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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42눅 2; 8-17 영광계획으로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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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2; 8-17 영광계획으로의 동행_1

 

 2013.12.22.주.주일오전.

 

*개요:    55동행, 4복음서신서, 5은혜-6결심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것과는 달랐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세상의 구원자이시고 만왕의 왕이셨기 때문에 주님의 태어나심은 오래 전 예언되었던 성경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으며 여러 신실한 사람들의 마중과 방문을 준비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 날은 아무 의미없는 하루에 불과했겠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분의 존귀하신 아들이 세상에 오신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아들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드려 구원의 길을 여시는 분이셨고 우리의 왕으로 오셔서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고 따르는 자들은 태어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서 경배하며 기뻐합니다. 자신에게 너무 중요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동참하면서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자들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 영광의 장소에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광계획은 시작됩니다. 그들의 영광계획이 바로 본문에서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알려주신 이 일을 보자고 하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가자고 한 곳은 베들레헴이고 바로 그 베들레헴에 이스라엘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가 나시리라고 천사들의 말함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목자들에게 있어서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나심은 과거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일어난 일을 가서 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나심은 과거 였다는 것은 바로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점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나심은 과거입니다. 단지 2000여년 전이라는 시간적인 과거로서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에서의 과거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구원사역도 다 이루셨습니다. 그일을 우리는 이제서 따라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주님께 경배를 드리고 영광을 돌리려는 일을 행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탄절은 해마다 오는 것이고 이미 작년에도 충분히 영광을 돌리지 않았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동일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작년에 비해서 달라진 것입니다. 작년의 우리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더 나았던 면도 있고 더 안좋았던 면도 있습니다. 그 달라진 삶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계획에 맞닥뜨립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반응은 달라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심이 무척 의미있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작년보다도 올해 더욱 열정이 생기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힘써 목자들처럼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곳 베들레헴에 마음을 두고 반응할 것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성탄절이 더이상 의미있게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는 화려했지만 올해에는 화려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생각하는 마음도 떨어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어오면 자연히 나타나는 반응도 수동적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귀찮기만 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 전자에 속한다면 좋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러 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의 판단기준은 예수님께 대한 증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의 신실함에 있었습니다. 목자들이 보았던 것들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찾아봅시다.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주의 사자가 그들 곁에 섰습니다. 그리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양떼를 치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그 영광은 그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처지와 상황과는 무관하게 너무나 영광스러운 빛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영광스러움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서워하였습니다. 새롭고 신비한 것에 대해서 그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들에 대해서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은혜를 입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었고 재앙을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나타나게 하시는 이상에 대해서 듣고 볼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듣고 경험한 것은 바로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쁜의 좋은 소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바로 그 복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며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분의 사랑, 그분의 희생, 그분의 놀라운 계획, 그리고 능력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들은 모든 복음의 내용들은 마치 목자들이 천사 한 사람으로 인해 그 기쁨의 소식을 듣게 된 것과 같습니다. 밝게 비추어지는 빛속에서 천사는 목자들에게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현실의 삶이 있었지만 그와는 다른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들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들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재미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루했을 지도 모릅니다. 졸거나 혹은 딴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분명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우리가 알게된 것은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세우셨으며 그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그속으로 인도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크고 아름답고 놀랍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그분에게로 더욱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모세가 양을 치다가 가시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을 때에 그는 자기가 양을 치고 있다는 것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그 나무에로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 순간 그는 세상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그 장면을 함께 봅니다.

“출3: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모세는 그렇게 자기 양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들으면서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사울왕도 자신의 나귀를 잃어버려서 사무엘 선지자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자신이 왕이 된다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우리 문제의 해답은 우리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왜 여기에 살고 있으며 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복된 소식을 들어야만 합니다. 반가운 소식은 우리가 그렇게 그 복된 소식을 들으면서 이 한해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갑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생각해보십시오. 그속에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있습니다.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바로 그리스도 주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주님은 표적을 주셨습니다. 목자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구주가 나셨는데 그 아기를 못알아 볼까봐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는 것이 표적이라고 이야기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주님도 우리에게 그 표적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 얼마나 신기합니까? 아기가 강보에 싸여 나무로 만든 구유에 놓여 있다니요! 그 아기는 가장 열악한 환경속에 뉘여 계십니다. 인간의 모든 어려움과 고난속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날 우리의 삶을 보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늘 시간에 쫓기며 늘 경쟁에 시달리며 늘 해야할 것을 온전히 행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망하지 않았고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에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 구주가 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다는 표적입니다. 그것은 오직 설명을 들을 때만 깨달을 수 있는 놀라운 표적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에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해서 영광을 돌리는 여러 천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처음에는 천사 한명을 보았을 뿐이었지만 그 다음에 허다하게 많은 천군천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 나아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내보내어 주셔서 우리와 함께 하게 하신 것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그 함께 하심을 받도록 허락하심을 얻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였습니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능력이 많으시고 가장 뛰어나신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평화는 바로 그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기쁨과 영광을 보았던 목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모든 천사들의 찬송이 사라진 뒤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그들은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킬 뿐이었습니다.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밤새 양떼를 지킬 수 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지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신앙생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일을 하면서 동일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면에서 육체적으로는 더 피곤합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전혀 새로워집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의미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하는 자들인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것을 깨달으니까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살아계심과 그 함께 하심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떼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본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이 동방박사들의 경배계획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동방박사들은 다만 경배를 드릴 뿐이었지만 목자들은 영광을 돌렸습니다. 천사들의 증거를 바로 자신들의 입으로 그대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고 하나님을 높였으며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들의 새로운 찬양이었고 목자들을 통해 울려 퍼지는 하나님께 대한 영광의 증언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영광계획에 우리도 초대받습니다. 그냥 해마다 드리는 성탄절이 아닙니다. 올해는 작년과 또 다른 전혀 새로운 의미의 성탄절이 진행됩니다. 이 한해의 모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에 대해서 그분의 놀라우심에 대해서 할 말이 많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제 이 귀한 영광계획에 함께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모아서 하나님께 함께 예배드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알려주신 이 모든 되어진 일을 함께 보자하고 나아간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 영광을 돌리는 자리로 나아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번 성탄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움으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의 높으심과 영광스러움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계시던 주님을 목격하고 영광돌린 목자들에게 나타난 것처럼 우리 모두의 삶속에 온전히 깨달아지고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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