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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충성] 58히 3;1-6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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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1-6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는 자들_1

 

 2014.7.6..주일오전

 

*개요:    71충성, 6서신서, 3분석,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3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지난 6개월 은혜가운데 보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맥추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현재에만 충실하거나 혹은 미래만 본다면 하나님께 맥추절의 감사를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기에 바빠서 혹은 자신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만 생각하면서 감사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그 지난 날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안에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 내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장기나 바둑을 두어보셨다면 꼭 느끼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약점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장기를 잘 두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번 고수를 만나면 지게 됩니다. 그렇게 질 때에 지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얻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다가 잃어버리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면 게임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의미가 결정됩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소한 것일 때에 우리는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일 때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선한 것일 때 우리는 칭찬을 받게 됩니다.

이 맥추절을 맞이해서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인가 보다도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1,2절입니다.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라는 말은 우리가 믿는 도리인 복음의 주창자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사도라는 직분적인 의미에서의 사도가 아니라 주창자, 주도자, 전파자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복음의 주창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친히 자신이 대제사장으로서 의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셔서 그 구원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사후에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정리해서 전파하는 죽은 선생님이 아니고, 다른 어떤 어려운 일을 행하게 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하는 이방신도 아닌 오직 자신을 믿어 죄를 씻고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게 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하나님께 대해서 충성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예수님은 자기를 세우신 이이신 하나님께 충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세우셨다는 것은 자신을 임명하셨다(appoint)는 뜻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임명하셨는데 그 임명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이러한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등이시고 동급이신데 충성을 하고 말고 할 것이 없지 않을까요? 또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우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충성하시고 하는 관계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전에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 안에 계시고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만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세우신 이이신 하나님께 충성하였다는 것은 상하관계에서 행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친밀관계에서 행하셨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충성이라는 덕목이 자기 자신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구할 때에 일어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또한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더 잘 나타납니다.

“2...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충성하였던 것처럼, 모세도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였습니다. 모세가 한 충성은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따르는 충성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모세보다도 더 크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모세가 예수님보다 더 컸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모세가 이해하기 쉽게 증거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으로서 충성했습니다. 5절을 봅니다.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모세가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한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에게 알렸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고 물었을 때에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여호와하나님이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충성의 본질이었습니다.

 

마약탐지나 폭발물탐지같은 특수견을 훈련시킬 때 충성심을 실험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세퍼드 종류의 덩치 큰 개들이 훈련을 받는데 마지막 훈련은 앞에 고양이가 지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개들이라면 그 고양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그 개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으니까 그 고양이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것입니다.

충성의 본질은 이런 것입니다. 나의 본성, 나의 원함, 나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충성을 보이는 그 대상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충성인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원하는 것을 더 원한다면 결코 충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섬기는 그 대상을 더 위한다면 그럴 때 비로소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온집에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어떤 것에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집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원래 바로의 폭정으로 인해서 태어나자마자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산파 십브라가 바로의 명령으로 그를 죽이지 않고 목숨을 걸고 살렸습니다. 또한 어머니 요게벳이 그를 목숨을 걸고 키웠습니다. 도저히 더이상 키울 수 없게 되었을 때에 갈대상자에 넣어서 물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누나 미리암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갈대상자를 쫓아가서 그 상자를 바로의 공주가 발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바로의 공주에게 유모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고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소개시켰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었고 어머니는 유모가 되어 그를 키웠습니다. 그렇게 큰 모세였지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사람을 보고 그를 쳐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발각이 나서 바로를 피해서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평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실패자요, 낙오자요, 범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를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지도자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능력을 다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능력을 가지고 그는 바로에게 갔고, 이스라엘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고, 그 뜻을 전하면서 애굽전역과 바로를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에 비로소 당당하게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그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능력주심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은혜를 받은 자였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바쳤습니다. 이미 그 자신의 무엇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의 무엇에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충성했습니다.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심지어는 너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씀까지도 충성했습니다. 결국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온 가나안 땅을 보았고 거기서 죽어 모압 땅 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무덤을 아는 자 없었고 그는 그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충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예수님의 충성스러우심입니다. 예수님의 충성과 존귀함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3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집에 충성하셨지만 예수님은 집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집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모든 것을 함께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집에 사환으로 충성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집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아들로서 예수님은 그 집이 망하지 않도록 자기 생명을 버려 그 집을 구원하셨습니다.  

 

개미를 대상으로 어떤 과학자가 기이한 실험을 했습니다. 개미굴에 불이 나면 개미들이 어떤 방법으로 불을 끄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소화기나 물 같은, 불을 끌만한 도구가 없는 개미들이 어떻게 불을 끄는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아마존 개미들이 집단 생활을 하는 굴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일어나는 상황은 미리 개미굴속에 설치해둔 초소형 카메라로 세밀하게 관찰했습니다. 그러자 개미들은 정말 놀라운 방법으로 화재에 대처해 나갔습니다. 자신들의 몸을 불꽃에 던져 태움으로써 화재를 진압하였던 것입니다. 개미들은 일단 개미굴 속에 불이 나면 맨 처음 불꽃을 발견한 개미가 즉시 불꽃을 향해 몸을 던집니다.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불꽃을 못 본 것처럼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불꽃에 몸을 던진 첫 번째 개미의 몸은 불에 타들어 가면서 묘한 액체로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첫 번째 개미가 몸을 던진 후에도 화재 현장 가까이에 있던 개미들은 차례로 불꽃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닐 텐데 개미들은 잘 훈련된 군인의 동작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 개미들이 불 속으로 뛰어들수록 점차 불꽃의 크기가 작아지고 얼마 후엔 완전히 꺼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개미의 몸이 불을 끄는 것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이 인간의 죄를 용서받게 하였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들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을 구하시기 위해서 희생하신 거룩하신 충성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졌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해서 온전하게 된 하나님의 집이 되라고 말합니다.

“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그리스도께서 충성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 담대함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한 것이 자랑입니다. 우리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 담대함과 자랑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 되어갑니다. 그 집이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 예수님이 위해서 죽으신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으로서 우리는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하게 잡는 충성을 해야 합니다.   

 

지난 반년을 살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집의 사환으로 봉사하던 모세를 기억합시다. 그도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의 은혜를 힘입어 더욱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충성을 생각하며 그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담대함과 소망을 끝까지 붙드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은혜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이렇게 사환으로, 아들로, 그리고 집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 충성하는 마음의 핵심은 온전한 사랑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 깊은 사랑이 삶속에서 충성의 모습으로 온전히 나타나는 여러분의 삶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이 되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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