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출]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출]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출]4: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출]4: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출]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채움받기를 원합니다. 공허한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가득히 채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름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서 힘을 내어서 수련회와 및 여러가지 은혜의 수단을 사모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은혜로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은혜가 없다면 우리의 모습은 수치스러움과 보잘것 없음으로 그칠 뿐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있다면 샘솟는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필요하고 충만함을 원하는 것은 우리나 하나님이나 동일하지만 무엇을 위해 그런 충만함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충만을 원할 뿐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충만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목표의 차이때문에 충만을 우리 스스로가 거부할 수도 있고, 때로는 충만을 원한다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충만함을 얻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팡이를 받았습니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그는 던지면 뱀이 되고 다시 집으면 지팡이가 되는 놀라운 능력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뿐만 아니라 그는 형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형도 주었습니다.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놀랍지 않습니까? 형은 더 권위가 있고 더 나이도 많고 더 경험도 많아서 도저히 모세가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인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동생인 모세에게 붙이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형 아론에게 하나님처럼 순종하게 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모세에게 개인적인 능력으로서 지팡이를 주시고 타인에 대한 권세로서 아론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을 위해서 이러한 은혜를 충만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단지 모세가 자신의 삶의 충만함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고 보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는 일을 맡기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팡이와 형을 준 것입니다. 더 큰 목표를 위해 그러한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왜 그가 모든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며 부모까지도 자기에게 절하는 그런 꿈을 꾸었을까요? 왜 그런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요셉이 그 위치에서 온 가족을 구원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기근에서 벗어나 나중에 한 민족으로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우십니다.
우리가 가지는 개인적인 재능과 재주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 모든 능력으로 채움받은 것은 하나님의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를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타인에 대한 관계와 권위와 권한이 있습니다. 그 모든 권한으로 위임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의 왕후가 된 것은 그래서 왕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인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에게 왕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지혜로움이 있었던 것은 하만의 계략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을 더 번성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이 모든 재능과 관계를 사용하기를 두려워하던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에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하나님께서 주신 왕후의 위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은 반드시 하나님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를 위해서 쓰여질 때에 그 충만함이 의미가 있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받은 모든 재능과 위치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자꾸만 더 많은 재능과 더 높은 위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목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받은 것도 제대로 사용을 안하는데 어떻게 더 받아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일뿐입니다.
이번 수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 좀더 살았다면 하나님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나이많아 늙어 죽는다면 비로소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는 것일까요?
얼마를 살든지 있을 때 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건강이 있을때 돈이 있을 때 힘이 있을 때 위치가 되었을 때 하지 않으면 더이상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이제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고 우리의 시간이 유한합니다. 여러분이 어쨌든 이번 1년을 받은 셈입니다. 특별히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주신 사람들에 대한 권위와 자신의 재능의 충만함을 깨닫고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성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 데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은 주님의 계획하신 일을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모세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는 일을 해내었습니다.
3.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공급하심을 통해서 주님의 일을 해야 하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충만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4. 가장 문제가 있고 가장 목표를 가지게 된 분야에서 충만하심을 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자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