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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용서] 1창 18; 23-32 세상을 향한 용서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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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 23-32 세상을향한 용서의 마음_1

 

2017. 11. 5. . 주일오전.

 

*개요:  용서의 근원, 4극본, 54용서, 1오경,

[]18:23             아브라함이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18:24             그 성 중에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18:25             주께서 이같이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18:26             여호와께서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18:27             아브라함이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18:28             오십 의인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18:29             아브라함이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18:30             아브라함이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아니하리라

[]18:31             아브라함이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18:32             아브라함이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아니하리라

 

이번 달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어느때보다도 우리는 용서가 부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반대로 우리가 어느 때보다도 용서가필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웬만해서는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또한 용서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용서를 주고 용서를받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얻는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용서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가없는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정을 봐주지 않고 여지를 남겨두지 않습니다. 가혹하고 엄격하며 분명하고 냉철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더낫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특정분야에서 용서를 해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더 많은용서를 요구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결국에는 질서가 무너지고 규칙이 깨어지며 부조리와 무질서가 활개를 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생각하면서 용서를 거부할 때 이미 용서의 결과가 보여주는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린것입니다. 또한 그 뿐만 아니라 용서의 과정에서의 가치도 역시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없이 만든 결과는 그것이 좋던 나쁘던 간에 인간적인 의지의 표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로 인해서 결국에는스스로 자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결과가 됩니다.

또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용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용서의가치는 그 용서를 이미 보여주신 하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행할 때 용서를 보여주신 하나님을본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용서를 거부하며 제거해 버리면 용서를 통해 모범을 보여주신 하나님을따르지 않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대적하고 부인하던 사탄의 모습이 형성되게 됩니다. 그래서우리는 용서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야 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결과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때 용서의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용서의 은혜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창세기 18 23절부터 32절까지에 나오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의 내용입니다. 이 대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용서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 간구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요구와 간청을 거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그 간구에 응답하셔서 그가 원하는 용서를 들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불 가운데멸망하지 않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용서를 구하는 아브라함의 기도에 귀를기울이셨습니다. 그 시작은 23절입니다.

“[]18: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멸하려 하시나이까

[]18: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영접하다가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천사는 또한 사실 하나님의 현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눌 수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살펴보고 그들의 악행을 확인하게 되면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라는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용서의 기준은 그곳에 존재하는 의인이 50명이 있다면 그 의인 50명을다른 악인들과 함께 멸망하게 하시느냐는 용서의 간구였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그 의인들이 다른 악인들과함께 멸망하게 하시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용서의 간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소돔과고모라의 만연한 악행을 생각하면 그 죄악을 용서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악인들과 함께 의인들을 죽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간구대로 만약 의인 50명을 찾으면 그 성을 용서해주시기로 허락하셨습니다.

“[]18: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악인들 때문에 죽게 되는 의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며 그 의인들의존재가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서 변화의 계기가 되고 악행의 확장을 막는 방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악이계속 번창해 나간다면 결국에는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돌이켜서 악이 억제되고 선이 발전한다면 소돔과 고모라는 다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선하신 뜻이었습니다.

이 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악이 억제되고 중단되어서 선이 다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이 있고 또한 그러한 소망을 갖고 있을 때에 용서가 의미가 있습니다. 용서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원하시는 변화에 대한 간구와 바램의 표현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고 또한 용서를 받습니다. 계속 죄악을 행하고 악행을 일삼으라고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가 수정되고 잘못이 교정되어서 나중에는 실수하지 않고 잘못하지 않는 변화된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하며 용서를 얻게 되기를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의 근원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위해서 용서를 구하는 자였습니다. 의인이 악인과 함께허무하게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였습니다. 또한 악인도 의인의 존재와 함께 소망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자였습니다. 그러한 귀한 마음을 가진 자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간구를 들으신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하나님의 뜻에 맞는 간구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 속에 이러한 용서가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용서를 깨닫고 알고 있는가, 그 용서 속에서살아가려고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시려고 하시고 용서를 간구하라고 하시는데우리는 용서해 주지 말라고 하거나 혹은 용서를 간구하지도 않는 자는 아닙니까? 누구보다도 먼저 심판하는자는 아닙니까? 그 매정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으로 채워져 나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은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의 반을 다 탕진한것에 대해서 화를 냈고 더군다나 그런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아버지의 환영을 받고 작은 아들로 복귀하게 된 것에 대해서 분노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용서했지만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아버지에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아버지를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런 모습은 아버지를 닮은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큰 아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자이고 아버지를 닮은 자였다면 함께 작은 아들이자 동생을 용서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입니까? 여러분 자신의 모습 속에서 혹시큰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문제이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아들은 말썽도 안피우고 재산을 탕진하지도 않았고 문제행동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집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었으며 열심히 일을 했고 심지어는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열어본적도 없습니다. 그런 큰 아들이 무슨 문제일 수 있겠습니까?

