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순위] 3레 1; 1-9 가장 기본적인 예배의 모습은 무엇인가Loading the player...
3레 1; 1-9 가장 기본적인 예배의 모습은 무엇인가_1
2020. 9. 6. 주. 주일오전.
*개요: 레위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 21순위, 2관점적해석, 1오경
[레]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레]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레]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레]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레]1: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레]1: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레]1: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레]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다양한 예배의 형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대면예배로 안내되는 새로운 방식 속에는 다양한 방법이 제공됩니다. 먼저 온라인을 통한 예배가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참여하기도 하고 미리 녹화된 영상으로 예배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방법과 절차는 다르지만 온라인 예배의 경우에는 실시간인지 아니면 녹화인지에 따라서 크게 구분됩니다. 온라인이 아닌 경우에는 자료가 제공되는 가정예배와 자율적으로 드려지는 가정예배로 나뉩니다. 이것도 역시 자료제공의 유무로 크게 구분됩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요즘의 예배의 형식 속에서 현장예배 기준으로 생각되었던 예배의 모습이 전염병으로 인해 온라인예배로 달라지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낳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라는 고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비대면예배는 예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반대쪽에는 비대면예배가 가능하다면 이제 더이상 현장예배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많은 예배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있습니다. 실제적인 경우를 들어봅니다. 온라인예배에 참여하다가 잠깐 다른 화면을 보면서 예배를 드렸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입니까, 안 드린것입니까? 온라인예배를 드리다가 음성이 나오지 않게 되어 버려서 무슨 소리인지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입니까, 안 드린 것입니까? 온라인예배 중에서 실시간이 아닌 녹화된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입니까, 안 드린 것입니까? 누워서 예배를 본다면 서서 예배를 본다면 일하면서 예배를 본다면 영상을 틀어놓고 이런 저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입니까, 안 드린 것입니까? 이런 고민이 생겨난다면 현장예배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생깁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오자마자 잠들었다가 예배 끝나서 깨었다면 예배를 드린 것입니까, 안드린 것입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웹서핑을 했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입니까, 안 드린 것입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해야 할 공부가 있어서 공부를 하면서 예배를 드렸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입니까? 안 드린 것입니까? 이 코로나 시대에 현장예배가 사라지면서 예배의 의미가 혼란스러워졌지만 이 기회를 빌어서 오히려 예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배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좋은 해답을 찾는다면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온전한 성도의 모습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지나 살펴보는 레위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율법을 받았고 성막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막을 통해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장은 광야에서 만든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40: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그리고 시작되는 레위기에서는 그 성막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레]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이것이 예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예배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희 중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제사를 지낼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예배의 시작이자 기원입니다. 이것은 더욱 거슬러 올라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자 할 때 제사를 지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할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물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고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기에서 예배하는 자가 가져야 하는 예물은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계시다는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또한 로마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 그것은 영적인 예배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몸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에 그것이 진정한 예배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뒤에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자 권리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녀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광야에 살면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 우리 자신이 은혜를 얻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주님께 갔다 나오면 건강해져서 다시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옷을 세탁하는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주 빨아야 하는 옷이 있습니다.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깨끗해져서 나옵니다. 또한 세탁소에 보내야 하는 옷이 있습니다. 세탁소에 보내서 깨끗하게 세탁을 하고 돌아온 옷은 정결해지고 단정해집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새옷처럼 입을 수 있습니다. 매번 옷을 사거나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세탁을 하면 다시 깨끗하게 입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달라집니다. 그러한 은혜를 통해서 우리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충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하나님의 성도들은 살아갑니다. 예배를 드리고 그때 받는 은혜로 새로운 소망을 얻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를 통해서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하나님께 사랑과 정성으로 가지고 나아오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3, 9절을 보십시오. “[레]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레]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이 중요하였고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드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절차와 방법을 지켰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할 때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향기로운 제사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르지 않은 방식대로 제사를 드릴 때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그런 기준으로 아까의 예배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모습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닐 것입니다. 가장 온전한 형식을 갖췄다 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전혀 예배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가치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금이 형식은 변화되도 본질이 사라지지 않으니 여전히 귀한 금입니다. 우리도 그런 금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코로나 시대에 더욱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이 시대에 온전한 예배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2.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올바른 제사를 받으시고 기뻐하신다. 4.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예배를 드리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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