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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희생] 43눅6; 12-19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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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눅6; 12-19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시다_1

 

 2013.3.10.주. 주일오전.  주제설교-희생

 

*개요   {4복음서신서} <2관점> [5은혜]-[6결심]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주님의 부르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부르심은 늘 후회하심이 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단지 성경말씀에 주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는 구절이 나와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삶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은 다 의미와 뜻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돌아서서 그 부르심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을 보면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심과 혼란스러운 생각들이란 이런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까?’

‘그 사람은 왜 교회에 나왔으며, 왜 직분을 받았을까?’

‘나는 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까?’

‘나보다 더 실력있고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나를 부르신 걸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르심의 고민은 자신에 대한 절망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악감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고민만 있고 해결은 없다면 결국에는 이 모든 부르심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거리감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바랄 때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서 그 부르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예수님은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제자들을 부르셨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보십시오. 주님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자들을 제자들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해가 되는 제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성경말씀은 친절하게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가룟 유다는 특별한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예수를 파는 자 될’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이미 제자로 뽑혀질 때부터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선택하셨을까요?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대개 이런 경우 우리들은 기도부족을 이유로 듭니다. 기도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기도가 부족해서 정성이 부족해서 준비가 미흡해서 이렇게 실수가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본체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분이 기도부족이나 정성부족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특히나 주님은 그 전날 밤이 맟도록 기도를 하셨습니다.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밤이 맟도록’이라는 말은 ‘밤새도록’ 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얼마나 간절하게 정성을 들여 기도를 하셨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 가룟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신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해가 될 자를 알고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대개 해로운 자는 피하고 이로운 자는 가까이 하는 법이지만 예수님은 해로운 자를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를 멀리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버릴 가룟 유다가 열 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을 보아야 합니다.

 

 

2.    사람들은 예수님께 자기의 원하는 것을 바라면서 나아왔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난 뒤 산에서 내려오사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평지에 서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몰려나왔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무리인 것 같지만 그들은 순진하게 주님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바라면서 나아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보십시오.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라"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던 이유는 병이 낫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병이 낫게 되기를 위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썼습니다. 예수님께 배우려고 힘쓴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 들으려고 힘쓴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힘쓴 것도 아니고, 온 힘을 다해서 그냥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통한 자신들의 병치료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서 애초에 우리가 가졌던 질문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은 왜 가룟 유다를 제자로 부르셨습니까? 다른 면으로 하자면 왜 제자가 되지 않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또한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많은 무리들이 자신에게 오직 몸에 손을 댈 수 있기를 그래서 병이 낫게 되기만을 바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주님은 그들에게 나아가셨을까요? 이용당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그렇게 이용당하셨을까요?

이 두 가지 질문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제자 되지 않게 하는 것이나, 따르는 무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나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죄인들과 악인들을 피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야 우리 입장에서 죄인들을 피하고 악인들을 멀리하고 싶어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죄인들과 악인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위하여 오신 그 죄인들 속에 바로 우리 자신이 포함됩니다.

만약 정말 그런 식으로 제자들을 추린다면 베드로는 어떻게 수제자가 되었겠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는데! 예수님은 애초부터 베드로나 가룟 유다나 모두 죄인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주님의 뜻이 꺾이거나 방해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주님보다 더 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죄인들과 악인들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셨다.

 

주님은 바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말씀을 들으며 변화되기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그들이 악하고 어리석더라도 자신에게 나아오도록 부르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나중에 결국 악하고 어리석게 되더라도 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병고침을 바라고 다가오면서 만지려고 힘썼을 때에, 주님은 그들을 주님의 시각으로 이렇게 바라보셨습니다.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이것은 앞서 19절과는 전혀 반대되는 시각입니다. 19절에서는 온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달려들었으나, 17절에서는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고침도 얻으려는 진실한 백성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러한 자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든 무리가 예수님에 몸에 손을 대는 것만을 바라는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병고침을 받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던 주님의 백성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주님은 사람들중에서 악인을 골라 내지 않으시고, 제자들 중에서 악한 자를 쏙 빼놓지 않으시고 그 모든 자들을 맞이하고 부르셨으며 그속에서 주님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왜 하나님이 가룟 유다와 같은 자를 제자로 삼으시고, 왜 어떤 사람들과 같은 구원에 별로 합당해 보이지 않는 자를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모든 자에게 구원을 손길을 내어 미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부르심의 넓이와 깊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르심의 진정한 목적인 변화를 위한 추구와 노력에 대한 주님의 열정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시지 못하는 듯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회의심만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문제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주님은 제자들 중에서 옳은 사람만을 골라내려다가 사실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까지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만 부르셔서 그들을 통해서만 일하시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모든 죄인들과 모든 악인들을 다 부르셔서 그들의 자유의지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디도서1장을 보십시오.

“딛1: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딛1:13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딛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항상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레데 선지자는 포기하고 절망했지만 우리는 바로 그들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예수님의 넓은 부르심을 이해하는 자들이 되자.

 

중국에 갔을 때 우리는 큰 케이블카 시설이 주택주거지를 막 통과해서 건설된 것을 보았습니다. 주민들이 반대도 하고 데모도 했을 듯 싶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모든 땅이 정부의 것이고 그들은 거주권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하기는 참 편리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런 사연들이 바로 그곳이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해주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심도 우리 생각에는 드림팀을 구성하고 최고로 잘난 사람들만을 뽑아서 부르셔야만 할 것 같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준은 죄인과 악인들이 주님의 부르심 속에서 변화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모든 희생과 고통을 주님은 다 감내하시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입니다.

 

다시 한번 서두에 말씀드렸던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마치려고 합니다.

“로마서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주님의 부르심이 결코 후회하심이 없다는 것이 절대로 항상 선하게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 모든 상황들 속에서 홀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희생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주의 부르심의 이유를 잘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르신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주님이 부르고 계시는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항상 주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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