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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62요일 1; 6-10 빛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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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요일 1; 6-10 빛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_1

  

 

  

2019. 2. 10. . 주일오전.

  

 

  

*개요:  하나님과의 동행의 중요성, 54용서, 3관점, 6서신서

  

[요일]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유명인들에게는 두 종류의 팬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 팬이고 다른 하나는  사생팬입니다. 사생팬은 유명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24시간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유명인들에게 사생팬은 결코 반가운 대상이 아닙니다. 사생팬이 따라다니면 다닐수록 또한 많으면 많을수록 유명인은 괴롭습니다. 사생팬은 유명인을 괴롭히는 존재일 뿐입니다. 팬이기는 하지만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만 진정한 동행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괴로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지 여부를 생각할 때 자신이 정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동행한다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악수를 할 때 혼자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악수를 하면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악수를 하게 됩니다. 사실 악수 자체가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악수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악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와 연합하기를 원하시고 성도를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동행에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따릅니다.

  

그 뜻을 아는 것은 자신의 기분이나 상태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말씀의 깨달음과 성취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게 됩니다. 모든 계기판을 생각해 보십시오. 체중계는 내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확한 몸무게를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온도계는 내 몸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그 장소의 온도를 보여줍니다. 자동차 주유계는 별로 기름을 쓰지 않은 것 같은 운전자의 느낌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가장 정확한 현재의 주유량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느낌이나 감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하심에 대해서도 성도 자신의 판단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에 그 뜻하심이 무엇이라고 되어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것을 6,7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일]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동행한다고 말하지만 어둠에 행하면 말씀의 기준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그것은 성도들 간에 사귐이 있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의 기준으로 볼 때 거짓말을 하거나 진리를 행하지 않음을 볼 때 어둠에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반대로 성도들과 사귐이 있고 예수님의 피가 죄를 깨끗하게 하심이 있으면 그 사람은 빛 가운데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이 성도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빛 가운데로 행하는 것이 사귐이 있고 죄에서 깨끗함을 받는다는 것은 그것이 밝히 드러나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에 행한다는 것은 숨기고 속이는 것이지 정말 어두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에 행하는 것처럼 스스로 속이고 숨기면 거짓말과 불의를 행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것은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드러내시며 보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숨기는 것이 없고 사귐이 있고 죄에서 깨끗함을 받는 자들이 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에도 그의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안색을 보기도 하고 태도를 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은 그 모든 것을 숨길 수 있지만 그의 모습은 그의 상태를 숨길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태를 적절하게 보여줍니다. 그 상태를 깨달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가 안좋을 때 그러한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을 더욱 심각한 상태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간단한 검사나 검진을 통해서 이상 증후가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빨리 더 자세한 진단을 받았을 때 혹시 경험할 수 있었던 더 큰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빨리 발견하면 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상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음이 보여주는 안좋은 결과는 어둠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둠에 행하다가 결국에 맞이하게 될 안좋은 결과는 더욱 깊은 어둠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더 깊은 어두움은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두움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미리미리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지 혹은 진리를 행하지는 않는지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절대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다가 결국에는 세 번이나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의 호언장담에는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가 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을까요? 그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너무나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은 사고를 잘 피하니까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되고 자신은 총알을 잘 피하니까 방탄조끼가 없어도 되고 자신은 수영을 잘 하니까 구명조끼가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너무 믿을 때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큰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만용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늘 스스로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더욱 조심해서 정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마음가짐으로 정말 필요한 것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마음을 갖는 자세입니다.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전에도 죄가 있었고 지금도 죄가 있고 앞으로도 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주님이 주시는 은혜인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가 없다고 말해 버리면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또한 사실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자가 되어서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항상 자신의 죄를 자백하기 때문이고 그럴 때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의로워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주님과의 동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동행이 의인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에게 가능한 일이 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주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베드로후서 19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벧후]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기억하는 자는 어떤 삶을 살게 되느냐 하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믿음에 덕을, 지식을절제를, 경건을, 우애를, 사랑을 공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서 동행하는 자만이 행할 수 있는 신성한 성품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추구하는 자들이 이루는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죄가 사함받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억하는 자들이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이루는 모습이 신성한 성품이고 그러한 신성한 성품을 이루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자들도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 말에는 본질적으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으로서 깨끗하게 하심을 받아서 천국에 가는 것이지 결코 의인으로서 보상을 받아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의인이 가는 곳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죄인이 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경받는 사람, 훌륭한 사람, 많은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음을 자각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모여있는 교회에는 어떤 자들이 들어옵니까? 의인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이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항상 죄인입니다. 시간이 얼마가 되었던 주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그 죄인이 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함을 얻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운동을 하기 전 항상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합니다. 매일 운동하는 사람들이라서 스트레칭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몸을 풀어줍니다. 그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신앙인일수록 더욱 회개를 많이 하고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죄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요일]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듭니다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죄를 짓고 있었고 다만 그리스도의 피로 항상 깨끗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입니다. 입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입니다. 항상 닦고 관리를 하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는 것 뿐입니다. 원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냄새에 익숙해진 것 뿐입니다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동행하는 하나님은 빛 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 그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빛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까? 아니면 쉽게 느껴집니까? 만약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리와 동행해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 많은 우리를 참아 주시고 받아주시며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어려우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이 죄인인 것과 그 죄가 사함 받은 자인 것을 늘 기억하며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에 대해서 생각할 때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님을 잘 따라갈 때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다른 죄인들도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것을 사모할 것이며 그 사모함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우리 속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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