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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능력] 46고전1; 18-25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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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1; 18-25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_1

 

 2013.2.10.주. 주일오전.  주제설교-능력

 

*개요   {6서신서} <2관점> [5은혜]-[6결심]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지난 주 눈이 갑자기 많이 내렸습니다. 거리는 눈으로 뒤덮였고 도로는 얼음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눈싸움을 하며 뛰놀았지만 차를 운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눈밭은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얼음판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자동차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차가 마력이 높고 힘차게 바퀴를 굴려낸다 하더라도 얼음판 위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외면적이고 내면적이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지만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다면 그 모든 능력은 나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이 넘치시더라도 내 마음이 차디찬 얼음장과 같을 때 그것은 내 마음 밭에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그 얼음장을 깨뜨리고 주님의 능력이 우리 마음속에 우리 삶속에 역사하시기를 사모하며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대해서 가지고 계시는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과 거부감이 사라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에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을 때에 호감을 갖습니다. 그러한 호감이 새로운 것과 관계를 맺게 만들어서 그것이 비록 처음으로 접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점차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제 경우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처음 프로야구가 생겼을 때에 어느 팀을 좋아할까를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팀은 OB베어즈, 삼성라이온스, 해태타이거즈, 롯데자이언츠, MBC청룡, 삼미슈퍼스타즈 의 6개 구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였고 회원들에게 특별한 기념품을 주었었습니다. 친구들은 기념품으로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서 이 팀이나 저 팀에 가입하기도 하였지만, 저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고 롯데를 선택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태어난 곳이 진해인데 롯데 연고지가 그 근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해에서 태어나게 된 이유는 순전히 군인이셨던 아버님의 근무지가 그 당시 거기였기 때문이었던 것 뿐이지만 어린 마음에 나름 진해에서 롯데 연고지인 부산과 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결정했었습니다. 지금은 선호팀도 없고 프로야구를 잘 보지도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나름대로의 관계를 찾으면서 선택을 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은 그렇게 지역적인 연관성이나 혈연적인 연관성, 혹은 학력과 관계된 연관성을 찾으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갑니다. 굳이 찾고자 할 때에는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몇 번 버스를 타고 다녔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등의 사소한 개인적인 상황과 취향으로 연관성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되면 더 남다른 의미가 생기고 친밀감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연결이 되면 그렇지 않은 것과 다른 분명한 구별이 생기게 됩니다. 다른 팀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애정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호불호가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처음 만나고, 그분을 더욱 알아가게 될 때에도 역시 이러한 관계성에 대해서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하나님을 믿고 따랐다는 것이 하나님께 호감을 갖는데 작용하기도 합니다. 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 선호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도우심을 받기도 했다면 더더군다나 이러한 관계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께 대해서 연결되기가 쉽지는 않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관계성을 계속 추구하다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언젠가는 그분과 관계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이 시작되어지는 것이지요.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다가 날아오르는 것 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는 바로 그러한 면에서 주님의 편에 있습니다. 주님의 편에 있지 않은 자들은 그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미와 가치도 알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에게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우리들의 고백이 무색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혹은 어릴 때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었고, 혹은 젊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믿게 되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이들어서 하나님이 중요함을 깨닫고 주님께로 나왔지만, 그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왜 하나님을 믿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 왜 어릴 때 그 흔한 교회 한번 가지 않았을가요? 왜 장성한 뒤에도 자신이 결정할 때가 되었어도 교회 가기를 싫어했을까요? 왜 나이가 들어서 바쁜 일이 다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부정할까요? 그랬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절입니다.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그들이 너무 지혜로왔기 때문에 너무나 총명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지혜를 멸하셨고 그 총명을 폐하셨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움 때문에 더욱 어리석게 하시고 그 총명함 때문에 오히려 더 미련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은 헛똑똑이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들에게 허락하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미련하게 될 때 믿게 하신 것입니다.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믿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미련한 방식으로 구원받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박사건 박박사건 간에 누구나 자신이 미련함을 깨닫고 어리석음을 깨닫고 도와달라고 할 때에 만이 주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님을 믿은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었으나 저들은 지혜로왔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으나 저들은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된 우리들에게 그분은 자신의 더 깊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구원을 누리게 되고 그분을 응원할 수 있고 그분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 주님은 주님 자신에 대해서 더욱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에서 더욱 깊숙히 들어오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천국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상급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축복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신유나 은사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이 되기를 원하실까요? 22,23절을 보십시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같은 이유로 유대인은 표적을 좋아해서 표적을 구했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좋아해서 지혜를 찾았습니다. 천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천국을 찾고, 상급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급을 찾고, 축복을 좋아하는 사람은 축복을 찾고, 신유나 은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신유나 은사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같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거리끼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과 같은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새로운 것을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도방법을 창안할 것입니다. 새로운 예배형식을 도입할 것입니다. 새로운 양육방식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새로운 사역을 제시할 것입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교회의 의미를 둘 것입니다. 그러다가 좀 심해지면 선을 넘어서게 되고 그러면서 이단이 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대적하는 자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 핵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의 발전 속에서 바로 그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24절입니다.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헬라인이라 하더라도 유대인 같은 자나 헬라인 같은 자라 하더라도 모두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그 지혜를 붙드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지혜는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부모님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 마음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구요. 한 인간이 그 가슴에 자신의 자식을 묻는다면 그것은 평생 없어지지 않는 그 무엇이 될 것입니다. 그가 만약 그로 인해서 선한 일을 한다면 그는 평생 없어지지 않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낱 인간이 이정도라면,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얼마나 세상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품으셨겠습니까? 그것은 2천년이 지나도, 3천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그로 인해서 아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의 원천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들은 비록 전에는 잘몰라서 하나님을 믿는 이유로 천국이나 상급이나 축복이나 은사나 등의 말을 했었지만 그 깊은 관계를 알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오직 하나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가장 진실하고 가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됩니다. 그 믿음 속에서 우리들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주님과의 관계를 기뻐하며 붙들며 그 속에서 주님의 능력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주님을 믿는 것인지를 시험하게 되는 많은 상황들이 생겨납니다. 그럴 때 예수님만 붙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붙들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놀라운 능력이 바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처음 개척하면서 스트레스로 눈병이 생겼을 때에 개척을 지속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었지만 주님만을 붙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도 하고 경제적인 압박을 받기도 했을 때 도망가고도 싶었고 그만두고도 싶었지만 주님만을 붙들었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예수님 밖에 안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다시 다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이시간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구요. 그 미련해 보이는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그 약해보이는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마음 속에 품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우리모두가 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을 붙들음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누리게 되는 한 사람 한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성
1.    사람들은 자기와 관계있는 것에 호감을 갖는다.
2.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능력의 원천인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다. 
4.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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