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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계획] 41막7; 24-30 은혜를 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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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7; 24-30 은혜를 받는 이유_1

 

 2013.1.13.주. 주일오전.  주제설교-계획

 

*개요   {5복음서} <3분석> [5은혜]-[6결심]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오늘날 기독교가 너무나 기복적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우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처럼 만사형통과 부귀영화만을 목표로 하는 종교로 보여진다면 가슴아픈 일입니다.왜냐하면 기독교는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우리의 행복과 편안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통해 소원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와 소원을 들으십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님이 자녀의 간구를 들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간구를 들으니까 부모님인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시기때문에 간구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우선 순위의 차이가 기독교를 기독교 답게 만듭니다. 우리의 신앙을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중심으로 만들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온전한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소원과는 다르게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은채로 갖게되는 소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때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비록 아무리 주님을 따르고 바라본다 하더라도 진정한 관계에서의 주님이 아니라 단순한 소원성취로서의주님을 볼 때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 가지 장면을 통해서 바로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는 것이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1.   “숨길수 없더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에만 집착하였다.

 

이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저 소원성취의 통로로만 생각하려고 할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고 또 찾았으나 예수님은 숨고 또 숨으셨던 것입니다. 24절입니다.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숨길 수 없더라”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은 예수님은 사람들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숨으십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고자 하면 할 수록 그들은 자기 목표에 더욱 집착했습니다.주님은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병만 낫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생겼던 것입니다.

 

 

2.   “발 아래 엎드리니”: 수로보니게 여인은 발 아래 엎드려은혜를 간구하였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좀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 여인도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오기는 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기 원했고 손을 잡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예수님 앞에서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그 여인이 이렇게 발아래 엎드린 것은 단지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25절입니다.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엎드리니”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린 것은 예수님께 간절한 소원이 있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자각했기 때문도 있습니다. 그녀의 위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에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먼저 그 여인은 헬라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또한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수로보니게 족속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이러한 장면을 보면 아마 이방인으로서 무척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나보다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사전을 보면 전혀 다릅니다. 수로보니게 족속은 옛 시리아 제국을 다스렸던 페니키아 후예로서 귀족 중에서도 귀족입니다.지체 높고 자긍심 강한 상류층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발아래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는 이유는 자신의 딸 때문이었습니다.딸이 귀신들렸고 그 귀신을 쫓아내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딸만 아니라면 이렇게 올 사람이 아니었지만 딸때문에 딸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예수님께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행동 만으로도 예수님은 고맙게 생각하고 기특하게 생각해서 그를 도와 주었을지 모릅니다. 아마 우리 같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유하고 지체높은 가문의 어머니가 이렇게 겸손하게 요청하면 저같으면 같이 엎드려서그 문제를 도와주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 여전히 예수님을 수단과 도구로만 생각해서진정한 관계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의 목표에만 몰입하는 사람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계셨지만,그 속마음을 밖으로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엇을 더욱 원하시는 분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아니하니라”

 

누가 들어도 그것은 거부였고, 그것은 모멸스러웠으며, 그것은 인내심의한계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누가 들어도 도저히 단순히 예수님을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하는 한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기도 했습니다.그렇다면 여인은 여기에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3.   “이 말을 하였으니”: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과 어떠한 관계를맺는가를 주목하신다.

 

여인은 그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인은 개들과 아이들의 관계를 비유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고백했습니다. 은혜를 당당하게 내 놓으라는 게 아니라 그 은혜를 비천한 모습으로 구걸하고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자신은 상위에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은혜의 잔칫상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것은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그상 아래에 있는 개들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얻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앞에서 이순간 만큼은 상 아래있는 개들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엎드리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예수님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관계였고,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상위에 있는 주인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많은사람들에게 나타내십니다. 이전부터 알고 계셨으나 이일이 왜 일어나는 지를 알려주셔야 했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이 말을 하였으니’ 그 여인이 이말을 한 것이 중요한부분입니다. 그녀의 속마음이 다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진실한 마음, 예수님께 대한 무한한 존경과 의지의 마음이 그녀의 이 고백속에서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단지 엎드리거나 눕거나 앉거나 뛰거나 어떤 포즈를 취한다 하더라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고백만으로나타나게 됩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믿는 자의 고백은 베드로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 6장의 한대목입니다.

“요6: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날 때 베드로에게 주님은 너희도 떠날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본심이었고 그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은기뻐하셨습니다.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저희 부부는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묻습니다. 누군가를무척 좋아하고 따른다고 한다면 장난스럽게 묻습니다. ‘너, 그집가서 살래?’ 그러면 안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엄마, 아빠라서 그런다고 합니다.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자녀와 관계가 형성된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소원을 들어주고 소원을 안들어주고가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관계가 형성이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소원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소원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기때문입니다.

 

 

4.   “침상에 누웠고”: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통해 있어야 할자리에 있게 되는 자들이 되자.

 

예수님과 진정한관계를 통해 주님의 도우심을 얻은 이 여인의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나갔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집에 가서 보니 정말로 귀신이 딸에게서 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요? 30절을보십시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아이가 침상에누워있었습니다. 귀신이 나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귀신이 들어왔던 상태는 어땠을까요? 잠잠히 침상에 누워 있을 수가없었습니다. 귀신이 들어가서 그를 조종하고 자극하고 격동시켰기 때문에 그는 이리 저리 휘둘렸었습니다. 그러나 그 귀신이 나가고 나니 그 아이는다시 잠잠해지고 편안히 침상에 누워 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그 귀신을 내어쫓았기 때문입니다.그 능력이 그의 삶에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얻습니다. 그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악한 영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더 큰 능력이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 들어온 도둑을 물리칠 수 있는 이유는 그 도둑을 붙잡는 경찰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이유는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올 한해 소원이있습니까? 간구의 제목이 있습니다.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까? 그 기도제목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하십시오. 주님을심부름꾼 취급하지 마시고, 램프의 요정 대하듯이 하지 마시고, 그분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십시오. 그분의 은혜 속에 거하기를 사모하십시오.그럴 때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고백할 때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마음속의 깊은소원을 가지고 주님과 연합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함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악한 습관도 물리치고세상적인 생각도 버리고 경건함과 온전함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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