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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6딛 1; 1-7 은혜의 결실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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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 1-7 은혜의 결실은 사람을 변화시킨다_1

  

 

  

2018. 9. 2. . 주일오전.

  

 

  

*개요:  은혜의 결실의 의미, 56충만, 6서신서, 2분석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1: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지난 달 우리는 디모데후서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디모데후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서 다시 은사를 불일 듯 하게 하는 것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어서 보고자 하는 디도서는 디모데전후서와 함께 목회서신 중의 하나인 디도서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계속 이어서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의 성경에 대한 이해는 점차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한 구절, 한 단락으로만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책 씩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그런 이해가 모여서 성경 전체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은혜의 여정에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차 투옥 이후에 잠시 풀려난 다음 그레데 섬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던 디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바로 디도서였습니다. 이 디도서에서는 은혜를 통해서 어떤 결실을 만들어 내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혜가 있고 그 은혜를 차곡차곡 쌓아가면 마침내 이루어지는 하나의 결실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변화입니다.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놀랍게 변화되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은혜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은혜가 많아도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은혜를 통해 정말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은혜를 통해서 사람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그러한 변화를 이루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경우는 그 변화의 대상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고 반대로 변화되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 변화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로 인해 사람이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디도서의 말씀은 잘 읽혀지기도 하고 잘 읽혀지지 않기도 합니다. 디도서에 감독이나 장로와 같은 구체적인 직분명이 나오다 보면 직분자들만 읽는 성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람과 변화에 대해서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이 디도서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시간이 오래 흘렀어도 사람의 변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디도서는 가장 온전한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직분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도 해당됩니다. 또한 자기 중심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겠고 또한 세상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변화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변화는 변질에 더 가깝습니다.

  

진정한 변화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형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에 사셨던 것은 아니지만 그분이 어떤 삶을 사셨을 지는 그분의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그분을 닮은 그분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아버지로 어머니로 아들로 딸로 성도로 직분자로 목회자로 살아가는 삶을 보면 예수님이 어떠하셨을 것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변화의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별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의 변화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제 그 변화를 나타내는 목회자로서 사도 바울은 머릿말에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으며 그 사도로 부르심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디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이 바로 그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그 은혜의 결실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시대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었던 것은 바로 그 시대에서 그리스도라면 어떤 삶을 사셨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도였다면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요? 바로 사도 바울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보여준 그리스도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사도가 되었는지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도가 된 이유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좀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그것은 택하신 자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깨닫게 하는 것이며 영생의 소망을 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가 하나님의 종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이 자랑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사도됨의 이유이자 목적은 모든 성도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놀라운 목표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을 가질 때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간절한 마음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업의식이란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무심코 그 직업에서의 가졌던 행동과 마음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직업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직업의식이 발동이 되는 것입니다. 경찰이나 군인이나 소방관이 위험한 상황이나 위급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가 직업의식을 나타냅니다. 유치원 교사나 초등학교 선생님이 사람들을 대할 때 직업의식이 발휘됩니다. 그 외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있는 곳에서 서비스정신을 나타냅니다. 동일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동일한 목표를 갖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은 사도나 성도에게 모두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 속에 놀랍게 나타나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이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신앙 그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가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만약 여러분이 로또에 당첨이 되어서 50억을 받게 되었다고 해 보십시오. 그런 놀라운 가치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건은 얼마나 삶을 변화시키겠습니까? 좋은 쪽으로든 혹은 나쁜 쪽으로든 그렇게 굉장한 사건은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의 가치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2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그 구원을 통해서 받는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이 때에 전도로 나타내셨습니다. 그 전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사도 바울이 맡아서 사람들에게 전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내시지 않아도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의식하는 자들은 그 명에 따라서 말씀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믿을 수 있습니다. 대개 왕이 직접 돌아다니는 일은 없기 때문에(오히려 왕이 직접 돌아다닌다고 하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입니다) 왕이 보낸 사자가 왕의 약속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왕의 약속의 수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도를 맡기셨다고 했을 때 그 전도의 가치와 의미가 사도 바울에게 얼마나 귀하게 나타났는가를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그 전도를 어리석거나 무가치하거나 별볼일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전도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그로 인해 영광스러워 하고 기뻐하며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서 50억을 받으면 그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생은 이에 비한다면 얼마나 더 큰 것입니까? 영생은 영원토록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은 그 영생과 전도를 맡겨주심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삶의 변화는 단지 사도 바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믿음의 참 아들된 디도에게도 이 가치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 가치를 깨닫고 그 가치대로 살라고 말합니다.

