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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은혜] 40마24; 3-14 현세적 신앙과 내세적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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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4; 3-14 현세적 신앙과 내세적 신앙_1

 

 2015.6.7..주일오전.

 

*개요:    3감정,

[]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24: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지난 달 가족초청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주변의 가족들의 신앙적인 위치를 한번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 교회를 다니고 누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누가 교회를 다닐 만 하고 누가 교회이야기는 엄두도 낼 수 없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모든 일은 결국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것은 얼마나 간단해 보이는 일입니까? 그러나 사실은 교회를 다니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한 두번 나오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교회를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일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 이유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때에 비로소 교회를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교회를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만드는 무수한 이유들과 방해들을 뚫고 비로소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는 것이 간단해 보여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본질에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살던 동네에서는 조금만 가면 연세대학교를 가 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저는 자주 놀러 갔습니다. 그리고 내심 서울대학교는 너무 머니까 가까운 연세대학교를 가야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은 멀고 가깝고의 문제가 아니지요. 또한 내가 가고싶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지요. 자격이 되어야 갈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가끔씩 놀러가는 것은 자유스러웠지만 그 학교의 학생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가깝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든다고 가는 곳도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는 자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 자격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닐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교회를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제가 대학생이 아니었을 때 대학교를 드나들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학적에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왔다갔다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있게 될까요? 예수님이 구세주이신데 그 구세주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 어떤 약이 있는데 그 약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병이 있기 때문에 약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때 해결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필요가 바로 오늘 성경말씀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속에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마지막 때와 세상의 끝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예민하고 긴장된 삶을 살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압박감 속에서 그들은 말세를 늘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로마에 점령당한 로마의 속국에 불과했습니다. 여전히 로마 군인들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고 살기등등한 로마 병정들은 거침없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마지막 때와 세상의 끝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서 예수님은 단순히 현세적인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본질적으로 내세적인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이 세대가 겪게될 어려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설명에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에 비로소 예수님을 현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여러가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중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의 두려움입니다. 이번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도 역시 그것입니다. 예방약도 없고 치료약도 없고 걸리면 치사율이 40%에 이르는 독감바이러스라는 말은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그 공포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기는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네팔의 지진피해나 일본의 화산폭발이나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내전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가지 재난으로 인해서 다 허물어진 건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피난을 나와서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기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우리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중동에서 시작된 감기 바이러스가 평안하게 살고 있는 우리를 극도로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현세적인 관심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세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세상의 끝에서 진정으로 시작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이 모두 두려워하는 그 죽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진정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현세적인 성인이 아닙니다. 단순한 위인이나 선생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가르치신 선지자이십니다. 우리 죄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우리에 대한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승리하신 우리의 왕이십니다. 이렇게 선지자이시고, 제사장이시고, 왕이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메시야)입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서 기름을 부어서 세웁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에 예수님께 묻습니다. ‘과연 이 혼란스러운 세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 세대를 바라봐야 합니까?’ 이러한 말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예수님은 난리와 난리의 소문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언뜻 보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요?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이러한 일이 끝이 아닐까요? 

 

세계는 지금도 이런 저런 난리와 난리의 소문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세계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이 사라지고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이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의 끝이 오고 세상의 끝이 오면 주님이 오십니다.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주님이 오시는 것은 여러가지 환난과 괴로움과 문제와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혹은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일어나는 이러한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으로 인해서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잠시일 뿐입니다.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 예수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예고해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암행어사가 등장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탐관오리가 갖은 학정을 다하고 모든 부조리가 최대에 이르게 될 때 암행어사가 등장합니다. 그와 같이 모든 세계가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될 때에 비로소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십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있은 다음에야 예수님이 오시는 것일까요? 이런 일이 없이 예수님이 오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31절을 보십시오.

“[]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처음에 우리는 교회에 나오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회에 놀러올 수는 있어도 교회의 일원이 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환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대의 종말입니다. 이 세상이 만약 영원토록 지속된다면 그리스도는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영원히 살아간다면 역시 구원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고 이 세대도 역시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아플 일이 없으면 병원이 필요없지만 아플 일이 있기 때문에 병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캐나다의 에드몬튼(Edmonton)에 있던 한 대형 출판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회사의 아주 중요하고 값비싼 인쇄 기계가 고장이 났습니다. 독일에서 수입한 그 기계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가 캐나다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그 제작 회사로 연락을 했습니다. 드디어 독일에서 기술자가 도착했는데 보니 아주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경험도 없는 젊은 수리공에게 자기들의 그 값비싸고 중요한 기계를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 기술자에게는 기계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다시 독일로 전보를 쳐서 능력이 우수한 사람을 보내주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독일에서 답변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거기에 간 슈미트(Schmidt)씨에게 그 기계를 맡겨 주십시오. 그가 바로 그 기계를 발명 제작한 사람이니 능히 어떤 고장이라도 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그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속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속게 됩니다. 또한 죽으면 끝이라는 사람들에게 속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그들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뢰속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로 그 예수님을 알게 되기 위해서 이 시대는 저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주 캄캄한 밤이 되기 전에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이 세계의 종말을 알게 되고 그 종말을 생각할 때 비로소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캄캄한 밤을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 어두운 밤에 놀랍게 빛을 발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나더라도 왜 끝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전히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진정한 끝이 오기 위해서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가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어야 합니다. 모든 개개인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 복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 날까지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 돌아올 그 어떤 민족을 위해서 주님은 말세에 가까왔으나 아직도 종말은 이루어지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해야 하는 일은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수능시험을 볼 때 자신은 다 시험을 끝냈어도 다른 사람이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얼른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만 주님은 또 그 누군가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여전히 이런 저런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지만 우리는 기다려야만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제 다 이루었다고 하시기까지 하나님의 선언을 기다리고 한 사람이라도 한 민족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말세의 특징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세상이 더 악해지게 되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의 마음이 강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그 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두의 사랑이 식어질 때에도 우리는 그 사랑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현세적인 신앙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세적인 신앙으로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들고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붙들 수 있도록 사랑으로 붙들어 줍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내세적 신앙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그럴 때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붙들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 놀라운 구원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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