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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40마 1;18-23 마음의 괴로움을 해결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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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18-23 마음의 괴로움을 해결하시는 예수님_1

 

 2014.12.21.. 주일오전.

 

*개요:    55동행, 5복음서, 3분석, 3감정-6결심

[]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진정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진정한 우애를 나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깊은 연합을 이루게 되었고 이러한 연합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와 진정으로 우애를 나누셨다는 것은 우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애한다는 것은 네 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기쁨을 나눕니다. 삶속에는 기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쁘지만 숨겨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이 바로 우애입니다. 두 번째, 고민을 나눕니다. 알 수 없는 문제,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이런 저런 고민을 나눌 수 있을 때 우애를 나누게 됩니다. 고민은 당신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면 우애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고민하다가 함께 해결하기 때문에 그속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세 번째, 괴로움을 나눕니다.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은 대개 감정의 괴로움입니다. 밉거나 화나거나 두렵거나 낙심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괴로움입니다. 그 괴로움을 나눌 때에 더욱 친밀하게 됩니다. 슬픔을 함께 나눌 때에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처럼 감정의 괴로움을 나누는 것이 바로 우애입니다. 네 번째, 고통을 나눕니다. 고통은 실질적인 아픔입니다. 온몸에 느껴지는 고통과 아픔은 당하는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까지도 나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고통이 주는 모든 상황속에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나눔은 가장 진정한 우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즐거움 중에서 가장 진정한 즐거움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감정의 괴로움 속에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 괴로움을 그냥 우리 혼자 가지고 외롭게 혼자서 괴로워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 감정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도와주셨습니다. 분노하는 자가 분노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낙심하는 자가 낙심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두려워하는 자가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정으로 우리의 괴로움을 해결해주신 분이 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하는 말씀이 바로 여기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감정의 괴로움을 해결해주시는 장면을 보십시오. 바로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에 대한 말씀입니다. 19절을 함께 봅니다.

“[]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마리아는 임신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결혼을 소망하였던 요셉은 크게 낙담했습니다.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남자가 이런 상황에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와의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이 다른 부정한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단 한줄로 표현된 것조차도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는 얼마나 복잡한 상황이었을 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속에 담긴 모든 일들을 다시 현실적으로 구성해볼 때 우리는 요셉의 괴로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괴로움의 시간은 요셉에게는 너무나 기나긴 슬픔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천사가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가 잠에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족히 하루 동안에는 그는 지옥에 이르는 감정의 괴로움을 겪은 셈입니다. 이일로 인해서 그는 분노했고 또한 절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에 대해서 동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 마리아를 데리고 오자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남의 자녀를 어떻게 자신의 아이로 키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렇게 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생각하니 무서웠습니다. 이 복잡한 마음 속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자신은 이 모든 복잡한 일에 대해 연결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요셉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관계를 조용히 끝내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불쌍하고도 슬픈 상황입니까? 요셉은 마리아에게서 아무런 해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와도 이 괴로움을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임신소식을 알게된 그 순간부터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 가장 분노했고 가장 슬퍼했으며 가장 낙심했고 가장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고 그렇게 잠에 빠졌을 때에 비로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때 천사가 해준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하나님은 그가 마리아를 데려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가만히 끊고자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요셉이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정말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옴으로 인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하면서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괴로움을 주님은 그냥 두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서워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말로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가 왜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그 아들은 성령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남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해서 마리아의 몸에 아들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예수이고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Ίησους’(예수스)라고 합니다. 이 헬라어는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입니다. 원 히브리어는 יושוע’(예수아) 이고 이것은 יהושוע’(여호수아)의 변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의미는 바로 여호수아의 의미대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다시 한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는 바로 구원자인 메시야였습니다. 요셉은 오래전 예언되었던 메시야를 바로 자신의 아들로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탄생은 기원전 745년에 예언하였던 이사야의 예언에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이사야의 예언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아들을 받게 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요셉은 이러한 하나님의 천사의 설명을 들었을 때 정말로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학생 때 다니던 교회사모님이 자신이 첫 애를 임신했을 때의 두려움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모님은 아이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신이 되지 않아서 걱정하며 사모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안좋다고 생각해서 감기약을 많이 먹었는데 불현듯 몸상태가 감기가 아니라 임신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임신테스트를 해보니 정말 임신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감기약을 많이 먹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울면서 간절히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인데 이렇게 감기약을 많이 먹어버렸으니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아이가 유산될 수도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을 때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한 줄이 보이더니 그 줄에 더러운 것이 쭉 이어져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딱 멈추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사모님은 그 꿈을 꾸고 나서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정말 10개월 후에는 너무 예쁜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근거가 있고 역사하심이 있기 때문에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생사를 넘나드는 괴로움과 슬픔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요셉에게만이 아니라 마리아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말씀을 마리아에게도 천사를 통해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를 담대하게 하심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하신 것처럼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동일하게 그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알려주려고 하신 것 뿐만이 아니라 그 담대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의 이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알려주십니다. 구원자를 만나리니 그 이름은 예수라고 하십니다.

 

결혼할 여자친구를 혹은 남자친구를 만나지 못해서 괴로워할 때에 정말 여러분을 도울 자의 이름이 예수님일까요? 좋은 상대를 만나기는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혹은 가정형편의 문제로 인해 결혼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때 여러분을 도울 분의 이름이 정말 예수님일까요? 천만다행으로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살길이 막막할 때 여러분을 도울 분의 이름이 정말 예수님일까요? 어떻게 해서 살기는 했지만 자녀가 없어 슬플 때에 여러분을 도울 분의 이름이 정말 예수님일까요? 자녀를 낳기는 했지만 키우기가 힘들어 괴로울 때에 여러분을 도울 분의 이름이 정말 예수님일까요? 힘들게 키우기는 했지만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녀를 보면서 괴로울 때에 여러분을 도울 분의 이름이 정말 예수님일까요? 우리 인생의 곳곳에서 요셉처럼 마리아처럼 무섭고 두렵고 힘들 때 우리를 도울 분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의 뜻은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모든 문제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오래전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예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예언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가장 괴롭고 슬프고 두렵고 무서운 시간에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 무서움이 사라집니다. 그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이 유한하고 사건사고도 많고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감정적인 괴로움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붙들고 의지할 때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자로 찾아오십니다. 그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소망과 생명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모든 힘든 일들의 의미가 깨달아지고 그속에서 약속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천사의 현몽함을 통해 무서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요셉이 두려워하던 그 아기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가 걱정했던 문제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간음했다고 사람들이 돌을 던진 것도 아닙니다. 혹은 그 아기가 어디가 아프거나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런 문제없이 그들은 아기를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아기에게 경배하고자 동방박사들이 찾아왔고 그들은 향유와 유향와 옥합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헤롯왕이 이 아기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했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의 인도를 받으면서 안전하게 애굽으로 도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아기 예수님을 위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를 해칠 수 없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번의 성탄절을 보내었습니다. 성탄절을 함께 했다는 것은 그때까지 예수님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성탄절을 보내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성탄절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혼자서 지내거나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함께 하면서 성탄절을 보냈던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억하고 소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도우심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괴로움을 들으시고 그것을 해결해 주시면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님의 가족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면 붙들수록 더욱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될 뿐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또 한번의 동행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문제속에서 하나님을 붙들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마음의 근심과 감정의 괴로움 속에서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깨닫고 그 기쁨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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