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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5딤후 1; 12-18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주가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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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딤후 1; 12-18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주가 아는 것_1

  

 

  

2018. 8. 19. . 주일오전.

  

 

  

*개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 56충만, 6서신서, 2분석

  

[딤후]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1: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딤후]1: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딤후]1: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딤후]1: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는 재미있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얼굴만 가려도 온몸이 다 숨겨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다운 순진함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진함이 바로 성도들에게도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만 하고 있으면 괜찮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실천을 할 때에 비로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생각만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얼굴만 가리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그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행동을 통해 나타나게 되고 결국 다른 사람이 알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 속의 진심을 내가 알고 다른 사람이 아는데 하나님은 모르시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은 내가 알고 다른 사람이 알며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그렇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어떤 삶을 살았는가 입니다. 그 삶을 통해 그 신앙도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신이 믿는 자를 알고 그분이 주의 날까지 끝까지 지키시리라고 확신한다고 하였습니다.

  

“[딤후]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렇다면 과연 정말로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또한 정말로 확신하는지를 삶으로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삶 속에서 그가 사실은 부끄러워하고 또한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는 말뿐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말로 얼굴은 숨겼어도 행동으로 몸은 숨기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정말로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확신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의 말은 진실함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사람들도 알고 하나님도 아시는 충성스러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에게 뿐만이 아닙니다. 바울에게서 권면을 받고 있는 디모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해야 할 것을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딤후]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바울은 디모데가 단순히 바울에게서 들은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그것을 본받아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단순히 지키기만 한다면 그것은 목적 없는 순종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 시대에 이 말씀을 적용해 본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종교생활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과 사랑으로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는 것이었지 그렇지 않고 불신과 미움이나 분노와 증오로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가르침의 차이는 그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는가에서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 힘과 의지로 그 모든 것을 행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을 따를 때만이 각 성도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그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만약 지켜야 하는 바른 말이나 아름다운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믿음과 사랑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바른 말이나 아름다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성도들이 지켜야 하는 모든 것은 단순히 바른 말이나 아름다운 것이라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지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킬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알고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는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속에서 살펴본 이러한 원리가 복잡하게 들리지 않기 위해서 왜 사도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지난 주 우리는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의해서 전해지며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으로 인해서 굳세어 집니다. 그렇게 세워지는 것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것이 되고 나의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믿음과 사랑과 성령으로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우신 것을 세웠지만 그 모든 것이 변질되거나 혹은 추악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나 횡령이나 폭행이나 폭력 등의 사건이나 기타 모든 불법한 일들에 대해서 단순히 지킨다는 생각만 있다면 무엇인가를 지키는 모든 행위들은 불법한 일들에 대한 협력이나 방조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진실과 선행에 대한 외면이나 무관심이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도 일치해야 합니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만 일치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의미로서 하나님의 뜻에도 일치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만 좋은 것이라면 그것은 가은 어리석은 것이 됩니다.

  

이제 이러한 모든 가르침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15절부터 18절까지는 바로 이러한 일들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설명이 됩니다.

  

“[딤후]1: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디모데가 안다고 하였습니다. 이 일이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모든 사람이 변질된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하고, 바울을 따라서 로마로 간 사람들이 바울이 죄수가 된 것을 보고 배교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혹은 디모데가 사역하는 아시아 지역의 성도들이 배교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전부 바울을 버리고 떠난 것은 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알고 디모데가 알고 그리고 하나님도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떠난 그 당사자들만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으로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떠남이 더욱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그들은 바울과 디모데가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잘 아는 자들이었지만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바울과 디모데를 버리고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에게 자기 나름의 의미와 목적이 있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보여지기에는 그들은 단지 바울을 버리고 떠난 자들로만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격려하며 이러한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주님을 의지할 때 바울과 디모데는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며 주님이 지키실 줄을 확신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은혜로 살아가는 삶의 실천은 떠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취할 것인가 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떠날 것인가 떠나지 않을 것인가, 또는 떠났을 때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확신한다면 언제든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지켜야 하는 선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선을 버리는 것은 그 선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까지도 함께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지켜야 하는 선을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선이 실천되는 이유는 그 선이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흘러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선한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도 역시 은혜의 충만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의 예로 사도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딤후]1: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딤후]1: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오네시보로가 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바울을 자주 격려해 주었고 그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로마에 있을 때에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습니다. 그가 행한 이러한 실천과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집에도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네시보로의 행동은 그가 알고 바울이 알고 또한 하나님이 아시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서 그 마음 속에 넘치는 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 속에 생각으로만 두지 않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이 삶의 모습으로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씨앗이 열매 맺는 씨였다면 그 씨앗의 정상적인 활동 속에서 마침내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충만한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됩니다.

  

구체적인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서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13: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13: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13: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13: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원 주인과 포도원 지기는 모두 간혜히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실망하면서 찍어버리기를 원했지만 포도원 지기는 그러한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고 열매가 열릴 수 있도록 간절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자체로 이미 포도원 지기는 자신의 할 일을 다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 자신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화과 나무입니다. 이 무화과 나무가 여전히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가 땅에 붙어있는 이유가 없겠지만 그러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땅에 붙어있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생깁니다. 열매를 맺는 무화과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혹은 못한다면 그 모든 일을 열매 맺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손해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그렇게 열매 맺을 수 있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제 해야 하는 것은 열매를 맺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굉장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도 기뻐하고 다른 사람도 기뻐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어떤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은혜의 충만한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일제 시대 때 모든 믿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고백이 가장 중요한 열매였습니다.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스스로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신앙고백은 과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신앙을 고백하느냐 였습니다. 그 신앙에 대한 고백이 존재할 때 험난하고 강포한 시대를 견뎌낼 수 있었고 그 고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아예 떠나 배교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도 사탄은 놓치지 않고 그 실수를 빌미 삼아서 순전함과 성실함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순간도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고 혹 실수를 했을 때에도 반드시 회개를 통해서 바로 잡아야 했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자신이 알고 남이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천을 이루게 될 때 다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딤후]1: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그가 행한 일은 주께서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해주실 만한 귀한 일이었고 그의 에베소에서의 봉사는 디모데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은혜의 충만한 모습을 통해서 바울은 그가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더욱 얻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미 나타낸 은혜의 충만(봉사)은 더 큰 은혜의 충만(긍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입니다. 이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맞추어 행하려고 할 때 비로소 이 시대를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느냐는 것이 중요하고 그 마음이 어떻게 나타났는가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진실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것이 마음 속에서 흘러 넘쳐서 결국에는 은혜의 실천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보로의 모습을 보며 우리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열매를 맺든 못 맺든 시간은 흐르고 있고 실천을 하던 안하던 언젠가 그 모습을 평가할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바로 이 일을 통해서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 열매와 실천은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과 모든 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해진 결과입니다. 그럴 때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비로소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모습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의 모습이 되고 그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 구원의 가치와 영광을 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백성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자신의 신앙고백이 결코 헛된 입술의 고백만으로 끝나지 않고 진실한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알고 남이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놀라운 열매가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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