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수]1: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수]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수]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3월에 새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3월은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갖습니다. 계절적으로도 3월은 봄에 들어서는 시간이기 때문에 새학기와 맞물려 모든 것이 소망과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또한 그 학생들과 연결되어 있는 많은 가족들이 3월의 새학기, 새입학에 여러 가지 소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커다란 소망과 낙관적인 전망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 대한 믿음의 계획, 소망의 계획, 그리고 사랑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합격을, 어떤 사람에게는 승진을, 어떤 사람에게는 주택구입을, 어떤 사람에게는 졸업이나 입학을,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이나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꿈과 계획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꿈과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꿈과 계획은 간단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 대해서 매우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다른 누구들 보다도 특히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무슨 말을 하셨고 그가 무슨 일을 했고 그를 통해 어떤 꿈과 계획을 이루셨는지를 여호수아서에서 성경말씀으로 자세히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가지고 계셨던 크신 계획과 꿈은 그 당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조상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조상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시작은 아브라함이었고 그 아들인 이삭이 그 약속을 받았으며 또 그 아들 야곱이 그 약속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에 이르러 그 약속은 더욱 구체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기업을 누릴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숫자가 많지 않을 때에는 땅을 기업으로 주어도 문제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을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캘리포니아라는 주가 있는데 이 주는 원래 멕시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멕시코가 전쟁을 벌였고 그 전쟁에서 멕시코는 패배하였습니다. 그 땅을 유지할 국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땅이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 땅을 개척해 나갈 때에 누구든지 그 땅에 자신의 울타리만 쳐놓으면 자기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 그렇게 울타리를 쳐놓은 다음에는 반드시 그 땅을 수호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땅을 뺏기지 않도록 사람을 사서 수비를 하고 잘 다스리지 않으면 그 땅은 다른 사람이 빼앗아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땅이 내 것이라는 증거로 땅 문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밤에 몰래 들어와서 그 문서를 빼앗아 가면 더 이상 그 땅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잃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서를 목숨처럼 생각하면서 지켜내야만 그 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 때까지도 그렇게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요셉의 영도 아래 애굽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꿈은 야곱 가족을 애굽으로 인도하는 것이었고 이 일을 요셉이 잘 이루었고 순종했기 때문에 야곱 가족은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400년 후에는 100만이 넘는 민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비로소 가나안을 다스릴 수 있는 한 나라로서 준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후 모세를 세우셔서 그 꿈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애굽을 떠났고 우여곡절 끝에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민족과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그들은 스스로 자멸했습니다. 고생고생 하여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왔지만 그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그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들의 자녀들이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서 두 번째 가나안에 대한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두 번째 가나안 입성시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여호수아에게 지도권을 넘겨주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여호수아는 이렇게 거대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가나안 땅에 대한 목표를 이루는 책임을 맡고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여호수아에게 기대가 크시고 그를 통해 수백 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하나님 자신의 약속을 이루기를 얼마나 원하셨는지를 한 구절 말씀 속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6절입니다.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이 구절을 우리 편에서 보면 힘이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강하고 담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각자에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뭔가를 얻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합니까? 하지만 이 구절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의미가 전혀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때부터 약속하셨던 그 땅을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를 통해서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 약속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여기에서는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은 약속한 땅 정도가 아닙니다. 맹세한 땅이었습니다. 더 크고 강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오래도록 기다리고 기다리신 일입니다. 이제는 주님 자신이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고 싶어서 안타까워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땅은 원래 하나님의 땅인데 지금은 가나안 민족들이 거하여 버렸습니다. 정말 좋은 땅인데 이방 민족들이 다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들만 행합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는 그곳을 아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셨지만 그렇게 다시 하시면 자신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이 그 민족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복을 얼마나 주기를 원하셨는지 모릅니다. 단지 땅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과 그에 포함된 모든 것을 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왔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에 대해서 그들이 얻게될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6: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이 때가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얻도록 계획하시고 준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타겠습니까?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그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네가 꼭 강해져라, 담대해져라. 그래서 내가 내 백성에게 맹세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네가 힘을 써라’고 하십니다. 이 일은 여호수아 자신의 영광일 뿐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 오래도록 바라고 기다리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주님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그 축복을 받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자신만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여러분을 보아 오셨습니다. 그 축복의 약속이 이제 바로 여러분 대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랜 조상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약속의 자녀의 모습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꿈이요 계획이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을 이루는 여러분들이 모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가정을 이루고 그런 가정이 모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이루고 그런 교회가 모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학교와 직장과 사회를 이루어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젊디 젊은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우리나라가 마침내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그 일이 여러분 삶에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음만 강하고 담대하게 갖는 것으로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1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보다 더 크고 힘센 가나안 민족을 몰아내는 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알려주셨을까요? 7절 말씀을 보십시오.