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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평] 43요 20; 19-23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주신 예수님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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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9-23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주신 예수님_1

 

2017.7. 23. . 주일오전

 

*개요:  화평의 의미, 2분석, 5서신서, 52능력-63화평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0           이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날 때부터 평안함을 성격으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또는 환경에 따라서 평안하거나 불안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평안함이란단지 성격의 상태나 혹은 환경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평안함은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평안함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로 인해서 예수님을 더욱 붙드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만약 어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화평의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잘 믿기 때문에 그렇게 평안한 것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우리가 화평하지 못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잘 못믿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그렇지만 예수님을 더 잘 믿고 더욱 의지한다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더 잘 믿고 평안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냥 노력과 훈련과 자기암시를 통해서 평안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활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평안을 누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평안은 현실부정이나 현실도피로 빠질 뿐입니다. 진정한 평안은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평안을 누릴 수 없지만 오직 예수님만으로평안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평안은 세상의 모든 생사화복 속에서 예수님을 붙들고서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높은 건물 위에 솟아있는 피뢰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자체로는 별 것 아니지만 엄청난 전류의 벼락을 그 피뢰침이 흡수할 수 있는 것은 건물 그 자체가 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세상의 모든 환난과 두려움 속에서 평안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예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지금도 이 평안을 생각할 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평안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떻게 붙들까를 생각하고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만이 진정한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그 평안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의 온전한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1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0:19         이 날 곧 안식 후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문들을 모두닫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문을 통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자들 앞에 서섰습니다. 이미 예수님은부활하신 상태였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셨고 더 이상 육체에 매이는 분이 아니라 놀라운 부활체의 모습을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현실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초현실에서의 예수님의 기적이 동시에 존재할 때에 우리는 현실에서의 예수님만 붙드는것이 아닙니다. 초현실속에서의 예수님도 붙들게 됩니다. 이것은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믿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현실적인 부분만 믿는것이 이상할 뿐입니다. 초현실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 모든 것은 초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놀라워하면서 따라갈 뿐입니다. 마치정글 속 원주민들이 최신과학기술 장비를 보면서 놀라워하는 것처럼 우리는 초현실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는 알지 못하지만 오직이일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예수님은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다 닫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 대한핍박과 환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두려움으로 가득찬 제자들에게 오셔서 예수님은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가장 두려움에 떠는 자들에게 이제 막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평안하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에게는 이 평강이라는 것이 인사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는샬롬’( שָׁלוֹם)이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 (ερήνη /eirēnē/) 라고도 합니다. 헬라어 본문에서는 에이레네로쓰였습니다. 이말이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진정한 의미에서 임하기를바라셨던 평강의 의미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나타납니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인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손과 옆구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얼굴로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손과 옆구리를 보면서 알게 됩니다. 그손에 못을 받으셨고 옆구리에는 창에 찔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에게서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못박히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이실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의 초현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초현실이란 그 끔찍하고 참혹한 고통으로 끝나시고 죽으시고 소멸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살아나셔서 그 상처를 옛일처럼 보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초현실이란 아무리단단히 잠겨져 있는 제자들의 모인 곳이라고 언제든지 통과하여 들어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초현실에는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꾸시는 놀라우신 예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죽음의 절망을 생명의 소망으로바꾸시는 예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현실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 능력과 영광까지도 거부한다는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면서도 안식일에는 병자를 고쳐서는 안된다고 억지를부리던 바리새인들과 같이 강퍅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갖는 것일 뿐입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단순히 그 초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제자들에게는 그러한 초현실은 아무래도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원리로 어떤 기술로 어떤 근거로 이루어지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땅에묻히셨던 예수님께서 살아서 다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서 기뻐하였지 예수님의 상처의 나음을 보면서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기뻐하는 의미를 알게 된다면 이러한 방문의 목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이 있기를 원하셨을까요? 또한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함께 기뻐하셨을까요? 그 목적은 바로 제자들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통해서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하신 것이고 그런 이유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제 하나님과연결되게 되었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은 더이상 인삿말이 아니었습니다. 다시한번 반복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것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낼 수 있게 되었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보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연결성이 그 놀라운 구원사역을 이루었던 것이고 이제 그와 같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연결성 속에서이미 이루신 구원사역이 확장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사역의 연결성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연결되고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렇게 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신 것이고 그기뻐함 속에서 평안함을 가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평안함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안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단지 이 세상을 살면서 안락하고 편안하며 위험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가면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왜 굳이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평안을 얻고자하는 것일까요? 그런 평안은 예수님이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 추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그런 다른 방법보다 더 강하고 든든하며 믿음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여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것이라면 예수님 안에서의 평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설경호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개인이 고용하는 사설경호원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우리의 왕이십니다. 왕으로서 그 백성들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지 경호원으로서 자신을 고용한 고용인을 보호해주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에 동참하면서 평안을누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자신이 얼마나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은 얼마나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라는 의미입니다. 또한내가 얼마나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녀가장성하여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해보십시오. 그런데 아버지가 경영하는 기업이 있다고할 때 아버지의 기업에 들어가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 평안한 일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믿음이 어느정도 확실하고 굳게 있는데 평안함을 누리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일에 너무 매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려고 하다 보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자신도 해야 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께서 이루어지기원하시는 일을 돕는 일입니다. 또한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조심스레 눈치만 살피며 모이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평안하게 하심을 받는다는것은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할 일이 없던 그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해야할 일을 주셨다는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시 말하면 이런 의미였습니다. ‘얘들아 기뻐해라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너희도 내이름으로 보낼 수가 있게 되었다!’

