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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계획] 56딛 1; 1-9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세워지게 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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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 1-9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세워지게 하려 함_1

  

 

  

2018. 9. 9. . 주일오전.

  

 

  

*개요:  은혜의 결실이 나타나게 함, 51계획, 6서신서, 1적용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1: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1: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사도의 일을 하며 디도는 목회자로서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성도로서 어떠한 삶의 모범을 나타내면서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모범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은혜의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충만해지면 그 은혜가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변화된 삶의 모습입니다.

  

사도나 목회자나 성도들의 올바른 모습에 대한 이해는 판단과 비난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그에 미치지 못함을 깨닫게 해서 좌절하고 포기하며 슬퍼하고 분노하게 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삶의 변화를 위해서 나아가려고 애쓰며 노력하고 소망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변화의 방향성이 되고 지속되는 신앙생활의 보람 있는 결실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도서는 우리에게 변화의 방향과 기준을 보여주는 말씀이 됩니다

  

 

  

이러한 말씀을 한번에 다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번에 오르는 산이 있고 여러 번에 걸쳐서 오르는 산이 있습니다. 중간에 산장 같은 곳에서 쉬고 가야 하는 산이 있고 산장이 없다면 텐트라도 쳐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만 하는 산이 있습니다. 매번 등산은 하룻길이어야 하고 반드시 하루에 올라갔다 내려와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항상 그 정도 높이와 거리에 있는 산 밖에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멀리 있는 산이나 높은 산을 올라가려고 한다면 여유를 가지고 넉넉하게 가야만 합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에 걸쳐서 이해해야 하는 본문이 있습니다. 또한 한 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있는가 하면 여러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있습니다. 목적과 의미에 따라서 이해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유적지를 탐방한다고 할 때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겉으로만 쓱 보고 오는 정도이겠지만 정말 전문가가 유적지를 연구할 때에는 아예 숙박을 하면서 그 유적지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디도서를 볼 때 그냥 쓱 보고 지나가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디도서의 말씀의 의미를 더 많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 디도서는 사람을 세울 때 성경의 기준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만 생각하면 되리라고 보여집니다. 또한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가능한 배제하고 탈락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다 보면 왜 그러한 기준으로 사람을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목적과 이유도 희미해 집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그러한 사람들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런 기준과 모범이 어떤 목적과 의미를 갖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성경을 읽으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야 그러한 모범을 갖게 되고 좋은 모습을 갖게 될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지하고도 애를 쓰는 시간을 통해서 마침내 그러한 모습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변화를 통해 거두는 열매의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 속에서 이루어지고 은혜를 통해서 구체적인 변화와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의 열매의 의미를 기억할 때 오늘 이어지는 부분의 말씀 속에서 생각해 보려는 것은 이 모든 변화와 열매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지만 또한 우리도 하나님께 간구하며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독은 어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어떠한 사람들을 세우라고 하셨는데 사실 우리도 감독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고 또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변화의 열매는 하나님만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기뻐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우리는 결코 변화를 통해서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를 통해서 가장 혜택을 받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면에서 6절 말씀은 자신의 가정생활에서 변화의 혜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대학에서 입학기준을 바꾸면 모든 고등학교에서 그 기준으로 준비합니다그와 같이 감독의 기준이 가정생활에서의 변화일 때 모든 성도들에게 그러한 기준이 목표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이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으로 정결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 자녀들이 방탕하지 않고 불순종하지 않는 자녀를 두게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있고 귀한 삶입니까? 이러한 변화의 목표를 두고서 살아갈 때에 우리 자신이 그러한 삶에 대한 소망과 간구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얻게 되는 것은 자신의 가정에서의 은혜충만과 믿음충만의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게 되기를 우리 모두가 바랍니다.

  

반대로 책망할 것이 많고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으며 그 자녀는 방탕하고 불순종하는 일이 많은 상태라고 해보십시오. 그 삶은 얼마나 괴로우며 고통스러우며 슬픈 삶이 되겠습니까? 그의 가정은 늘 걱정과 근심과 우환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가 장로이든 집사이든 성도이든 가정생활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변화의 목표는 가정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변화와 성숙의 열매를 맺기 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과 삶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둘 수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청교도 목회자로서 신학자이자 선교사요 철학가였습니다. 그는 많은 업적을 남기면서도 특히 가정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래서 4년 동안의 구애기간을 거친 뒤 결혼한 사라 에드워즈와의 사이에서 열한 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자녀들과 가장 경건하고 신실하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함께 가정예배를 드렸고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삶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으며 모든 어려운 시기마다 가정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도 역시 자신의 삶 속에서 훌륭한 일들을 해 내었습니다. 가정에서의 열매가 있을 때 그 가정이 믿음의 근원이 되고 능력의 근원이 되며 은혜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통해서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너무나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혜택을 받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러한 삶을 바라보며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가정 생활의 충만함 속에서 개인적인 삶의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이어지는 7절은 그러한 삶의 발전을 보여줍니다.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서 신앙이 그 모든 삶의 근본이 될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삶을 소홀히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능력과 시간과 건강과 지혜를 청지기로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책망할 것이 없게 되고 고집을 부리지 않게 되며 분내지 않고 술을 즐기지 않으며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살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관자로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욕심에 사로잡혀서 생기는 일들입니다. 그러면 책망할 것이 생기고 고집을 부리며 분을 쉽게 내며 술을 즐기며 구타하고 더러운 이득을 탐하게 됩니다.

