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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8히 2; 1-9 천사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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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히 2; 1-9 천사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_1

  

 

  

2018. 10. 21. 주. 주일오전

  

 

  

*개요:  은혜의 근원이신 그리스도, 56충만, 2분석, 6서신서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히]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히]2: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히]2: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히]2: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히]2: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아무리 좋은 것을 알고 아무리 좋은 내용을 들어도 자신이 그 내용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흔한 속담처럼 소귀에 경 읽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듣게 된 것과 알게 된 것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내용에 대해서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갈 길이 정해지고 그 길에 있어서 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하철 안내방송이 하차할 역을 알려줍니다. 그 내용을 잘 듣고 내려야 할 곳에 내려야만 목적지에 수월하게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정보로는 자동차에 달린 내비게이션 안내음성이 있습니다. 버스 안내방송도 있습니다. 열차 안내방송도 있습니다. 공항 안내방송도 있습니다. 공항에서 어디로 가는 어떤 비행기가 곧 출발한다고 할 때 그 내용을 잘 듣고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주로 내비게이션 안내방송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안내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다가 어려움 당할 때가 있습니다. 주행도로에서 우회전을 하거나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엉뚱한 길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목적지를 안전하게 가려면 안내음성을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말씀 1절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1장에서 다루었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움은 우리가 따라나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그 영광스러우신 그리스도를 따라나가야만 비로소 그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그를 기뻐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움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냥 흘러 떠내려갈 뿐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니 구원을 못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움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경우가 더 이상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상한 경우가 되지 않도록, 다시 말해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흘러 떠내려 간다는 것이 이상한 경우인데 그 이상한 경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2,3절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히]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견고하게 나타나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씀의 증거에 대해서 거부하고 대적하며 불순종함은 하나님의 공정한 보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 영광을 따르면서 얻게 되는 구원의 의미를 등한히 여기면 역시 범죄한 자들과 불순종한 자들이 받았던 보응과 같은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흘러 떠내려 가는 이상한 경우란 바로 이와 같이 영광스러우신 그리스도를 통한 큰 구원을 우습게 여기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보응을 받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 한 예가 바로 세례요한의 경우입니다. 세례요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다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인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세례요한 자신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그러한 세례요한은 천국에서 가장 낮은 자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눅]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 보다 큰 자가 되는 이유는 세례 요한 자신이 예수님의 영광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국에는 가지만 그 천국에서 가장 낮은 자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중요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유명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4절을 보십시오.

  

“[히]2:3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준에서는 가장 큰 믿음이 됩니다. 물론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더욱 크게 갖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이자 중요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증언을 신뢰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큰 자가 되는 것이 그 가치를 잘 보여줍니다. 큰 믿음을 갖는 것은 별 것 아니라고 한다면 그 가치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지만 큰 믿음을 가진 자가 큰 자가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할 때에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더욱 놀라운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증언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진지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그 진리란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종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그리스도 인들을 존재하게 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천사보다 낮아지셨음과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올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자들이 됩니다. 아무나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천사보다 낮아지게 되셨는지 그 이유를 아는 자들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다음 성경구절을 보십시오.

  

“[히]2: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히]2: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히]2: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히]2: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참 인간이 되게 하심으로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님의 행하심은 오히려 더욱 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기 위함이었고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천사보다 못한 자로 떨어졌었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분명 주께서는 그를 생각하시며 그를 돌보셨지만 하나님은 그가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고 그로 인해서 끔찍한 고통과 환난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 이후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으로서 온전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나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희생과 헌신을 중심으로 하여 더 온전한 영광과 존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반드시 그 이후의 영광과 존귀를 생각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심한 고난을 당해야 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하심과 응답하심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우리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고 그 고난 이후에 영광과 존귀를 얻으셨기 때문에 결코 그 일을 가볍게 보거나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모든 희생의 이유와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이유와 목적을 밝혀줍니다. 

  

“[히]2: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 만물이 복종하게 하셨기 때문에 마땅히 만물이 그렇게 복종해야 하겠지만 우리는 아직 만물이 주님께 복종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또한 오히려 만물이 주님께 복종하기는 커녕 천사들보다도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고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럴 때 그렇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해서 죽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기 위해서 그렇게 만물은 주님께 복종하지 않았고 천사들보다도 잠시 못하게 하심을 입었고 죽음의 고난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 만물이 주님께 복종하지 않음과 천사들보다도 잠시 못하게 하심을 입음과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인해서 가장 커다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는데 그렇게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신 이유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으신 대속자요 구원자가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약하게 되심과 죽으심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아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고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 세상을 다스림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무엇으로 인해서 영광받으셨는가를 생각하며 그 중요성과 가치와 의미를 온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는 역할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강하여졌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봅니다. 많은 재물과 많은 재원과 많은 인력을 어디에 쓰는지를 봅니다. 그 속에서 잘하는 교회도 있지만 잘 못하는 교회도 봅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와 낮아지심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 현재 있는 것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이 다스리게 하는 것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있는 것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목적과 그 죽으심의 의미를 잘 알아야만 비로소 이 세상 나라에서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든 것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낮아지고 약해졌다고 해서 오히려 기를 쓰고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자들을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을 때에 더욱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폄하하며 평가절하하는 자들을 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에 그 죽으심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라고 비난하며 조롱하는 자들을 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약하고 천사보다 못하며 힘없이 죽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놀라운 사랑이 있었기에 그 모든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을 천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영광과 존귀를 얻으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섬기고 그 나라를 위해서 애를 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훈이자 증언입니다. 앞으로 영광스럽게 되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 그리스도께 대해서 어리석은 자세를 취하지 말고 오직 그를 높이며 그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며 영광과 존귀에 이르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작은 교회, 초라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의 상황과 상태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모든 이유 속에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영광스러우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낮아지심과 영광스러움의 기쁨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어 그리스도의 살아나심을 부인했던 도마는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그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실 때에 얼마나 부끄러워했겠습니까? 우리도 아직 그리스도께서 그 영광과 존귀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분을 우습게 여기고 소홀히 생각한다면 마침내 그리스도의 영광과 존귀가 나타났을 때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겠습니까?

  

이제 이러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생각하며 그 영광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때에 더욱 그리스도를 따라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는 아직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과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되신 것과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것이 모두 놀라운 영광이 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개의치 않으시면서 오직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죽으실 정도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모든 사람 중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이 위해서 죽으셨던 그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 귀한 은혜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마음 속에 기억하며 신앙생활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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