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은 300명의 군사와 함께 미디안의 군대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양식과 나팔이 주어졌고 그들은 다음날 밤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양식과 나팔은 전쟁을 하기 위한 도구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전쟁을 하실 때에 그 싸우심을 찬양하기 위한 것에 더 가까웠습니다. 바로 전쟁계획은 미디안 군대들이 당황하게 해서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고 죽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2만 2천명, 그리고 9천 7백명을 집으로 돌려보낸다음에 최종적으로 나온 계획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계획이 효과가 있을까요? 모든 일은 그 계획대로 될 수 있을까요? 기드온은 그날 밤 있을 작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다 죽는 것이 아닐까?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뿐만 아니라 남은 모든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그는 괴로워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너무나 놀라운 말씀입니다. 다시금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용기와 확신을 불러 일으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붙여주신 적들이었습니다. 이제 담대하게 나가서 계획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말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어쩌면 기드온에게는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고 하셔도 되었을텐데 왜 특별히 부하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어보라라고 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을 의심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이말을 듣고 기드온은 부하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단서는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굳이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미디안 군대의 진으로 직접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었을까요? 도리어 더욱 두렵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기드온이 부하 부라를 데리고 몸을 숨기고서 미디안 진으로 갔을 때에 그들은 엄청난 규모로 포진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메뚜기의 중다함같았고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아마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에 기드온은 도리어 두려움에 떨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생각과 다른 현실에 대해서 낙심했을 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의 거대한 절벽에 부딪치게 되어서 더욱 두려워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같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두려워하던 실체로 다가가면 갈수록 더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더 낙심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린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가 미디안의 군사의 압도적인 숫자를 보면서 놀라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보여주신다는 무엇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진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주신다고 했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을 찾고 있던 기드온은 마침 그 진 한편에서 이루어지는 한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자신이 전에 꾸었던 한 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꿈에 본 것은 보리떡 한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서는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 뜨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꿈내용은 언뜻 짐작하기에도 기드온을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무너뜨리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말을 들은 동무가 이렇게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그들은 미디안 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을 잘 알고 있었고 하나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미디안과 모든 군대를 기드온에게 붙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모호하지 않고 분명한 하나님의 확신이었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이며 기드온이 그렇게 찾고 있었던 두려움을 물리칠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단지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꿈의 실효성과 가능성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드온의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적으로 보고자 했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혼란 속에서 그 표적을 찾고자 했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일한 일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에 나타났습니다. 열 두명의 정탐꾼을 보내었고 똑같은 것을 보고 왔지만 열 명은 가나안 자손이 크고 장대해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나머지 두 명은 충분히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이 저들을 우리에게 붙이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동일한 상황을 보고 전혀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열명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두 명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나쁜 것만 보였고 하나님을 믿으니까 좋은 것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 처럼 그들은 자신의 삶에 가장 필요한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서 전쟁을 잘 수행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믿지만 두려워하는 것과 믿지 않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은 있지만 두려움이 있을 때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조금더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놓여있습니까? 혹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까? 혹 큰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혹 그외 뭔가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잘 기억해 놓으십시오. 그 일에 대한 태도가 성패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기는 힘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싶은 표적도 모두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얻을 수 있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우리를 담대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사모하게 하고 그것으로써 강하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워하거든 미디안진으로 내려가 보라고 말하십니다. 가능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가까이 붙어가보는 것입니다. 그 속에 진정한 소망과 확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리떡 한덩이리가 미디안 진의 장막을 무너뜨리듯이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 미디안의 모래같이 많은 군사들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소망과 역사하심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나를 의지하지 말고 변화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것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두려워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응답과 표적을 찾으십시오. 그것을 얻고자 할 때에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담대케 하심에 따라 담대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비관적으로 보지 말고 신앙의 눈으로 보아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