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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양선] 49엡 6; 5-9 각 사람이 선을 행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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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6;5-9 각 사람이 선을 행하는 이유_1

 

2017.5. 28. . 주일오전.

 

*개요:  양선을 행함, 1적용, 66양선,  6서신서

[]6:5   종들아 두려워하고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6   눈가림만 하여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6:7   기쁜 마음으로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6:8   이는 각 사람이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6:9   상전들아 너희도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다음부터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며 살아갈 때에 가장 영광받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사람들의 평가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는 사람들의 평가가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자녀들의 모습 자체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에 그 창조의 영광과 기쁨을 온전히 누리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을 때에 모든 것이 다 만족되었던 것입니다. 그와마찬가지로 우리가 선을 행할 때 그 모습 자체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애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원하셨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선을 행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악을 행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가고 세상에 나와 살면서도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원하시던 그 선한 일을세상에서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세상에서 살면서 우리는 선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필요한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선한 일의 본질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선한 일 속에 숨겨져 있는 본질은 잘 모릅니다. 선한 일이이루는 진실한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선한 일을 할 때 구체적으로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선을 행하는 삶을 더 잘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본질과 내용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8절 말씀은 선한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6:8             이는 각 사람이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성경은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그 선을 행한 것으로 인해서 주님으로부터 그대로 받는다고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선한 일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상인 것입니다. 이러한 선행의 의미를 에덴동산에서와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좀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다 선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그곳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선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서 나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이후에는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에덴동산 밖에서 살아가는 삶에서는 모든 것이 다 악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선을 찾아서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만 선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범죄한 자들이 교도소에 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범죄하지않을 때에는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허용되었지만 범죄하여 심판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악의 행동이 됩니다. 이제 선을 찾기 어려운 그곳에서는 자신이 일부러 선을 찾고 그 선을 추구해야만 비로소 선을 발견할 수가 있게된 것입니다.

이사야 11장에서는 그 선한 삶의 모습을 이렇게표현하고 있습니다.

“[]11:6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11:8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11:9             거룩한 모든 곳에서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 어떠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게 됩니다. 그러니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있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있고 어린 아이에게이끌리고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사자가 풀을 먹고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손을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선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게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 선을 행함에 순종하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서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또한 상을 주십니다.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었지만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고 앞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들어가는 것을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바로 그 일을 이 세상에서 이루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상을 주시면서하나님 나라를 예비하게 하십니다. 이사야 11 1절에서도 나오지만 그 일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때에 선행의 삶이 펼쳐지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 싶지 않을 때에라도 선을 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고 모범을 보여주시고 마음을 강하게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선을 이루는 자들에게 주님은 주님의 모습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각 사람에게 온전한 선을 베풀어 주셨던 것을 보게 하면서 그 예수님의 모습을 믿는우리들이 따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혼인잔치의포도주를 채워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베데스다의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음행 중에 잡혀온 여인을 용서해 주셨고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셨으며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선행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선행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선을 베푸시며 살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닮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가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살고자 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놀라운 모범이 되십니다. 우리도 이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이러한 선을 행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우리 삶속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하시는가를보십시오.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6: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예수님처럼기적과 이적을 행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주님의 위치와 수준에서 해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시고 그 영광을 보이시려고 그 모든 선행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선행을 해야 합니다.그것이 바로 종들로서 할 수 있는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할때에도 그것을 그냥 종이니까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선행이 됩니다. 두려워하며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할 때 그것을 그리스도께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고 단순한 업무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이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눈가림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께 하듯 하는 일을 합니다.그럴 때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주를 섬기듯이 사람을 섬깁니다. 이것은 사람에게하듯이 하나님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뜻을 행하는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선을행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과 직접적 관계에 있는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삶이 선을 행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선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이 우리의 선을 행할 영역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선의 대상이 바로 자신의 육체의 상전일 수 있습니다. 그런상황에서도 주를 섬기듯이 하고 사람을 대하듯이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행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체의 상전에게선행을 할 때에 그 상전이 존경할 만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 상전이전혀 존경할 수 없고 심지어 인품도 너무나 악한 사람이라면 그럴 때에도 우리는 선행을 해야만 할 까요? 상사가더 악하면 악할 수록 우리의 선행은 빛이 납니다. 물고 뜯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같이 악하고 같이 강해져야만살아남는다면 그 세계는 이사야 11장의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어떠하든지 내가 주님을 의지하면서 선을 이룰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사람이 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늘 쫓기는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울왕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복수할기회가 왔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울의 악함조차도 나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생각했습니다. 마침내사울왕은 자신의 죄악속에서 죽었고 그를 대신해서 왕이 된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선행이 악행을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선행은 종들만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상전들도 그러한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의 선행의 이유도 지금까지 우리가 본 선행의 이유와 동일합니다.

“[]6:9             상전들아 너희도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상전들이 종들에게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상전들의 상전이 계시고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유명한 상전이라고 해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않습니다. 오직 그가 행한 선한 일로 그들을 판단하십니다. 그상전이 예수님을 믿는 자이면 천국에 가겠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자라면 천국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고 마음을 보십니다. 또한 천국에 들어갈 때에도 그가 천국에 부요한 자인가 부요하지않은 자인가를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고 마음으로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정말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이 세상에서 행하며 약자가 강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선한 삶을 만들고자 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고 약자에게서 빼앗아 강자에게 주며 강자가 약자를잡아 먹는 삶을 살게 했는지를 살펴보십니다.

상전들에게 이러한 선행의삶을 말씀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상전들이 자신의 받은 모든 좋은 것으로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세상에서만 그것을 가지고악을 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삶의 모습은 에덴동산에서의 삶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입니다.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고오직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충만한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삶을 앞으로 얻게 될 사람들이라면 지금부터그러한 삶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상전들이나 종들이나 자유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그 뜻을 실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개와 고양이가 한 집에서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주인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본성상 같이 어울릴 수 없는 개와 고양이를 주인은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개와 고양이가 사이가 좋다면 그 주인이 칭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하게 따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선행으로 나타날 때 영광받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본질을 하나님 닮은 자들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또한하나님을 닮은 자들로 우리가 선행을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것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에는 종으로서 상전에게선행을 행한 예가 있고 상전으로서 종에게 선행을 행한 예가 있습니다. 모압장군 나아만에게 병을 고칠수 있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여종이었습니다. 그 여종의 말이아니었다면 나아만은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병이 낫지도 못했을 것입니다.하지만 그 여종의 선행으로 인해서 나아만은 병이 나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 나아와서자신의 종의 병이 낫기를 간구한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은 칭찬하시면서 이스라엘에서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 종이 병에서 나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있습니다. 이들은 주안에서 용서하고 용서받고자함으로 진실한 선행을 나타냈습니다.

항상 선행 뒤에는 좋은결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설사 현실에서선행으로 행하였지만 결과가 나쁘게 나온 것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선행을통해 우리들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 패역해지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살아가는 삶이 바로 선행을 행하는 삶입니다.

 

선행의 본질과 내용을 기억하고삶속에서 이러한 선행을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크게 갚아주시는 은혜를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자들을 갚아주시고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고그 하나님의 은혜를 삶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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