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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능력] 9삼상30; 1-8 내가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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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삼상30; 1-8 내가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_1

 

 2013.8.18. 주. 주일오전.    주제설교: 능력

 

*개요   {1오경역사서} <4극본> [3감정]-[5은혜]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종종 유명한 운동선수들에게 인터뷰를 할 때에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가장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그럴 때 어떤 선수들은 지체없이 ‘몇년 몇월 몇일 무슨 경기에서 어떤 활약을 했을 때 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딱딱 하는 것을 보면 사전에 이미 준비된 질문인가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니면 정말 그 경기가 평생에 잊지 못할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그런 순간의 내용을 보면 지속적인 승리를 누리는 때가 아닙니다. 꾸준히 잘나갈 때를 손꼽지 않습니다.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때는 초보시절일 때, 혹은 엄청난 기대를 업고 어려운 일을 감내해야 할 때, 혹은 아무도 이루지 못한 엄청난 업적을 이룰 때 입니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적인 점은 어려운 일을 해 냈을 때라는 것입니다. 쉬운일, 혹은 쉬워진 일을 하는 것을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 힘들었던 일, 가장 괴로운 일이었을 때 비로소 가장 기억에 남게 됩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했을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라고 말할까요?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가장 놀라운 능력을 나타낸 때는 언제일까요?

 

