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찐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새로운 2월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살펴봅니다. 한주 한주가 모여서 한달을 이루고 그 한달 한달은 모여서 한해를 이룹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살펴보는 말씀 한번 한번이 모여서 이
달의 은혜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렇게 한달 한달 은혜를
받으면서 이 한해의 은혜를 완성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그 은혜로 채워지기를 원하면서 살펴보려는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진정한 능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은 외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치솟으며 모든 외면적인 변화와 형성을 일으키시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의 생물을 만드시고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외면적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 어느 하나로 국한되지 않는 전우주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세우시고 높이시고 사용하시는 것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만드십니다.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는 지금 외면적인
능력과 내면적인 능력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꾸만 외면적인 능력에, 혹은 내면적인 능력에만 하나님의 힘을 국한시키려고 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능력에 대해서 오늘 성경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육체의 외양대로 외면적인 모습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싸운다라는 말은 ‘전투를 벌인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가 병법서도 아니고 전투하는 기술을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삶의 치열한 노력과 애씀을 그렇게 전투로 표현한 것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해하기 쉽게 생각한다면 이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 육체의
도구를 가지고 노력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도구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싸우는 병기, 무기,
weapon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고 마음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 마음의 변화를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이 깨어지게 하는 신적 능력(divine power)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면적인 면에 대해서만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면적인 분에 대해서도 능력을 행하십니다. 또한 내면적인 부분에만 능력을 행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외면적인 분에 대해서도
능력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결국은 우리는 외면적이면서 내면적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면적인 능력과 내면적인 능력을 보이셨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이끌어 오셨는가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와 함께 미디안 군사와 싸우는 장면이 사사기
7장에 나옵니다. 그당시 기드온은 너무나 적은 아군의 숫자와 너무나 많은 적군의 숫자로 인해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적군의 숫자는 세기도 어려워서
성경에서는 단지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삿7: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그런 적을 대항해서 싸울 때 기드온의 마음을 강하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마음에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은 정말 부라를 데리고 적진으로 내려가서 적들이 서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말에 힘을 얻어서 기드온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싸움을 싸울 수 있었고
이로써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기 때문에 결국 기드온은 승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두려워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걱정해서는 노력할 수 없습니다. 분노해서는 다룰 수 없습니다. 미워해서는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다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에 비로소 그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준비한 대로 노력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면적인 변화에 대해서 성경말씀은 좀더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내면적인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 목적이 결국에는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5절말씀부터 살펴보면서 이해해 보겠습니다.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내면적인 변화를 성경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이 옳은 이유는 정말 마음의 변화는 결국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을 변화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이론을 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또 파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야 하고 그 생각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변화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해야만 합니다. 왜 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절을 보십시오.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가 온전히 복종하게 되면 하나님은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종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모든 정말 복종치 않는 것을 심판하시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복종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에 롯은 그 성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빨리 대피하지
못하고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를 내버려 두시고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성을 피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창세기 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우리의 마음의 변화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주님께 복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외면적입니까, 내면적입니까? 답은 외면적이면서 내면적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면적인 것만 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내면적인 것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에 대해서만 노력하지 말고,
마음에 대해서도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마음에 대해서만 노력하는 사람이 되지도 말고 환경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복종할 때에 우리가 더할 나위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람이
됩니다.
언젠가 우리
작은 딸이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왜 엄마, 아빠는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해?”
그 말은 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럴 때마다 말해줍니다. “그건 다 너를 위해서야”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 뜻대로만 하려고 하세요?’ 이것이 우리의 불평섞인
기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고 보면 그리고 대답하다보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건 다 너를 위해서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내면적인 부분에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낙심하는 것을 낙심하지 않게, 화내는
것을 화내지 않게,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만들어 주십니다. 거기에 순종하고 복종할 때 우리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
강력, divine power를 얻게 됩니다. 이제 주님을 바라보며서 그 능력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이 만드신 모든
좋은 환경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들의 병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구성 1. 하나님은 외면적인 모습과 내면적인 모습에서 능력을 나타내신다. 2. 그분의 사랑이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왔다. 3.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심판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서 강력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