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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인내] 1창 4; 4-8 가인이 인내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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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4-8 가인이 인내하지 못한 이유_1

 

2017. 8. 6. . 주일오전

 

*개요:  인내의 의미 ,2분석, 1오경, 55동행-64인내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오래참음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이 오래참음은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나타내게 되는 중요한 결실입니다. 자신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아닙니다. 간혹 성령의 열매인 오래참음을 단순한 인간적인 참을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오래참음은 끝까지 참는 것이지만 참을성은 중간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폭발하는 것입니다. 어떤 조건이 걸리는 것이 참을성의 특징입니다. 그래서뭔가 그 조건을 넘어섰을 때에는 지금까지 참았던 모든 것이 폭발하게 되면서 이전에 참았을 때보다 더욱 악한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인 오래참음은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또한나중에 폭발할 감정을 쌓아두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생겨나는 오래참음 또는 인내는그때 그때 상황에 대해서 은혜에 근거하여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쌓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며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성장을 통해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성장합니다. 결국 마음 속의 믿음은 삶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증거는사랑이나 희락이나 화평이나 오래참음과 같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이런 것이 없다면 믿음은 단지생각 속의 믿음일 뿐입니다. 열매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열매를맺는 나무일 때만이 진정한 나무로서의 가치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고 따름으로 생겨나는오래참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참음 혹은 인내를 갖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오래참음이나 인내를 갖지못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죄성이요 날때부터 가지고 태어난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상태에 머물지 않고 믿음으로 변화되고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변화되고 발전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성장하고 발전해서 오래참음, 인내를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성경의 인물 중에서 인내가 부족했던 자로 나타납니다. 그부모였던 아담이나 하와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에덴동산을 경험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인간과는다른 좀더 우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불멸의 존재에서 필멸의존재로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가인은 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에덴동산을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가인은 진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과 형편에 있던 아벨은 인내를 할 수 있었지만 가인은 인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에덴동산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것과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그의 범죄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인내하지 못했을 때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인이 스스로의 죄를 인내할 수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붙들어 줄 수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가장 적절한 때에 그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처음 가인이 인내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의 시작은이것이었습니다.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제물만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도 역시 받지않으셨습니다. 그와 제물은 일치되어 있었는데 그가 하나님께 불성실한 제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의제물과 그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만약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더라면 그는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또한 아벨도 가인과 같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면 역시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아들여졌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가인이 그렇게 분노했던이유였습니다.