용서의 본질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용서의본질은 하나님을 닮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의 은혜에 연합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은 모두 다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큰 아들도 당장작은 아들을 용서하지 못할 때 모든 안좋은 행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는 작은 아들이 돌아와서 열린잔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에서 나와버렸습니다. 그자신이 아버지에게는 작은 아들과 동일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않기 위해서는 온전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개인의 삶 속에서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우리는 용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한 번의 용서를 구한 것으로 끝난 것이아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이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8: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18:28             오십 의인 중에 명이 부족하다면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는 50명 중에서 다섯 명이 부족할 때에도 용서해 달라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50명이 아니라 45명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었던것입니다. 의인의 숫자가 줄어들어간다는 것은 더욱 악인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인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의를 이루기 위한 가능성이 더욱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포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좌절해 버립니다. 더는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이고 용서를 얻기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냥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용서가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하지만그 실수가 반복될 때에는 더이상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한두 번의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수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다음은 절망입니다. 더이상 가능성이 없고 더이상 발전의 소망이 없다면 그 다음에는 포기와 좌절 뿐입니다. 악에 무너지는 것이고 선에 대한 소망을 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용서가 사라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용서해 주십니다. 5명 부족하다고 해서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것은 선에 대해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 발전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고 그 용서 속에서 우리는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용서를 받을 때까지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가정에서 이러한 용서가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이러한 용서가 끊임없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용서로 채워지고 그 용서 속에서 살아갈 수있습니다. 그럴 때 잘못이 사라지게 되고 실수가 보완되고 단점이 수정되고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용서가 없다면 아무런 발전도 없지만 용서가 있을 때 놀라운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용서의 진정한 핵심은 이러한 용서와 그 용서를 통한 소망은 포기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용서에 대한 간구를 하나님께 계속 올렸습니다. 그는 45명에서 40명이있어도 용서를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30명이있어도 용서를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용서를 간구해서 20명이 있어도 용서해 주시겠다고 응답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10명이있어도 용서해 주시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8: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가 이렇게 10명밖에 없어도 용서를 해달라고 간구한 것은그가 용서를 간절히 바라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살리실 수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이전에 소돔과 고모라가 가나안의 일곱 왕들에게 탈취를 당했을 때에도 그는 직접 종들을 데리고 나가서 구원해내었던 자였습니다. 그 성을 향한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용서가 살아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의인10명만 있어도 용서를 해주시겠다고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설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도 그 성에 의인 10명이 있으면 용서해주실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그 성에 의인 10명이 있으면 그 성을 용서해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악인이 그냥 심판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그들이회개하고 악을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든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열 명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남은 의인들을 성밖으로 피신시키시고 성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용서를 행하지 않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용서는 의인들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10명 미만의 의인들은 그 성을 빠져나오게 하셔서 살리시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실제로 천사들이 그 성에 도착했을 때 그 성에 살고 있던 롯은 악한 비류들에게 포위당해서 그와 그의 온 가족은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롯과 그의 가족을 살리시고 그들을성밖으로 인도하셔서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성이 심판을 받은 것은 용서가 이루어져서 정의가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성에 남아 있을 때에는 성을 용서하시는 것이 주님의 정의였지만 의인이성에서 나왔을 때에는 성을 심판하시는 것이 주님의 정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말했던 용서의의미였습니다.

[]18:25            주께서 이같이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용서와 정의를 이 세상에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정의는 하나님께 맡기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용서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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