat. 9And they said unto him, Where wilt thou that we make ready? 7ηλθεν δε η ημερα των αζυμων η εδει θυεσθαι το πασχα 8και απεστειλεν πετρον και ιωαννην ειπων πορευθεντες ετοιμασατε ημιν το πασχα ινα φαγωμεν 9οι δε ειπαν αυτω που θελεις ετοιμασωμεν
삶 속에서 진로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진로의 문제가 아니라 이일을 계기로 해서 우리의 생각과 목표를 새롭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는 얼른 결정을 내버릴 문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말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문제 가운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유월절 음식을 먹을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각각의 다른 형편에서 모인 열두명의 제자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집에서 머무른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특정한 모임장소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모여서 유월절 절기를 보내기 위해서 특별한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장소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사실 이 장소는 본질적으로 주님이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먼저 주님이 그런 장소를 필요로 하셨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런 장소를 예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시 되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어디에 예비하기를 원하십니까?’
너무나 당연한 대화내용이지만 이런 식의 대화가 우리에게는 그렇게 당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필요이지만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필요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위한 것이니까요. 정작 이 모든 일들을 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런 필요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점차 이것은 우리 자신의 필요와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면서 일은 더 복잡하게 됩니다.
제 자신도 진로의 문제를 오랫동안 놓고 기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전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조심스러웠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돈의 문제였습니다. 두 번째는 합리성의 문제였습니다. 세 번째는 여건의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의 문제였는데 여기서 계속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주님께 묻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주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비합리성을 극복할 지혜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자라나게 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절호의 타이밍으로 물동이를 지고 가는 여인을 보고 따라가서 정말 만나야 할 집주인을 만나 이전부터 예비된 장소를 보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진로문제에 대해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생이요 자신의 필요라고 생각하는 한다면 절대로 이렇게 질문할 일은 없겠지만 우리의 인생이 주의 것이요 정말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라고 고백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행해야 합니다. 교회가 우리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지 않겠지만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목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합니다. 목사 혼자서 운영해 나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정을 저에게 맡기고 이후에 전적으로 따라준다면 괜찮지만 결정만 맡기고 이후에는 뒷짐만 지거나 외면해 버리는 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로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찾아나갑시다. 그리고 협력해 주십시오.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때까지 노력해 봅시다. 또한 개인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갑시다. 주님은 뜻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유익이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진로문제에 있어서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원하심을 이루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