가인이 분노하는 것처럼 우리도 분노하게됩니다. 하지만 그때는 바로 오래참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가인이화낼 만한 것처럼 우리도 화낼 만한 상황이 있습니다. 가인이 화나지 않는 조건이 있었고 화나게 되는조건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조건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러한 분노의 조건은 전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잃어버렸을 때 분노하고 자신이 불편하게 되면 분노합니다. 또는 즐거움이 사라지거나 자신이 비하받았다고 생각할 때 분노합니다. 아니면자신이 인정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분노합니다. 이러한 감정적인 폭발의 조건은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일로 화가 나는가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만의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런 일로 화가 나고 저 사람은 저런 일로 화가 나게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그럴 때 어떻게 그런 분노를참을 수 있는가 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붙들고 그 분노를 참을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오래참음입니다. 그것이진정한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감정의 위로자가 되시며 다스리는 분이 되실 수 있습니다. 가인에게도 하나님은 그러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은 가인의 분노와 그의 안색의변함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께 대한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셨던 것이고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판단이고 심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인은 그로 인해서분노하였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행한 악과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선에 대해서 자책하며 회개하고돌이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의 악을 정당화 하며 선을 행하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선과 악에 대해서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을 행하면 낯을 들었을 텐데 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낯을 들지 못했습니다. 아벨이 더 좋은 제사를 드렸다면 당연히 아벨에게서 배웠어야 했습니다. 그것을통해 어떻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은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더욱 올바른 모습을이루어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았을 때에는 낯을 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안색만 붉히고 분노만 했을 뿐이지 진정으로 선을 행하는 법을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감정적인 표현으로만 끝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선을 행하지 않으면 단지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선을 행하지 않게되면 죄가 문에 엎드립니다. 다시 말해서 정반대로 죄를 생각하게 되고 죄를 저지를 준비를 하게 된다는의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선이 되느냐 혹은 악이 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선을 행했는가행하지 않았는가로 결정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가 참지 못하고 분노하고 안색을 붉히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악이고 선을 행하지 않으면 결국에는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주님의 분명한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얼굴붉힘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죄의 부름이었고 악의시초였습니다. 그럴 때 그 죄를 다스려야만 합니다. 그렇지않고 그 죄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결국은 죄가 자신을 다스리게 됩니다. 죄에 의해서 자기 자신이 조정당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로 죄를 다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바로 오래참음입니다. 그럴때 자신은 손해보는 것이 아니고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죄는 자신을 더욱 큰 악으로 끌어들어가기 위해서 유혹하고 꾀었지만 그것을 중단해 버리면 죄는 다스려집니다. 그럴 때 비로소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인에게 그가행한 감정적인 표현과 분노의 마음을 다스리게 해주셨습니다. 만약 가인이 이러한 말씀을 듣고 죄를 잘다스렸다면 그 다음에 일어날 악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그를 막아서 오래참음으로 나아가게했을 것이고 그럴 때 가인은 또 다른 하나님의 충실한 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말씀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말씀이 일리있다거나 의미있다거나 가치있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취급을 받는 데에는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별로 중요하게여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붙들지 못하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죄를 다스리지 못하니 결국에는 죄가 그를 다스렸습니다. 마치 평소에 교통표지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사람이 결국은 사고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에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은 아벨에 대해서 자신의 분노와얼굴붉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자기 마음을 제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죄를 다스리지 못할 때 아벨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하는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 가인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죄를 짓기에 적절한시간과 장소가 마련되어서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특별히아벨을 죽일 때의 모습을 영어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Cain rose up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가인은 그 형제 아벨에 대적해서 일어나 그를 죽였다라고해석됩니다. 그는 어쩌다가 실수로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참지 못했고 일어나서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 모든 단계에 참음이나 인내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죄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이런 질문이생겨납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죄악의 순간에서 그를 막아주시지 않으셨을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도록 막아주시지 않으셨을까와 동일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하나님께서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도록 해주셨다면 그러면 그들은 어쩌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선악과를 따먹으려 할 때 경보음이 울린다든지 선악과를 따먹으려 할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든지 선악과를 따먹으려 할 때에 그들이 굳어버린다든지의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려면 결국에는 선악과를 먹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으려 하는 의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오늘 선악과를 먹으려 하다가 실패할 것이고 내일 선악과를 먹으려 하다가 실패할 것이고 모레도 선악과를 먹으려고 했다가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365일 끊임없이 선악과를 먹으려 하다가 경보음이 울리고하나님께 걸리고 그들 자신이 굳어버리는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과연 자유의지를 주신인간의 모습일까요? 죄를 지을 수 없게 만들려고 하셨다면 아예 선악과를 없애 버리셨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굳이 아담과 하와를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선악과를 먹나 안먹나만 감시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했지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인도 역시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지을 것인가아닌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아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인간의 자유의지와 타락된 본성과도 일치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가 있었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선악과를 먹을 것인가 먹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온전한자유의지 속에서 선악과를 먹는 악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후에 인간의 완전한 자유의지는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태어난 가인과 아벨에게는 선과 악 사이에서 선을 선택할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자유의지는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불완전한 자유의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때에 그는 죄를 다스릴 수 있게 되고 그 다스림속에서 선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가인에게 해주신 말씀이 바로 그러한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말씀을 저버린 이상가인이 스스로의 의지로 아벨과 대화를 했고 시간이 지나 그들이 들판에 홀로 있을 때에 자신의 의지로 아벨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죄가 그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였다면그 순간에도 자신의 자유의지 속에서 돌이킬 수 있었겠지만 죄성에 압도된 가인의 경우에는 달랐습니다. 도저히그 죄악을 견디지 못하고 그 죄를 저질러 버렸던 것입니다. 이미 그는 죄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고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에 대한 범죄에서도 그들을 막아주지 않으셨던것이고 또한 가인에게도 그 죄를 막아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가인은 그 죄를 막을 기회를 스스로 거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그리고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준비하는 자일 뿐이었습니다.

오래참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생각해 보십시오. 오래참음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지 않는 자입니다. 어떠한 형식이라도인내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진심으로 의지하기때문입니다. 한 예로 기독교인이 진실한 믿음이 있다면 자살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을 붙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말씀을 붙들지 않는데그가 믿는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서로 상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불신의 행위로 인해서 그의 마음의 신앙이 깨어져 버리게 되고 그것은 결국 심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다른 일반적인 경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모든 오래참음과 인내의 모습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바로 오래참음의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인간의 불완전한 자유의지 속에서 죄에 다스려지기 전에 먼저하나님의 말씀과 그 약속에 의해 다스려질 때에 죄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을 너무나 잘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본성에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결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죄의 본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어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참을 수 없는 감정의 폭풍 속에서 그모든 폭풍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될 때 마침내 내 자신의 감정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열매를 맺어서 진정한 믿음의 발전과 성장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인내의 열매를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믿음의 삶을 나타내시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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