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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사랑] 62요일4; 7-10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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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요일4; 7-10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_1

 

 2014.1.5.주.주일오전.

 

*개요:    61사랑, 4복음서신서, 3분석, 5은혜-6결심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2014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면서 주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주님을 생각해왔습니다. 올해부터는 이제 그 은혜를 통해 우리 삶에 형성되는 결심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삶을 생각하면서 갖게 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을 때에는 그 은혜로만 가득차게 되지만 다시 삶으로 돌아오게 될 때에는 구체화 되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바로 결심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면 기도원에 올라가서 은혜충만한 상태에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집의 환경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결심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그런 마음, 그것이 바로 결심입니다. 그럴 때 생기는 결심들은 ‘사랑, 희락, 화평, 인내, 긍휼, 양선’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결심들이 구체화되면 아주 세부적인 실천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결심들은 다 좋은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그중에서 모든 결심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나서 그 은혜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알게되는 첫번째 열매입니다.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분들이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들을 듣습니다. 저 자신도 체험한 부분이기도 한데 정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모든 세상에 대해서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묻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마치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로 흠뻑 젖게 되면 몸에서 그 은혜가 뚝뚝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아무도 밉지도 않고 아무에게도 화가 나지 않고 히죽 거리게 되고 별다른 이유가 없이 마음에 사랑이 가득차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 안에 있다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우나 하고 나오면 얼굴이 벌개지고 피부가 보송보송해지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면 사랑의 마음이 채워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하나님과 교통을 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가 나온 사람은 바로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일서의 말씀에 바로 그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을 주시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세상을 사랑하셨고 하나님 자신이 이 세상을 사랑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그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자들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경험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옵니다. 하나님 안에 있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랑함을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나는 형식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랑함을 통해서 세상이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의 근원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랑은 항상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만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내려오고 거기서 더 내려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됩니다. 사랑은 바로 이러한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해서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넘어야 하는 것에는 두 가지 고비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너머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사랑을 넘어서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진정한 사랑을 알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것은 결코 완전한 사랑, 진정한 사랑, 최종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속에서 자신의 원초적인 그 무엇인가를 추구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넘어선 어떤 물건이나 사물이나 비인격적인 대상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런 대상에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물 혹은 비인격적인 대상은 마치 거울처럼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물건이, 그 제품이, 그 동물이, 그 비인격적 대상이 사실은 정확하게 내가 그리고 내가 원하고 내가 갈망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그래서 그것은 사랑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그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것은 내 자신만큼이나 유한합니다. 내 자신의 취미나 취향이나 감정이나 기호나 상태만큼이나 일시적입니다.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후회가 많기 마련입니다. 유효기한이 얼마 안되는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늘 목마르며 늘 갈급하고 늘 허전합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이런 사랑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전부인 사람이라면 불행한 삶을 살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거쳐야만 하고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곧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변형으로 국한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도구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먼저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통과해야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사랑, 하나님 사랑만 외치고 있다면 그 사랑을 말하면서 북치고 장구치고 춤추고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 사랑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은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일 뿐입니다. 그럴 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내가 앞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말해도 역시 그말의 진심은 자기자신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말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그 모든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아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그 이상에 있기 때문에 마치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중턱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을 극복해 낼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문할 것입니다. 왜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요? 왜 내가 그런 사랑을 알아야 하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알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의 한계에 빠질 뿐입니다. 그 유한함, 그 결핍, 그 허전함에 항상 이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 어떤 다른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이러한 중요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 안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혹은 평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그런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항상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되는 때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정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 조금 더 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는 항상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없이 늘 반복적으로 적용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정의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 조금 더 큰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못하게 되는 경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언제나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한계에 이릅니다. 그 한계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중단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그 이상 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려워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도 주저함 없이 자신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원하는 것은 포기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활하는데 익숙해진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조차도 한계에 이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사랑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게 될 때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해주고 자신이 그렇게 희생해 주었지만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배신할 때,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끝이 납니다. 그렇게 끝나는 사랑은 그 어떤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도 더 큰 상처를 갖게 만듭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심도 큰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라도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도리어 더 큰 인간관계의 파탄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열심히 함께 하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안타까운 경우들이 전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파국으로 끝나버린 예입니다. 그렇게 아픈 결말을 맺게 되면 다시 그런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더 집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한계는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종착지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출발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끝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는 분이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시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자기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라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가장 아끼시는 자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희생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큰 사랑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죽게 하셨다고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오히려 반박합니다. 인간도 그런 사랑을 한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장렬한 산화하는 군인들, 자녀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부모들, 연인이나 배우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커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시는 사랑은 별 것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말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현실에서 가슴절절한 희생적인 사랑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알고 나면 그 사랑은 어떤 인간의 사랑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의 대상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을 수 없는 자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해되고 공감되고 납득이 되서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사랑의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우리가 미워하고 저주하며 분노하고 배격하는 바로 그 악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하나님이 보시는 악인이었습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이 사랑의 관계여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하나님이 대적관계였고 원수관계였고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바 되었던 우리였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을 때 모습이 어땠나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비신앙적인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여러분을 하나님은 사랑해 주셨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모태신앙이라면 여러분의 부모님이 믿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죄악된 모습의 부모님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믿는 가정 안에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죄인되고 악했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랑을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우리 죄 대신으로, 갚아야 하는 우리 죄 대신으로,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아들의 죽으심과 관계된 사랑입니다. 아들의 죽으심에 대한 괴로움 만큼이나 강렬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엄청나고 놀라운 사랑이라서 더욱더 사람들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사랑이었으면 이해가 되겠지만 너무나 한계를 초월하는 사랑이라서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죄인된 모습으로 악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죄를 씻어주시고 구원해주신 사랑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사랑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만 국한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가정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여전히 교회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그 사랑을 알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었던 7절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다시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우리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진심으로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우나실 안에 들어가 있으면 몸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찬 이 세상에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없을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우리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을 더욱 알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낮은 자였는가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랑안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높은 분이신가를 알게되시기를 원합니다. 이 한달 계속해서 그 사랑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 놀라운 사랑, 영원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온전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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