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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45롬 8; 24-28 우리를 이끄는 것들



45롬 8; 24-28 우리를 이끄는 것들



마라톤의 유례는 페르시아와의 싸움에서 그리스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40km정도의 마라톤 평원을 오랫동안 달려서 아테네 사람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자 마자 쓰러져 숨을 거둔 그리스 병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병사는 오직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쉬지도 않고 먼 거리를 달려왔고 마침내 "우리가 이겼다"는 소식을 전하자 마자 기운이 탈진해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를 그토록 죽을 힘을 다해서 달리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승리의 소식을 전해주고자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그 소망이 그로 하여금 자기 목숨도 돌아보지 않고 긴긴 여정을 달려오게 했던 것입니다.

이 마라톤은 가만히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과 많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자주 영적인 삶을 비유하는데 사용되곤 합니다. 역시 이번에도 이 마라톤을 통해서 우리를 신앙의 목표지점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은 우리의 구원을 지속시키며 완성시키는 힘입니다. 물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이요 출발입니다. 그 다음 이 구원을 지속시키며 완성시키는 것은 '소망'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되어 있지만, 이 의미는 '소망안에서'라고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받은 구원을 이 소망안에서 완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은 이 소망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보이는 것은 소망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은 바랄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마라톤 평원을 달리는 그 병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 소망은 아테네 도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달리면 달릴수록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윽고 그 도시에 도착하게 될 때 그는 도시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그의 소망은 아닙니다. 이미 그는 소망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는 소망을 향해 달려오다가 그 소망을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소망은 더 이상 소망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구원함을 받아 누리며 이루기를 애써 달려오고 있는 것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소망은 완성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온전히 다 이루지 못한 것 같고 때로는 과연 이룰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듭니다. 소망은 보일 기미도 나타나지 않고 그래서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소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혹은 보이지 않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달려나가며 기다리고 애쓰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소망이 우리를 인내하게 하고 달리게 하며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이끌듯이 우리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붙잡아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소망이 우리를 이끄는 것은 마치 말 앞에 당근을 달아주고 달리게 하는 것 같지만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은 우리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리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말씀이 성령의 이끄심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살펴보십시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얼마나 우리를 안타깝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시며 간구하시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해져 있을 때 갖게 되는 무수히 많은 어리석고 헛된 말과 행동으로 성령님은 슬퍼하십니다. 때로 우리의 되는대로 막나가는 자포자기식의 모습에 성령님은 탄식하십니다. 그래서 시간을 지체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성숙으로부터 한참 멀어져서 더욱 퇴보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성령님은 슬픔으로 기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뭐라고 기도하실까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헛되게 기도할 때에 성령님은 뭐라고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실까요?
우리는 우리를 죽여달라고 합니다. 아무렇게나 어떻게 되든지 이 상황이 그저 끝나기만 해달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괜찮으니까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달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자기에게 해가 되고 독이 되는 것을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조금의 인내를 견디지 못하고 실족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조금 후면 자신을 부인하게 될, 그러면서도 자신은 주님과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큰소리치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도록, 우리의 인내가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도록, 지금까지의 공들인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서 그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는 자가 아니라 그 영광을 세상앞에 높이 들 수 있도록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안타까움으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리석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감사하게도 성령님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실족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견디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답답한 일입니다. 계속 그 소망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도, 계속 참고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버거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도우심을 생각하십시오. 그 도우심이 있기에 우리는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안전밧줄이 있기 때문에 떨어져 죽지 않습니다. 그 이끄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종적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소망의 이끔과 성령의 위로 간구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정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는 말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헛되고 미약해 보이고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 일도 주님의 큰 계획속에서는 효과적이고 강력하며 유익한 결과를 나타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를 이끄는 소망과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더욱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04. 5.7 주일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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