  

삼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얼마나 좋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까? 그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들릴라라는 악한 여인에게 다 쏟았을 때에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말았고 결국 그 능력을 빼앗기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서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돌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뛰어난 기억력과 놀라운 창의력과 화려한 언변과 아름다운 외모와 꾸준한 체력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욕심이 과하여 책망할 것이 생기고 악한 고집을 부리며 분내고 술을 즐기며 구타하고 더러운 이득을 탐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인데 그 속에서 욕심을 과하게 갖다 보니 결국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하는 변화의 목표는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 지혜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건강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능력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에 이르기 전에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때 그러한 삶의 변화는 바로 자기 자신이 누리게 됩니다.

  

삼손이 들릴라에게 빠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결혼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면 얼마나 그의 인생이 축복되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그 당시 여러 여성들과 자유롭게 연애를 했고 그러다가 만난 들릴라는 그의 비밀을 알아내는 댓가로 블레셋 다섯 방백에게서 은 오천오백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은 오천오백에 삼손을 팔아넘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삼손의 목숨값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변화를 이루지 못할 때 겪게 되는 어리석음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책망할 것이 있어서 또 내 고집대로 하다가 급히 분을 내다가 술을 즐기다가 구타하다가 더러운 이득을 탐하다가 결국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입니까? 그것이 결국 자신의 목숨값인 것을 왜 알지 못합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미래에 닥칠 수 있는 그 모든 나의 목숨값을 아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손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변화의 삶은 단순히 자기 자신의 삶에 국한되지 않습니다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변화의 모습은 얼마나 유익되겠습니까? 8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1: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입니다. 나그네를 오히려 공격하는 사람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는 원래부터 싸우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누가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선행을 좋아하고 신중하다고 해보십시오. 누구나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신뢰할 것입니다. 반대로 악행을 좋아하고 성급하다고 해보십시오. 함께 있다간 항상 문제와 갈등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멀리 하는 것이 상책이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또한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는 삶은 다른 누구나 의지할 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가 모든 의를 이루고자 하고 거룩을 추구해 나가며 스스로 절제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의를 알며 거룩을 알며 절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가 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런 삶을 살라고 타인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그 혜택을 자기 자신이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안장로교회 원로목사님인 나겸일 목사님은 직접 경험한 큰일날 뻔 했던 사건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열심히 새벽기도를 나오더니 하루는 자신이 유력한 사람인데 국가조찬기도회에 목사님을 초대해 드리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 괜찮다고 사양을 했고 그 사람은 몇 번을 권하다가 결국은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남파간첩이었고 그 사람을 따라갔으면 납치되어서 월북당할 뻔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신중함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절제가 바로 목사님 자신을 살렸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그런 위험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친구에게서 혹은 친척에게서 혹은 지인에게서 그런 위험스러운 일을 당할 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 뜻이 별로 좋은 뜻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생활, 개인생활, 사회생활 속에서 변화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는 9절에서는 교회생활에서 변화의 모습의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9절은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미쁘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믿음성이 있다(trustworthy)’는 의미입니다. 그 믿을 수 있는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바른 교훈으로 다른 성도들을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미쁜 말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게 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에 합류하면서 마침내 스스로가 거슬러 말하는 자가 되어 망하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길이 다양한 지형에 생겨납니다. 물 위에 길이 있고 논 위에 길이 있으며 산 위에 길이 있고 산 속에 길이 있기도 합니다. 광야 위에 사막 위에 험난한 험지에도 길이 있습니다. 때로 그 길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길은 그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로 잘 나아가면 그 길을 따라 나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점차 원래의 길로 돌아올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애초에 가고자 했던 곳으로 갈 수 없게 됩니다.

  

교회의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다른 목적지가 없습니다. 그 나라로 가기 위한 모든 길은 오직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세상의 유혹등으로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 목적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성도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교회 전체의 분위기가 되어버린다면 안타깝게도 그 교회 전체에 구원의 소망은 사라집니다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럴 때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책망하여 원래의 목적지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교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노력할 때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수학에 난제가 있다고 해서 수학을 포기하지 않듯이 신앙도 포기하지 않을 때 나중에 천국에 들어가서 자신의 교회생활을 생각해 보면 내가 포기하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변화는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변화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간구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입니다. 변화를 누군가가 대신 이루어 줄 수 없습니다. 변화를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니 변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가정이 변화되고 나의 개인적인 삶이 변화되며 나의 사회생활이 변화되고 나의 교회 생활이 변화될 소망을 가지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삶 속에 넘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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