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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성숙] 58히 5; 6-10 그의 순종함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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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 6-10 그의 순종함으로영원한 구원을 받음_1

 

2017. 3. 5. . 주일오전

 

*개요:  전도의 의미, 53희생~83전도, 2분석, 6서신서,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순종함을 배워서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복음전파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죽으시기 전에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다음에야 비로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고 세상 만민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기본적으로 예수님의 희생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결코 전도할 수없습니다. 또한 전도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마다혹은 전도를 받을 때마다 예수님의 희생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단순히 제품홍보가 아닙니다. 또한 기업광고도 아닙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전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놀라운 증거가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서 죽으신 이후에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금도 그 증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증거가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혜택을생각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은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예수님의 희생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도 모르고 예수님의 희생 자체만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이유를 알아야만 그 희생에 대한 진정한감사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가장 거룩하신 예수님의 희생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6절 말씀에 그 이유의 시작이 나타납니다.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여기서 다른 데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시편 110:4에 나오는바로 이 말씀이 인용된 것입니다.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편 110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세에 대해서 말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는 바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예수님에게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멜기세덱은아브라함 시대의 실존인물이었지만 그 존재는 단순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내려온 자였습니다.그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7: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다음은 살렘 왕이니 평강의 왕이요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로 볼 때 멜기세덱은 하나님의제사장으로 천상에서 하나님께 제사장으로 섰던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제사장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책임과 의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의 역할을 감당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을 위한 대속제물이되시는 희생을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각 사람에게도 어떤 중요한책임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책임은 마치 십자가를 지는 듯한 괴로움일 수 있습니다. 그 책임을 받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무겁고 괴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그 책임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가능한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그 책임을맡게 됩니다. 그렇게 한번 책임을 맡게 된 다음에는 그 일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 일을 이루어내야만 합니다. 야근을하기도 하고 철야를 하기도 하고 쉬지 못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힘들기도 하면서 그 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바로 그러한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바로 세상 죄에 대한 제사장 역할을 맡으셨던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이하신 일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육체에 계실 때에받으셨던 고난이 무엇인지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고통은채찍질에 맞는 것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과 두 손과 두 발에 못을 받는 것과 그리고 그 상태로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자신을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맡기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예수님은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하실 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경건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다라고 할 때 그 경건하심을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경건의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요? 또는 경건의 연습을 할 수 있었을까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죽음의고통을 겪고 계셨습니다. 그 위에서 예수님이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간절함 속에서 예수님은 세속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것이바로 구별되는 것이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때문에 경건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생각한다고 해서 다경건한 것이 아닙니다. 이생을 등지고 저생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경건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생을 등지는 이유가 바로 이생에 대한 목표때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더 편안을 누리고 싶고 좀더 유익을 누리고 싶고 좀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이 세상을떠날 때에 그는 정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일까요? 그는 경건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가장 세속적이었고 그것때문에 이 세상을 떠날때 그에게는 가장 세속적이었던 모든 욕심에 대한 가혹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생각하셨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었을때에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쓰셨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예수님은 가장 경건하신 분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모든 일을 이루시고 자기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다. 그분은 단순히 이생을 떠나 죽음에 이르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죽음 이후에 가야할 곳이 명확했습니다. 주님은 조금도 그 죽음 이후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하고 운명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경건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은 들으심을얻었습니다. 그 모든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던 것이었습니다.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음에서 다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통해 우리는 그 간구가 들으심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일들을 보면서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놀라운 희생의 이유는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이 이렇게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경건하심으로 인해서 들으심을 얻게되었고 그로 인해서 놀라운 희생을 이루실 수 있었다면 이러한 희생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에대한 중요한 단어를 우리는 8,9절에서 보게 됩니다.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여기에서 모든 희생의 이유로 찾을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전함을이루셨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책임을 맡은 분으로서 예수님이 만약 순종하지않았다면 결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전함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은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전함을 이루셨습니다. 그 순종함이라는 것이 바로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리는 것이었고 그러면서 동시에경건함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비난하거나하나님께 불평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후회하시거나 낙심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는 온전한 마음으로 경건함을 이루셨고 그것을 통해서 온전한 순종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완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이 바로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서온전함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그 순종함과 같이 예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주님은 책임지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붙드시고 그 영혼을 맡으시고 그 간구를 들으심과 같습니다. 예수님과 성도 사이에 생겨나는 그 순종함으로 인해서 주님은 그들을 위한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구원의 근원이 되어주셨습니다. 그 죄를 씻으십니다. 그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 죄로 인해서 대신 죽으십니다. 그 죄값을 대신 치러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불완전한 구원의 근원이 아니라 미완성된 구원의 근원이 아니라 완전한완벽한 더할나위없는 구원의 근원이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의 구원에 있어서 시작이자끝입니다. 어떤 존재도 이룰 수 없는 가장 완벽한 구원의 증거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구원하심에 이의를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 구원하심에 결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구원하심을 공격하거나 비난하거나 제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몸바쳐 피흘려 이루신 것을 어느누구도 변개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가 순종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인간 사이가 순종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구원하심에 순종하기 때문에바로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로 향한 놀라운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께로 가는 놀랍고 유일한 참된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희생의 이유는 바로 순종함이었습니다. 그 순종함이 가장 놀라운 희생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모든 예수님의희생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본문은 처음시작했던 그 예수님의 책임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우리가 읽은 본문의 시작은 6절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라고 부르신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희생과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은 10절에서 다시 멜기세덱의 반차를따른 대제사장이 되셨는데 하나가 달라졌습니다. 바로 제사장에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표현으로는 이렇게 바뀝니다. 제사장은 ερεύς (hiereus, priest)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은ρχιερεύς (archiereus, high priest)입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의 책무를맡으셨지만 그 책무를 너무나 완벽하게 순종함으로 이루셨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칭호의 변화는 예수님의 순종함과 그로 인해서 이루어진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책임자(제사장)가아니라 유일한 성취자(대제사장)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위치와 영광은그 이전이나 그 이후나 동일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순종하심을 통해서 그 가치가 완전해졌습니다. 이는 마치 구세주 이실 것과 구세주 이신 것이 다른 것입니다. 책임을맡기 전과 책임을 감당하고 난 다음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이렇게 영광스러운것임을 깨달을 때 그렇게 영광스러우신 예수님의 순종이 바로 전도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를하고 전도를 받을 때 그 속에는 예수님의 가장 아름답고 놀라우신 희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번 경부고속도로를 가다 들른 한 휴게소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홍보게시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1968년에 착공이 되어서 1970년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의 건축역사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내었지를 보여주는 내용은 여러모로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구원의 길도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면 단순한 구원의 길이지만 그 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생각하면놀라운 구원의 길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던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깨닫고 그 예수님께 감사하다보면 바로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 길에 동행하시는 것을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구원의 원리가 아닙니다. 그분은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구원의 소식을 듣고 순종하며 나아오는 자들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때로는깊은 감동으로 때로는 커다란 눈물로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예수님으로인해 구원받았음을 감사하는 것은 단순히 미래에 있을 천국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를인도하시고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을 느끼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구원 속에 있는 이 놀라운 은혜를기억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깊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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