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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조직] 4민 1; 1-4 천국을 향하는 성도의 소속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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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4 천국을 향하는 성도의 소속은 어디인가_1

  

 

  

2020. 10. 4. . 주일오전.

  

 

  

*개요: 민수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 24조직, 5분석해석, 56충만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1: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10월에 우리가 함께 살펴볼 성경은민수기입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민수기는 영어로는 ‘Numbers, Book of Numbers’ 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民數記입니다. 히브리어로는 במדבר(베미드바르) 라고 하는데 첫 부분에 나오는광야에서를 옮긴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시내 광야에서 백성들의 수를 세는 내용이 나옵니다. 백성들의 수를 세면서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갖춥니다. 조직을 정비하면서 민족과 국가의 개념을 갖게 됩니다. 한 사람은 그가 속한 가족과 가문과 지파에 따라서 소속이 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직의 편성은 나중에 그들이 이방인들과 싸울 때에 커다란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공동체적인 민수기와는 반대되는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성도는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 왜 혼자서만 신앙을 가지면 안되는가, 왜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생활을 하고 교회에 소속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습니다.

  

물론 그런 의문들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교회생활에 실망하고 혹은 상처받고 안좋은 경험을 갖다 보면 그 다음 번에 다시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항상 좋은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선뜻 교회에 발을 내딛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럴 때 이런 저런 의문이 생기고 그 모든 의문은 예전의 신앙생활이 아닌 새롭고 단독적이며 독립적인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원하는 대답은 하나입니다. 그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서양 그리스도인들이 구현했습니다. 유럽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교회를 가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존재가 당연하게 되고 일상화되었습니다. 이제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 신앙이 아닌 종교가 되고 종교가 아닌 문화가 되는 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미 나름대로 원하는 대답을 얻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하고 주저하는 자들에게 민수기는 정말 중요한 해답을 제공해 줍니다. 자신의 영생의 향방을 놓고 씨름을 벌이는 신중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민수기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대답을 찾게 합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면 애초에 왜 하나님께서는 집단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주셔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이해한다면 공동체의 필수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기 위해서는 왜 여러 명이 함께 타야 할까요? 혼자서 그 큰 비행기를 탈 수 없습니다. 또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배우며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민수기에서 보여지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1절에서 그 의미가 시작됩니다.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막을 세워 만든 뒤 그 성막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의 의미로서 회막이 되었습니다. 성막이나 회막이 같은 곳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으로서의 거룩함을 의미할 때에는 성막이라고 하고 그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만난다는 의미에서는 회막이라고 합니다. 그 회막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의 수를 계수하려고 하셨습니다. 백성의 수를 계수하는 것은 모세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1: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과 명령이 있었습니다.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대로 계수하려고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수함의 목적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1: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게 하셨고 그들이 각 지파와 각 조상과 각 가문을 대표하는 리더 한 사람에게 속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대표자와 리더가 되는 한 사람은 지파와 조상과 가문의 의미를 나타내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그 리더를 따르게 하신 것은 지파와 조상과 가문의 의미를 나타내는 한 사람이 되게 하셨고 또한 그로 인해서 싸움에 나갔을 때에 그 지파와 조상과 가문의 의미를 나타내는 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지파인지 어떤 조상의 자손인지 어떤 가문인지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방법을 따르게 되면 그의 소속이 분명해지고 그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조직과 편성을 통해서 싸움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게 하시는 싸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행하게 하시는 일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각자의 교회와 조직과 소속 속에서 감당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민수기가 신약의 에베소서로 교회론을 통해서 연결됩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민수기에서의 지파와 조상과 가문의 개념은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로 나타납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시는 이인 예수님이 충만함을 보여주시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됩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과 구원이 성취됩니다. 이러한 신약에서의 교회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민수기에 나왔던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그 지파와 조상과 가문에 따라서 소속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저버리고 오직 자신의 안위와 편리와 구원만 누리기를 원한다면 교회에 소속되기를 포기하고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만 유지하려고 하는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그렇게 할 때 교회를 통해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신앙생활만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붙들고 있는 하나의 오해는 십자가의 한 강도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구원함을 받았는데 그 구원받음은 교회생활과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이 결실을 맺는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본문의 의미를 너무나 오해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를 배제한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고수한다면 성경을 오해함으로 자신의 영생을 잃어버리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본문을 다시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 강도는 당신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낙원에 불러 주셨습니다. 그 강도는 결코 개인적인 구원과 개인적인 영생과 개인적인 생활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와 그 낙원과 그 세계 속에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한 그를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상관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개인주의자에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와 안드레는 나를 따라 오너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역시 그렇게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에게는 예수님은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역할 때에 의미가 있는 자들입니다. 금붕어는 물 속에 있을 때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충만함 속에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 밖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나라로 들어가기를 원하고 다시 그 충만함 속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한 사람이 됩니다. 그 속에서 이 세상에 천국을 이루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민수기를 통해서 교회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민수기의 계속되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에 소속된 자인가를 깨닫고 교회에 속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혼자서 성경읽고 혼자서 기도하고 혼자서 헌금하면서 살아가는 자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함께 성경읽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예배드리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교회 안에서의 사명과 역할을 기억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이스라엘에서 백성을 계수할 때 각 사람의 존재와 그의 위치가 중요했다.

  

2. 각 사람은 그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사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3. 자신의 소속을 깨달을 때 뒤로 물러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다.

  

4.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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