  

“[]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바울이 깨달은 놀라운 그리스도안에서의 가치가 디도에게 전해졌고 그렇게 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치 속에서 디도에게는 그레데에서 그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목회자였던 디도는 그레데에서 바울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디도에게는 복음의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레데 섬은 지중해에 있는 동서로 193킬로미터 남북으로 10킬로미터 정도 되는 큰 섬으로 땅이 비옥하고 유대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제주도가 동서 73km, 남북으로 31km이니 제주도(1833km2)보다 약간 큰 섬(1930km2)입니다. 이곳에는 뵈닉스항과, 미항, 키도니아, 크노수스, 살모네 등의 지역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디도는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는 것이 자신의 삶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바울대로 복음과 구원과 영생의 가치 속에서 해야하는 일(믿음, 진리의 지식, 영생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또한 디도는 디도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 속에서 해야하는 일(그레데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깨닫고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은혜가 있기에 사역자로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아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결과가 이렇게 사역자나 목회자가 되게 만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 복음의 가치를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 복음의 가치와 상관없이 이 세상의 가치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직업까지 바꿀 정도이니 그가 얼마나 받은 은혜가 컸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목회자나 사역자가 되는 것만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 대비되는 평신도에게도 은혜의 결실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역시 은혜의 결실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에 대해서 변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어떤 변화도 자기 자신에 대한 변화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남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유익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변화의 기회가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존재합니다또한 그 성도들 속에는 목회자와 사역자도 포함됩니다. 그들도 자기 자신의 변화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변화까지도 감당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더욱 부담감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면 됩니다. 그럴 때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장로이자 감독의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만 조금 바꾼다면 모든 성도에 대한 변화의 기준이 됩니다. 장로와 감독의 모범은 바로 모든 성도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나 한 남편의 아내이어야 합니다. 이말은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순결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두 아내, 세 아내두 남편, 세 남편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탕하는 비난을 받거나 불손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두라는 것은 그 삶이 가정에서 아름답게 나타나야 함을 보여줍니다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천사 같아도 집에서는 악마가 된다면 옳지 않습니다. 또한 집에서는 천사여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악마가 된다면 역시 옳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이나 저항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장로로서 감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 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급히 분내지 않고 술을 즐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모범이 정말 장로와 감독에게만 해당했다면 굳이 성경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모든 성도의 모범이자 변화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는 자들은 존경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이러한 모습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가치인 물질이나 사회적 위치나 외적인 환경이 감독이자 장로의 기준이 아니라 신앙적인 가치인 말씀대로 변화된 모습이 진정한 가치일 때 그 모습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일 때 그러한 성도가 모여있는 교회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교회는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수준에 맞는 위치를 받아서 활동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각자의 모습이 어떠하였든지 말씀 안에서 변화되어서 변화된 모습을 이루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그 변화를 이루는 것이 기쁨이 되고 그 변화를 보는 것이 보람이 되고 그 변화를 이룬 사람들이 모범이 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세상적인 재물과 사회적 위치로 교회 안에서의 서열이 결정되고 그 서열이 중시되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으로 인해서 누구든지 놀라운 변화를 이루고 그 변화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 바로 성도로서 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은혜의 결실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변화는 바로 우리가 받은 은혜의 결실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 보람 있는 일이며 그 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나에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 변화의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명한 믿음과 거짓없는 진리의 지식과 놀라운 영생의 소망이 우리 마음 속에 넘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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