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서 모세가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형통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대충 예상을 하자면 가나안에 들어가서 전쟁을 해야 하는데 그 전쟁을 하려면 많은 전투기술과 전쟁기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직업적으로 하는 용병들을 불러서 교육을 좀 받아야 할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지키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율법만 지키라는 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려 하는 것이 맞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이 가나안 땅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땅을 얻기 위해서 그들이 생각했던 것이 전쟁을 치루는 일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마음의 고민을 해결하거나 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야되는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를 극복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과업이 있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해결을 원한다면 당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에 대해서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다 지켜 행하고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때로는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학생에게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열심히 나가서 일을 하고 밤낮으로 일을 하고 일요일에도 쉬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고 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 문제를 고민할 때 상담소를 찾아가거나 아니면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더 좋은 가족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온 가족이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고 하면 수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몸의 문제로 괴로워할 때에 교회와서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힘들게 생각할까요?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이유를 알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간은 원래 해석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하면 엉뚱한 이유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진짜 이유를 알려줘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알게 하시는 진짜 이유를 들어보십시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나님은 학교 공부를 해보신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직장 일을 해보신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모르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몸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모르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을 듣는 것보다 학원 선생님의 말을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직장 선배나 사장님의 말을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정 전문가 혹은 가정문제를 많이 겪어본 친구, 가족의 말을 더 듣습니다. 그리고 몸을 만드신 하나님 말보다 몸을 치료하는 가능성을 많이 보여주는 의사의 말을 더 듣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런 말을 다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그냥 7절에서처럼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얘기하고 끝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반복해서 그 율법을 떠나지 말게 하고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다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말은 예배만 드리고 끝이 아니라 성경공부도 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계속 연습하고 연습해서 정말 그 말씀을 행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그 말씀을 행하는 척만 노력만 애만 쓰라는 말이 아니고 정말 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교육하고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통하리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은 왜그렇게 집요하고 끈질기고 악착같이 그 말씀을 지키게 하시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말 전문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전문가 입니다. 하나님은 교육전문가요 직장전문가이며 가정전문가이자 건강전문가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의 전문가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문가 그 이상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전쟁에 대해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그 모습을 받아주시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전쟁은 무엇인가요? 6.25전쟁은 우리가 겪은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큰 승리는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그것을 계획한 사람은 맥아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을 받았을 때 불리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륙작전이란 배 하나만 침몰되면 모두가 끝장이기 때문에 사실상 바다에서 육지로의 공격은 어려운 전법입니다. 맥아더는 참모진과 함께 바다에서 육지로 전쟁을 역사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살펴보니까 세계 전쟁 역사 중 바다에서 육지로 전쟁한 회수는 500번이나 되었는데 그중 노르만디 작전 한번만 성공하였을 뿐 나머지 499번의 전투는 실패하였습니다. 즉, 해상에서 육지로의 공격은 500분의 1로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맥아더는 그 한번의 성공을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서 〈그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결단하였고 마침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노르망디 작전은 어떻게 성공했는지 아십니까?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나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당하고 있던 중에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은 아이젠하워 사령관의 총지휘하에 대규모의 상륙작전을 전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노르망디 해안은 험한 절벽이었고 상륙작전 전날 밤은 폭우, 안개 등으로 도저히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이런 상황을 접한 지도자들은 이 중요한 작전의 성공을 위해 각각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합의하고 기도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원래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걸어다니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일 기도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루즈밸트 대통령이, 영국의 처칠 수상이, 아이젠하워 사령관이 모두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특히 루즈밸트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17시간이나 꼼짝하지 않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은 결국 이 상륙작전이 승리하도록 도아 주셨습니다.그것이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받아 인천상륙작전에서도 맥아더 장군을 위시한 온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기도를 하였고 동일하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신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치룰 때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직장의 신입니다. 직장에서의 일들을 승리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부의 신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아무리 자기가 공부해도 소용없습니다. 예배를 빠지고 성경을 제쳐놓고 공부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승리를 누릴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신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신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만드신 창조자이십니다. 주인이시며 왕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말씀만 들으면 모든 분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마음만 강하고 마음만 담대한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함 없이 마음이 편안한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중엔 마음이 물처럼 녹아버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맘대로 곡해해서 결국에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올바르게 해석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다 현장에서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많이 드린 것이 넉넉하게 쌓여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많이 드린 경험 속에서 순간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하여 승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9절 말씀을 보십시오. "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주의 날을 지키고 주의 예배를 지키고 주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결국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꼭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이 그렇게 주고 싶어하시는 그 땅을 차지하십시오. 그 기업을 누리십시오. 그 승리를 얻으십시오. 하나님은 전쟁의 신이요 직장의 신이며 공부의 신이고 가정의 신이시니 그분말씀만 들으면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 3월이 그렇게 승리에 승리를 쌓아가는 귀한 한달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요 {1역사서} <1적용> [1영역]-[0복음] 1.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조상때부터 주신다고 맹세하신 땅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2. 여호수아는 그것을 깨닫고 강하고 담대하여 땅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3.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전쟁을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4.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하나님 뜻대로 공부해야 하며 하나님 뜻대로 일해야 하며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