물론 다윗이 살아서 자신의 대답을 한다면 진짜 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제가 대신 꼽아보라고 한다면 저는 이 시글락 사건을 들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서 다윗은 온 가족과 소유물들을 빼앗기고나서 정말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서 그 모든 가족들과 소유물들을 고스란히 다시 찾아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생애에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지옥과 천국을 경험해 본 경험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놀라운 경험 속에서 우리는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글락 사건의 시작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인 시글락을 잠시 비워둔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에 쳐들어와서 집과 성을 불사르고 모든 소유물들과 모든 부녀자들을 전부 노예로 데리고 가바랐습니다. 이 중에는 다윗의 두 아내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떠나간 다음에 돌아온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재산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보면서 눈이 뒤집혀졌습니다. 3,4절입니다.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과 그의 백성들이 이미 불타버린 성과 사라져버린 아내와 자녀들을 보면서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았던 가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았던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더이상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참담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울 기력이 없을 때까지 소리를 높여 우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면 울음도 안나온다고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큰 남성들이 소리를 높여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실감과 좌절 속에서 그들은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끔찍한 슬픔이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원래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었지만 자신이 따르던 리더인 다윗에게로 그 감정이 향해 버렸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그들이 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했는가 하면 애초에 자신들의 성 시글락에는 부녀자들만 놓고 남자들이 모두 성을 떠난 이유가 바로 다윗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블레셋왕 아기스는 다윗을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는 자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망명을 신청하는 다윗을 잘 이용하면 자신의 부하가 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기스왕은 다윗에게 시글락을 주어서 그곳에 살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에 다윗은 과거에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블레셋 편에 서서 이스라엘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그렇게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니까 그의 사람들도 다같이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전쟁에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블레셋왕 아기스의 부하들이 다윗을 의심하고 시기하는 바람에 다윗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냥 시글락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래서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다윗과 그 사람들은 이 비극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애초에 블레셋 땅에 들어온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또한 애초에 아기스왕에게 잘보이려고 전쟁에 참여한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은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사랑하던 가족들과 소유물들의 상실에 대한 이루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고 그래서 다윗을 죽이자고 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쯤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로 돌아올 때 그것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순히 사람들의 분노를 받아들여 자신의 죽음으로써 이 죄값을 달게 받아야 겠다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또한 다윗 자신도 가족과 소유물을 잃었기 때문에 더욱 낙심함으로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리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반대로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반격해서 죽이려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여기서 ‘크게 군급하였다’는 말은 영어로 ‘greatly distressed’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의 뜻으로도 군급하다는 것은 ‘사세가 꽉 막혀서 몹시 급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여러가지 감정이 모두 섞여 있는 말그대로 괴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대개 이런 상황에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가장 최악의 악수를 두는 것입니다. 감정이 섞여 있을 때에는 올바른 판단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럴 때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감정을 극복하고 최악의 선택을 할 뻔 했던 위기상황을 모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속에서 어떤 감정에 휩싸일 때 비슷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는 다윗의 사람들과 같이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우리도 다윗처럼 크게 군급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것을 할 까 저것을 할 까를 결정하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대화를 하고 그로 인해서 어떤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국가간의 분쟁, 여야간의 갈등, 노사간의 충돌, 선후배간의 문제 등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갈등, 부모와 자녀의 분란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적절하게 해결이 되지 않으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정말 악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악한 일은 더 큰 악으로 연결이 됩니다. 정도는 더욱 심해져서 급기야는 다같이 망하는 상황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정말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는 그 모든 스트레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의지하지 않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용기를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용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중학교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 그 자체는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강이나 바다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잠실에 있는 실내수영장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잠실실내수영장은 88올림픽이 열리기도 한 곳으로서 규모가 매우 큽니다. 관중석도 있고 수영장 크기도 크고 깊이도 깊습니다. 그곳에서 수영을 해보고 싶어서 중학교때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수영장의 반은 발판을 놓고 수심 1m정도로 해놓았고, 나머지 반은 수심 2m 그대로 해놓은 곳에서 양쪽에 수영을 하는데, 저는 한참을 수심 1m에서 하다가 2m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용기를 내서 배영으로 한참을 해 나가다가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춤하는 사이에 물이 코에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에 코에서 물을 빼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바닥에 다리가 안닿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수영을 좀 한다고 했는데 힘이 빠지고, 코에 물이 들어가고, 바닥에 다리가 안닿고, 게다가 물을 먹기 시작하니까,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완전히 패닉에 빠져서 한참을 허우적댔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아. 여기서 이렇게 죽는 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어이가 없지요? 88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잠실실내수영장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도 이미 눈치를 채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인명구조원입니다. 만약 제가 계속해서 허우적대기만 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고에는 어떤 맹점같은 것이 있어서 뻔히 보고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번을 그렇게 물속에서 꿀꺽꿀꺽 물을 먹으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인명구조원’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몸을 돌려 저쪽에 있는 인명구조원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하는 순간, 온힘을 다해 한번더 물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외쳤습니다.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그 인명구조원이 저를 딱 발견하고 그대로 물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쏜살같이 헤엄쳐서 옆에 와서는 ‘가만히 있어!’ 하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자기를 붙잡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목을 탁 잡더니 저를 물밖으로 끄집어 냈습니다. 이끌어 지면서도 물을 좀 먹기는 했지만 그것에 아무 불평은 없었습니다. 살아날 수 있게 되었는데 물 좀 먹는 것이 뭐가 대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저는 물에 빠졌다가 살아났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까 제가 인명구조원을 발견하고 ‘살려주세요’라고 외쳤을 때, 그리고 그 구조원이 물에 뛰어 드는 것을 본다음에 신기하게 저는 용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조원을 생각하기 전까지는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구조원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그 때문에 구조되기까지의 모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용기를 얻고 나니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슬펐을 때에는 다윗을 죽여야겠다는 생각밖에 못했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에 그는 용기를 얻었고 용기를 얻으니까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그는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의 의복으로서 하나님께 그 뜻을 묻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였습니다. 에봇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뜻을 보여주신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기도방석이 있어서 기도할 때에 늘 그 방석을 사용했다면, 이 상황에서 여러분은 ‘방석 가져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8절입니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시글락을 침탈한 아말렉을 쫓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따라갈 수 있고 정녕 모든 것을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라고 질문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을 주셨습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또한 ‘언제 이일이 끝나겠습니까?’라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올바르게 물을 때에 대답해 주십니다. 어리석게 물을 때에는 대답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대답을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물을 때 그는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제가 달려가서 쫓아가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다윗이 준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에게 주님은 도우셨습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공격하기 위해서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은 대답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준비가 되었을 때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또한, 어떤 때에는 올바르게 물었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받았으면서도 종종 이렇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그건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데요..’ 하나님의 뜻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대답입니다. 비록 그 뜻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따르면 결국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됩니다. 아까 저의 경험속에서 제가 구조를 받으면서도 물을 먹기는 했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저는 구조를 받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다윗은 방금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들과 함께 가족들을 찾기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중 이백명은 피곤했던지 마음이 안맞았던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나머지 사백명으로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해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작전을 짜서 새벽부터 그들을 치기 시작해서 그 다음날 저녁때까지 그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들을 도망간 사람을 빼고는 모두 처치했습니다.

 

가족들과 소유물을 다 찾고 거기에 전리품까지 얻어서 온전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 다윗은 함께 하지 못한 이백명도 함께 승리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자기의 감정과 자기의 계획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 뜻에 순종함으로 얻은 축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전에는 모두가 다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모두가 다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려울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도움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모든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용기가 단지 용기로 끝나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길을 보여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든 승리를 이룬 다음에도 겸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능력을 얻고자 한다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놀라우신 은혜를 바로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우리모두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승리케 하심을 온전히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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