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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긍휼] 19시 103; 8-14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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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3; 8-14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_1

 

2017.9. 10. . 주일오전.

 

*개요:  긍휼의 의미, 2분석, 3시가서, 55동행-64긍휼

[]103:8           여호와는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103:9           자주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3:10         우리의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03:11         이는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03:12         동이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03:13         아버지가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03:14         이는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그것을 정말 잘하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으면 피아노를 잘치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수영을배우고 싶으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긍휼하심을 배우고자 한다면 하나님의긍휼하심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장 온전한 긍휼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더 긍휼이 많으신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배우려고 할 때에 긍휼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속성을 닮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는 것이고 하나님을 닮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닮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닮고 그 모습을 닮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설명을 잘 살펴봐야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대한 설명을 마음속에 담아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그 설명이 우리의 삶속에 적용되게 됩니다. 그럴 때 그 모습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볼링을 잘 하기 위해서 볼링선수에게 혹은 볼링고수에게 배운다고 해보십시오. 먼저 볼링고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따라하게 할 것입니다. 초심자는 대개 그 모습을 잘 따라하지 못합니다.자세가 안좋거나 혹은 동작이 부드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공은 고랑에 빠집니다.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다시 볼링고수는 초심자의문제를 지적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초심자에게 따라해보라고 할 것입니다. 한번에 다 되지는않겠지만 이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초심자에게서 볼링고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럴 때 비로소제대로 따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적용해 볼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설명을보아야 합니다.

“[]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103:9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에 대하여 올바르게설명된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분입니다. 그 설명을 통해서 우리는 긍휼이 단순히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은혜와 노하기를 더디함과 인자함이 풍부함 속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모습을 기억할 때 그로 부터 나오는 행동도 알 수 있습니다. 자주 경책하지 않으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긍휼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긍휼로부터 이러한 태도와 행동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어떻게 대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심판을 내리시면서 동시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가죽옷을 만들어 주셨고 그들이 있는 세계에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만 계시고 아담과 하와가 있는 에덴동산 밖에는 관심을 끊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담과 하와가 있는 그 에덴동산 밖에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심지어는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에도 가인에게 표를 주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모든 일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 긍휼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닮을 때 우리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잘못을 행한 자를 내버리고 악을 행한 자를 징계하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들 속에서 기회를 주시고시간을 주셔서 악한 자가 돌아오게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시간이 비록 걸릴 지라도 마지막에는 의미있게좋은 결실이 맺히도록 기회를 주시고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우신긍휼의 은혜가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타나기를 바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를 긍휼하게 여기신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은 자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마땅하지만만약 그 긍휼하심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긍휼하시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니라 사실은 그 은혜와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긍휼하심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받은 은혜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악한 평가와 악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여기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른 종들과 달리 주인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였습니다.

“[]25:24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받은 달란트를 그냥 감추어 두었다가 아무 이윤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주인에게 가져왔던 것입니다. 주인을굳은 사람으로 야박한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주인에게 어떠한 좋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좋은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주인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자신은 한 달란트 밖에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것은 다른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에 비해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럴 때 주인에 대한 평가도 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과는 정반대로 긍휼이 없고 은혜롭지 않으면 잘화내고 자주 경책하며 노를 영원히 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없어서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는다른 사람에 비해서 아무것도 받지 못한 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처음부터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한 달란트에 해당하는 것을 받았습니다. 바로 구원의 기회를 받았던 것입니다. 시편으로 돌아와 10절을 보십시오.

“[]103: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03: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죄에 대한 용서와 사하심은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죄악에 따라 그대로 갚음을 받았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공의로운 심판으로부터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장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긍휼히 여기심을 받았음에도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얻은 바로 그 구원도 스스로 거부하는 셈입니다. 왜냐하면자신이 좋게 생각하지 않는 분으로부터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게 생각하지 않을때 자연히 그로부터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별로 상관이 없게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주신 구원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올바르게고백할 때에 비로소 그 구원으로부터 더 많은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나병환자 열 명이 자신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들은 예수님께 불쌍히여김을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쌍히 여겨달라는 간구에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을예수님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긍휼함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서 오직 한 명만이 예수님께 되돌아와서 감사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머지아홉 명은 어디에 갔을까요? 그들은 병의 고침에만 관심이었지 그 병 고침을 이루어주신 예수님에 대해서는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돌아왔던 한 명의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은 이렇게말씀하셨습니다.

“[]17:18         이 이방인 외에는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7:19           그에게 이르시되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아홉 명의 사람들은 나병이낫고 그냥 돌아가 버렸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에게예수님은 정말로 긍휼이 많으신 분이었으며 하나님은 온전히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렇게올바르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하나님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그를 구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우리가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럴 때 그 하나님을 닮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긍휼이 많으신 좋으신 분으로 생각할 때에 그분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차 그분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닮게 되고 그 아들이신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닮게 됩니다.그것이 이 세대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던 하나님을 깨달으면서우리는 점차 온전한 하나님의 일군들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긍휼히여김을 받을 만한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 부족함이 시편 103 14절에 나옵니다. 

“[]103: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죄악된 체질을 가진 자이며 단지 먼지로 돌아갈 뿐인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하게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시면서 우리에게 인간 이상의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이할 수 있는 일은 더 악하게 되고 더 망하게 되는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아니고서는더 선하게 되고 더 발전하게 되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긍휼하심을 생각하고 감사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 은혜를 누릴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해서 항상 놀라운 긍휼하심으로 돌아보십니다. 그돌아보심과 긍휼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17절에 나타납니다.

“[]103: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103:18         곧 그의 언약을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자기를경외하는 자에게 이를 수 있는 이유는 그 인자하심에 대해서 경외함으로 온전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바로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돌을 기억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외함을주님께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끝까지 긍휼히 여기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그의 언약과그의 법도가 무엇일까요? 바로 긍휼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이 시간에 함께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긍휼하심을 계속 묵상하면서 삶속에 그러한 긍휼의 삶을 바라볼때에 우리자신이 그렇게 긍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 안으로 피할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하나님의 속성을 깨닫고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우리는 손해가 나고 무익한 상태가 되고 아무런 열매가 없는 사람으로 끝이 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그런 일이 있을 터라도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이 있고 긍휼하심이 있을 때 우리는 계속 그 긍휼하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그렇게 바라볼 때에 우리에게 긍휼하심이 나타납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에게꾸준히 피아노를 배워서 피아노를 잘 치게 되는 것처럼, 수영을 잘 하는 사람에게 꾸준히 배워서 수영을잘하는 것처럼, 볼링을 잘 치는 사람에게서 꾸준히 잘 배워서 볼링을 잘 치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속에서 하나님을 잘 따라갈 때 비로소 긍휼의 모습이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은혜의 빛을 반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긍휼히 여기십니다. 그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바르게 바라볼 때에 그 은혜가 우리에게 나타나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느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긍휼을 나타내게 될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체가 우리와 하나님의 깊은 관계를 나타나게 됩니다. 그 놀라운 의미의 긍휼을 가정에 나타내보십시오. 교회에 나타내 보십시오. 학교와 직장에서 이 사회에서 나타내 보십시오.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며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의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긍휼로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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