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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9약 1; 2-8 주께 구하고 주께 얻는 과정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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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 2-8 주께 구하고 주께 얻는 과정의 의미_1

  

 

  

2018. 11. 4. . 주일오전.

  

 

  

*개요:  은혜를 삶에 적용함, 56충만, 1적용, 6서신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고 합니다. A, B, C 급으로 나뉘는데 이에 맞춰서 배드민턴장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A, B, C 급으로 나뉘는 것은 어떻게 나뉘냐고 하니까 그건 배드민턴을 딱 쳐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셔틀콕을 어떻게 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A급인지 B급인지 C급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배드민턴을 쳐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셔틀콕을 정확히 맞춰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또한 거기에 더 나아가서 공격까지 하고 수비까지 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아마 그런 수준으로 A, B, C로 나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이와 같은 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는가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교통을 하는가입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받으면서 이렇게 구하고 받는 과정이 잘 되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과정이 잘 안되면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하고 받는 과정이 잘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또한 그 과정이 잘 안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야고보서를 통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히브리서 다음에 이어지는 야고보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믿음은 삶으로 그 믿음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이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간구하며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주고 받는 과정 속에 우리의 신앙이 자랍니다. 야고보서는 바로 그러한 삶의 모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볼 때 먼저 2,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간구하게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대개 어렵고 힘들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시험을 받는 상황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순간이 됩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나아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시련을 겪게 되지만 그 믿음의 시련은 오히려 인내를 만들게 되고 그 인내가 비로소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작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긴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결과를 생각해 보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그가 과연 진정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에서 믿음의 시련을 만들어 내었고 그 속에서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들 이삭이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 할 때 도망쳐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 그 자신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이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그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항상 그렇습니다. 시험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인내가 없다면 결실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때가 다가온 것에 대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를 당하면 마땅히 행할 일이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지만 한두 번만 간구해본 사람도 있습니다. 몇 번 간구해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 그냥 그만두어 버리는 것입니다하지만 사실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4, 5절을 보십시오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의 인내는 단순한 인내가 아닙니다. 아무 생각없이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인내입니다. 그 인내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험은 일상적이거나 신앙적인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그 시험에 대응하는 성도들의 반응은 믿음의 시련이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시련 속에서 인내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럴 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감당하고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내를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이룰 때에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온전하고 구비하여져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여기서 부족함이 없는 것은 부족함이 없어져서 하나님의 응답을 감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면 부족함이 생겨서 하나님의 응답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지만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하게 되어서 온전한 하나님의 응답을 감당하게 됩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께 천 번의 번제를 드렸습니다. 한 번의 번제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무려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습니다.

  

“[왕상]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그가 이렇게 일천 번제를 드린 이유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인내는 단순히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진심으로 깨닫고 그 깨달음을 실천하는 과정 속에 나타난 인내였습니다. 이러한 인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새를 쫓으면서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5: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원하는 것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사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인내로 극복하였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 왕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모함에 응답하시고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간구할 때에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구하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대상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단순히 지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부족한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해서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올바르게 기도하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응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왕상]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로 주의 많은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올바른 목적은 그 풍성함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합니다. 한두 번 있다가 사라지는 응답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얻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응답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간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달으면서 구하는 온전한 간구입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 자신의 간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을 먹게 해달라고 무엇을 마시게 해달라고 무엇을 입게 해달라고 하는 간구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풍성하고 더 온전한 것을 주시는 분이신데 일시적이며 단순한 것을 바라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매일 오는 신문을 단순히 라면 먹을 때 냄비 올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스트셀러 저서를 머리에 베고 자는데 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새롭게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그러한 하나님을 깨달았기에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와 함께 더욱 풍성한 축복들도 함께 주셨습니다.

  

“[왕상]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왕상]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오늘날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영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변화를 위해서 성장을 위해서 발전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타인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교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할 때 마지막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데 간구하면서도 의심하는 것은 마치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래서 쉴새 없이 요동합니다. 그런 바다 물결 위에 배가 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배는 바다 위에서 잠시도 쉴 수가 없습니다. 타고 있는 사람도 멀미가 납니다. 하지만 차는 땅 위에서 든든히 서 있고 그래서 안정되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땅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구하면서도 의심하는 기도가 주께 무엇이든지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든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하였을 때 기도가 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허락하시지 않은 것뿐이고 그 자체로 기도는 받아들여졌습니다주님의 대답은 안된다고 하시는 것이지 기도응답을 얻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안된다고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그것이 안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판결 속에서 우리는 그 핵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일에 대해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반씩 가지게 하라고 했을 때 진짜 어머니는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자신의 주장을 포기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십시오.

  

“[왕상]3: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바로 그 때 솔로몬 왕은 말합니다.

  

“[왕상]3:27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왕상]3: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솔로몬은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아이를 살리고자 했던 어머니가 진정한 어머니였음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탄복하면서 그 지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가장 본질을 보게 합니다. 기도응답이 들어지지 않았을 때 사람의 본질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자신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얻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원래 어디에 속해있는 자였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오직 한 마음만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이제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삶을 살아가면서 주께 구하고 주께 얻는 과정이 항상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인내로 기도하고 풍성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럴 때 무엇이든지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얻으며 얻고 나서 또 간구하는 선순환의 신앙생활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걷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항상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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