 

이말에 별로 기쁘시지가 않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속에 담긴 엄청난 의미를 알게 된다면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에 평안이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20:22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그냥 맨몸으로 홀몸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성령을받게 하셨습니다. 그 성령의 임재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폭포수와 같이 임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열정을 주시고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에 이를 때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이후에 가능하게 된 일입니다. 성령님께서예수님의 호흡 속에 함께 하시고 숨을 내실 때 제자들에게 전해집니다. 또한 그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과경로를 통해서 예수님의 일을 이루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보내어 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을이루도록 성령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공무원을하는 분들을 자영업자나 혹은 회사에 있는 분들보다 더 많이 부러워합니다. 자영업을 하거나 혹은 회사에있을 경우에는 언제 퇴직을 할 지 모르고 실적이 어떻게 변화될 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을 더 선호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그렇게 안정적인 이유는 정부가 고용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군인공무원들이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여 나라를 잘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행정공무원들이 나라의 행정을잘 관리하여 모든 관련업무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경찰공무원이나 법조공무원들이나 교육공무원들이자신의 맡은 책임을 잘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필요에 의해서는 관계기관이 서로 협조하여각각의 일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조절합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 한 사람의 공무원은 그 뒤에 정부라는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지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자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하나님의 일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 그러한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23절입니다.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를사하시는 권세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권세가 사람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사하여질 것이요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 권세가이동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권세자이신 하나님께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죄사하심을 받을 수 있고 또한 그 죄사하심을 받을 수 없게되는 원리속에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 원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과 함께 사람들에게 보내어지는 것과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고 구원을 받으면 죄사함을 받는 것이고 구원을 받지 못하면 죄사함을 받을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놀라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우리가 동참합니다. 그래서 그 일에 함께 함으로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동참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그 일을 이루시도록 하나님 자신이 직접 움직이시며 역사하시는 은혜도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먹고마시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삶의 여러가지 환경 속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평강을 얻습니다. 주님과 함께일할 때 평강을 얻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아갈 때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모든 은혜와 축복을 이루어주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생각하면서평강을 얻기 위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 평안을 사모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럴때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모든 평안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 평안이 우리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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