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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실천] 50빌 1;9-14 사랑을 깨닫고 의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자



50빌 1;9-14 사랑을 깨닫고 의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자



2010.5.9.주. 주일오전 [7실천]

1.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사람의 인생 속에서 사랑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 사랑은 우리가 이 세상에 계속 있을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능력이 되었고 그 사랑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사랑은 사람의 일생동안 항상 존재하며 꺼지지 않는 햇빛처럼 밝게 빛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납니다. 그토록 소중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말로 ‘사랑해’라는 말을 꼽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바로 그 ‘사랑해’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죽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바로 부모님의 사랑에서 발견합니다. 그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고 그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났고 살아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이유도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서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고 그 사랑을 통해 믿음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사랑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실제적이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가? 그 사랑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렸던 적이 있는가? 때로 여러분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할 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면서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지만 여러분 자신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사랑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말하는 대답은 이런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어요.”“하나님은 내 삶을 힘들게 하셨어요.”“하나님은 내 즐거움을 빼앗아 가셨어요.”

결국, 따져보면 유익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편안을 주는 것이 사랑이며, 즐거움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님은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여러분이 혹시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들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랑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잘 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원하는 것’을 주고 ‘편안함’을 주고 ‘즐거움’도 줍니다. 그 대신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입니다. 영혼을 사탄에게 빼앗기면, 미움과 분노와 절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악한 감정과 극단적인 행동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해로운 것을 하나님은 주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로운 것을 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도 여러분에게 해로운 것을 주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미워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에게 악한 것을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여러분이 새로운 목표로 인해서 힘들고 괴롭고 어려울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참으십니다. 여러분을 믿어주십니다. 여러분과 함께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와 함께 모든 것을 견디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대신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괴로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날 이때까지 한번도 여러분을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고난과 괴로움이 함께 눈물 흘리면서 동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진실로 선을 이루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이루도록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사랑을 (의의 열매)로 만드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삶의 굴곡을 거쳐왔는지 잘 아십니다. 어떤 가정 형편에서 어떤 어려움을 뚫고 어떤 한계를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었는지 너무도 잘 아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부모님도 잘 아십니다. 여러분이 자라난 곳과 그 삶의 형편에 대해서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여러분 자신이 모르는 사실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너무 어려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도 혹은 여러분이 수치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일들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 속에서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그 모진 고생과 역경을 주님은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노력이 헛되게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 신앙의 역정과 애쓴 시간들이 헛되이 사라져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을 더욱 부어주셔서 우리 삶에 어떤 열매가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어쩌면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다든지 신앙의 가문을 만든다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준다든지 하는 목표가 여러분에게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다음 세대를 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을 가지기는 했지만 아무렇게나 살고싶고 우리는 완전한 변화를 이루지는 못하면서 그럭저럭 살기를 바라더라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신앙의 노력이 단지 신앙을 가진 것만으로 끝나버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것이 열매를 거두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구체적으로는 ‘의의 열매’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서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이요,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11절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받은 사랑으로 끝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이것은 더욱 많은 의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의의 열매가 더욱 나타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어야 하는 ‘의의 열매’는 과연 무엇입니까?


3.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매임)으로 의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었다.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기도하였던 그 바울 자신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었을까요? 12,13절을 보십시오.

“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바울에게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그는 장막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따로 직업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분명 그는 이 세상 나라에서 그는 ‘장막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또한 그는 본업 외에도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고 정통 유대교인으로 복음을 반대하는 일에 열심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소개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함으로써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였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회개한 다음 구원을 얻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만을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욱 의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성경교사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으며 초대교회의 놀라운 전도자요 복음 전파자요 복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해석하고 설명하는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설명이 다 끝이 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한발 더욱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순교자가 되기 위해서 로마로 갔고 그 로마에서 죄수의 몸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서 가이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파란만장한 삶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13절에 나타난 ‘나의 매임’이라는 말을 보십시오. 그가 죄수로 매여있는 것, 그가 순교자가 되기 위해서 매여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매임이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신학자였을 때도 매여 있었고 복음 전파자일때도 매여 있었으며 전도자였을 때도 사도 였을 때도 성경교사였을 때도 매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매이는 것을 싫어할 때에 바울은 기쁨으로 매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매여 있었던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에 의해 그는 자진해서 매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믿음이자 소망이고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되었고 그 복음에 매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교사가 되었고 사도가 되었으며 전도자가 되었고 신학자가 되었으며 죄수가 되었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맺은 의의 열매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매임으로 인해 놀라운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평생 매여있었던 복음으로 인해 복음이 그를 이끌었고 그가 복음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비로소 그는 자신의 할일을 다하고 모든 것을 이루었고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의의 열매는 이런 것입니다. 주의 어떤 일에 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일을 죽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의 열매가 나타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어떤 한 사람이 그렇게 주의 일에 매이게 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찬송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은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4. 우리는 열매를 이루기 위해 (주의 일)에 매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의의 열매를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그렇게 복음에 매여서 교사가 되고 사도가 되고 전도자가 신학자가 죄수가 순교자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엔가 매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매인 것에 충성하면서 의의 열매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에 매여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 직분에 매여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때로 교회 행사에 매여야 합니다. 교회의 일이 중요한 것을 알고 그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혹은 부서에 매여야 합니다. 주의 성도들을 가르치고 지키고 돌보는 일에 매여야 합니다. 혹은 예배에 매여야 합니다. 혹은 기도에 매여야 합니다. 혹은 헌금에 매여야 합니다. 최소한 신앙에 매여야 합니다. 신앙양심상 그럴 수 없다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의의 열매가 맺힙니다. 종류별로 수준별로 다양한 방식과 형식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게 하십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 세대가 이루었던 어떤 의의 열매를 먹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이 기도를 해주셨기 때문에 부모님이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부모님이 직분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의의 열매 속에서 모태신앙이 되고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축복을 받으며 살아오는지도 모릅니다.
혹 부모님 세대에 전혀 그런 열매가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 주변에서 그런 의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통해 여러분은 전도가 되었고 기도를 받고 있으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함께 살았던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여러분은 그 의의 열매를 먹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열매를 거두게 하신 분은 모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인도해 준 분이나 여러분을 가르쳐 주는 분이나 여러분을 격려해 주는 분이나 이 모든 분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의의 열매를 거두십시오. 여러분이 충성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으면 여러분이 주님의 일과 그 사역에 자유로우면 열매가 생기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열매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에도 교회에도 직분에도 예배에도 기도에도 신앙에도 매여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고 무익한 나무 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 없음은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여러분의 주변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열매를 맺으십시오. 주의 일에 매이십시오.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전도대상자를 작정하고 계획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이일에도 매이십시오. 자유롭지 마시고 부담감을 가지십시오. 물론 개인적으로 볼 때야 어떻게 그런 부담감을 직접적으로 줄 수 있겠습니까? 말씀 속에서 알아서 부담감을 가지십시오. 전도의 열매를 맺고자 할 때에 그것이 결국 여러분에게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4절 한절 만 보고 마치겠습니다.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의 매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매임을 인하여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여러분들도 그런 담대함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매임이 헛되지 않고 우리 가운데 더욱 많은 의의 열매가 맺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개요
1.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2. 하나님은 우리안에 자라나는 사랑을 의의 (열매)로 만드신다.
3.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매임)으로 의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었다.
4. 우리는 열매를 이루기 위해 (주의 일)에 매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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