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우리는 12월에 들어서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관심과 초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장식과 준비들이 그 날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비록 예수님 그분보다는 주변환경들이 더
관심을 끌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예수님을 보게 만드는 좋은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전에 저는 미국 새들백교회를 다니면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적이 있는데 정말 교회 마당에 마굿간을
차려놓고 예수님의 탄생에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짜 말과 진짜 말구유와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
주변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 역을 맡은 아기는 인형이었지만 주변 환경이 너무 그럴듯하고 멋져서 한참을 보고 사진도 찍고 했었습니다.
1.
요셉은 혼전임신을 두려워하면서 결혼을 주저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의 사건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사실 그 당시 그 사건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산모로서 마리아는 따뜻하고 안락한 방안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또한 번잡하고
불편한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하기도 전에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시대에야
혼전임신에 대해서 관용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매우 수치되는 일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애를 지우기도 하고 혹은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2천년전에 보수적이고 엄격했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요셉은 오늘 본문에서 정혼한 처녀인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마리아와 관계에서 깨끗했는데 마리아는 임신을 했으니 그 씨가 누구의 씨인줄 알겠으며, 그런 부정을 저지른 마리아를
어떻게 용납하겠으며, 또한 이일에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얼마나 큰 파장이 일어나겠습니까? 그 당시 간음죄는 돌에 맞아 죽는 벌을 받았습니다. 결혼함으로
오히려 마리아가 간음죄를 갖게 될 터이니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이런 일을 이렇게 고민하는 것은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셉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의롭기 때문에 생깁니다.
하지만 악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짜 악한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본능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은 고민합니다.
정말 이래야 되는가를 고민고민합니다. 그런 부분을 괴로워합니다. 괴로워한다는 것을 또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 속에서도 결국 행하고자 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저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생각하는 것은 끊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좋게 끊는 것, 아름답게 끊는 것, 멋있게 끊는
것, 결국은 끊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그일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때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그의 생각은 의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하려는 일은 악한 일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요셉의 삶에 일어난 이일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는 없는 가장 유일무이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해석될 수 있는 일이었지, 세상 안에서는 해석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일은 바로 처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분명 마리아는 아무도 관계하지 않았지만 그는 잉태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것을 마리아 자신에게도 하나님은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이 왜 잉태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요셉만 모른 것 뿐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할 때 자신의 삶은 괴롭고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 때에 놀랍게
달라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무지를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중요한 의미는 바로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주의 사자가 꿈에서 나타나서 그 사정을 설명해주었을 때에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1절부터 23절을 보십시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의 고통과 괴로움은 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삶의 가장 괴로운 순간이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은 사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얼마전 저의 둘째 딸이 밤새 토하고 아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부모는 거의 잠을 못자며 딸을 간호했습니다. 손을 주물러주고 배를 만져주었습니다. 저희 딸은 간절히 엄마, 아빠를 찾았습니다. 이전에
엄마, 아빠를 찾는 것보다도 더욱 간절했습니다. 그러면서 딸아이는 점차
안정이 되면서 다시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프고 괴로울 때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구나.
그럴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얼마나 서럽고 괴로울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와 함께 하신다구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다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더욱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3.
요셉은 그말씀을 믿고 삶속에서 순종하여 결혼하였다.
요셉도 역시 그 말씀을 듣고 기뻤습니다. 그의 고민과 괴로움은
모두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가 괴로워했던 마리아에 대한 불신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아내 데려오기를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기분만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끝난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의 기쁨을 얻은 다음에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24절입니다.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하지만 요셉은 거기에서 더욱 순종했습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결혼을 했지만 함께 잠자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마리아의 임신이유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남편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면서 마리아가 출산할 때까지 기다렸던 것입니다. 요셉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분이 하려고 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습니다.
그렇게 태어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과 순종함으로 이름을 예수라 하였던 요셉과 마리아 에게서 태어나신 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나심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그분을 믿는
자들이 자기들의 죄에서 구원함을 받도록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때문에 순종하면서 삽니다. 그
순종함으로 인해 구원함을 얻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 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분이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4.
우리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기억하면서 순종하는 자들이 되자.
만약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요셉은 마리아에게 어떻게 하였을까요? 또한 만약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순종함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믿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을 통해 그 죄에서 구원함을 얻게 되는 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삶에 하나님은 오셨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인해서 죄악으로 인해 망하게 될 인생에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악을 행치 않게 하시며 그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결국은 구원함을 얻게 하십니다. 그 함께 하심의 의미와 구원받음의
의미를 생각하며 주님께 순종하는 자들이 됩시다.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우리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됩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구원을 얻는
자들이 됩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들이 되도록 붙드십니다.
이 12월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생각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을 통해 순종함을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로 인해 구원함을 얻으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