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방법을 교회에서 알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물론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항상 더 중요한 목적은 그보다 덜 중요한 목적을 밀어내고 우선적으로 나타납니다.우리는 교회생활을 통해서 항상 하나님 섬기는 법을 최우선적으로 훈련받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잘 알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훈련이 잘 되어 있기도 하고 젊어서부터 다니다 보면서 나이든 후에는 신앙훈련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분들이 교회를 하나님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교회가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곳이 되게 만듭니다.
그런데
교회는 단순히 하나님만 섬기는 곳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는 훈련도 있지만 또 다른 훈련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을 잘 섬기게 하는 훈련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훈련을 하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단지 하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도 해당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신 주기도문의 내용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바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가를
통해서 바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을 훈련합니다. 물론 가장 최우선적인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잘 따르다 보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섬기는가에 대한 것까지도 알게 됩니다. 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비유속에서
우리는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임금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은 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의로운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내용은 우리에게 구원을 받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천과 되어져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을 때에 구원의 원리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성도의 삶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읽어봅니다.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임금이신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던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복을 누리는 자들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나라를 허락하시며 누리게 하십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며 또한 우리에게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주님은 우리를
상주시고 세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풍성함 속에서 주님은 의인들에게 구체적으로 그들이 한 일의 내용을 깨닫게
하십니다.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어쩌면
구원의 원리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그 나라를
상속하게 되었다면 더 좋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주고 마시게 하고 영접하고
옷을 입히고 돌아보고 와서 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되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왜 다른 사람들에게로는 미치지 못할까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섬길 수 있지만 사람은 섬기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훈련이 되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을 섬기는 일에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섬기는 일이 힘이 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훈련이
되었다는 것은 그 부분이 익숙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는 것은 그 부분이 익숙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것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익숙한 것은 훈련이 되었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가
나타나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열처녀의 비유나 달란트의 비유 등도
전부 우리가 익숙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것들이 훈련되어야 하고 익숙하게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선행에 대한 부분에서도 역시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익숙하게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주렸을 때에 우리가 먹을 것을 주거나,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거나,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거나, 벗을 때에
옷을 입히거나,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거나,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는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이 뭔가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 적절한 보상을 해줍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상장을 수여한다든지 혹은 포상금을 준다든지 하면서
그 선한 일을 격려합니다. 그런 선한 일을 한 것이 그냥 사라지게 되지 않게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 선한 일을 따라서 더욱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조금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이 한 모든 행동들이 전부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릴 때,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
그리고 예수님이 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에 그들이 선한 일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말이 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했다고 한다면 이해가 가고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었겠고 그래서 받는
상이 이해가 되겠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힘든 상황에 있을 때가 있었고 그때 자신들이 예수님을 도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마]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그들이
아무에게도 공궤하거나 마시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특별히 주님의 주리신 것을 보거나 목마르신 것을 보거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을 보고 그렇게 대해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들이 자신에게 이러한
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도대체 언제 주님에게 공궤하고 마시게 하는 선한 일을 했다는
말씀일까요? 이러한 의문은 임금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볼 때 이해가 됩니다.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은 선한 행동을 분명히 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주님의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보여주는 의미는 보답을 할 수 없는 한 사람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아니라 큰 자라면 그에게 하는 공궤와 마시게 하는 것과 영접하는 것 등은 얼마나 보상을
생각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여럿이라면 얼마나 또 다른 보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보상이나 보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한 사람에게
했던 선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사람은 여기 내 형제 중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여기 바로 임금님 앞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는 주님의 형제였습니다.
그들이 했던 선행은 예수님을 믿고 따라서 예수님께서 내 형제라고 말씀하시는 구원받은 자에게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선행은 여기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들에게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천국에 이르게 되고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는 자들에게 행한 일이었고 그러한 일을 통해서 그 주님의 형제
중의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이 바로 여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주님 자신에게
한 일과 같았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렇게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백성들이 아무리 작고 비천하고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이런 저런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잊어버리지 않고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래서 그일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예비하신 복을 받고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같은 성도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인 공궤하고, 마시게 하고, 영접하고, 옷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찾아보는 일을 어디에서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것이
이러한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선행은 하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런 상도 주시지 않습니다. 또한 신앙이 있으나 교회는 다니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신앙도 있고 교회도 다니지만 교제는 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바로 다른 사람, 다른 성도에 대해서 행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다른 성도를 공궤하고 마시게 하고 영접하고 하는
등의 선한 일을 한번도 해보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는 결국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하나님의 나라를 복으로 누리고 상속할 수가 있을까요? 그 나라를 상속하면 그 나라에 대해서 다시
공궤하고 마시게 하고 영접하는 등의 선한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직장인들에게 해당되는 용어로 ‘대기발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사전적인 의미는 더이상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직해제, 혹은 직위해제라는 뜻입니다. 대기발령 상태에 있는 사람은 엄밀히 말해서 사표를 쓰거나 해직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일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얼마나 어중간하고 어색한 상태가 되겠습니까? 월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만 믿고 끝내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신앙의 대기발령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교회속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이루면서 나타나는 법인데 오직 하나님만 믿으면서 사람들은 일절 신경쓰지 않으면서 살아갈 때
그것은 신앙의 자발적 대기발령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과 그 나라를 상속받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상속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운영할
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을 원한다면 차라리 지금부터 주님의 형제들 중 가장 작은 자 한 사람에게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보답을 원하지 않으면서 섬기는 일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생활은
훌륭한 다른 사람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훈련의 기회가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전도하다가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자주장사는 자색옷감을 파는 장사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바울의 전도를 통해 마음이 열려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장면이 사도행전에 이렇게 나타납니다.
“[행]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열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천국에
이르는 주님의 형제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는 그냥 열심히 하나님만 공경하는 자로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 16: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특별히
그녀가 말한 이 말에 주목해 보십시오.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주님을 믿는 자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바울 일행을 자신의 집에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공궤하며 마시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섬겼을까요? 그녀가 정말 예수님을 대접한 것일까요? 바울은
그 모든 선행에 루디아에게 갚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주님께 그 선행에 대해서 보고드릴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바로 그 바울이 주님 옆에 서서 저 성도가 우리가 배고플 때 공궤하였고 목마를 때 마시게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주님의 지극히 미약한 한명의 형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루디아가 예수님 앞에 서서 제가 언제
주님께 공궤하며 주님께 마실 것을 드리며 주님을 영접했습니까라고 말하는 자가 됩니다. 바로 그럴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루디아는 진정으로 주님의 원하시는 일을 기쁨으로 행했던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그렇게 루디아 같은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루디아가 되고 바울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바울이 되고 루디아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계명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그 지역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 바로 루디아의 집에 가서 그들과 만나고 위로하고 떠나갔습니다.
“[행]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이렇게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결국 같은 성도요, 같은 가족이요, 같은
지체요, 같은 주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교회에서 바로 이것을 배워보십시오. 바로 이것을 훈련하십시오.
하기 싫어도 이 훈련에 동참해보십시오. 그럴 때 결코 후회하지 않을 하나님의 복과 그 나라의
상속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생활을 통해 이와 같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법을 배워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고 그 영광 속에서 더욱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