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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계획] 42눅 20; 27-36 천국에서 가정의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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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0; 27-36 천국에서 가정의 의미는 무엇인가_1

  

 

  

2020. 5. 31. . 주일오전.

  

 

  

*개요: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 51계획, 4극본, 5복음서

  

[]20: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0: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0: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20: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20: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20: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0: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0: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오늘 말씀에는 사두개인들이 부활 이후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질문하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그 질문이 무척 마음에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현세를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도 그런 의문을 가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가정의 의미가 무엇일까? 부부의 의미가 무엇일까? 자녀와 부모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질 때가 분명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유대교의 한 당파였지만 그들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현세를 살 때에만 도움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내세를 부정하고 현세를 중시하는 불신자들의 생각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부정하니 현재의 삶에 대한 의미를 온전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가정에 대한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정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던 그들의 질문 속에서 우리 자신이 종종 생각하는 질문과의 유사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해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현세와 내세를 잇는 가정과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예수님께서 가정에 대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중요한 가르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 함께 본문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27절에서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부활의 부당함을 나타내고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20: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0: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0: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그들은 형이 아내를 두고 죽었을 경우 동생이 그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여 상속자를 두게 하라는 신명기 255절의 모세오경의 내용을 통해서 생각하면서 부활이 있다면 가족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예를 예수님께 묻는다면 예수님은 아주 대답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복잡한 문제 때문에 부활은 없고 또한 있어서도 안된다고 말할 참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유대교의 한 당파로서 현세적이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계급이었는데 그래서서 그들의 인생은 무척이나 풍요로웠습니다. 제사장 사독에서 유래된 명칭을 따라 사두개인들이라고 불렸는데 그들은 지배계급이자 귀족계급이었고 대제사장과 예루살렘의 유력한 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현세에서 누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부활이나 내세를 부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부활을 부정하는 이유는 현세가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정의 의미에서도 멀리 보지 않았고 현재 상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상태에서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중요했고 결국에는 상속자를 세워야 한다는 집착 속에서 형수를 그 동생들이 다 취하게 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부활을 시인하느냐 부인하지 않느냐의 큰 차이가 생깁니다. 부활을 시인한다면 상속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각 사람의 상황이 중요하겠지만 부활을 부인한다면 오직 상속자만이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의 사고방식 속에서는 이러한 관계로 나중에 부활을 맞이하게 되면 얼마나 복잡하고 황당하겠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의 생각은 유대교에 있던 하나의 당파였지만 오늘날에는 부활을 불신한다는 면에서 불신자들의 생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현세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불신자들에게만 이러한 현세중심적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신자들도 부활을 항상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현세에 집중하고 몰입해 있는 그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세에서 복을 받는 것이 내세에서 상급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질문의 서두에서 사두개인들은 상속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고 상속인을 얻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상속인뿐만이 아니라 행복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양육관계에서도 만족도를 목적으로 한다면 입양과 파양을 반복할 수도 있겠고 관계의 단절이 있을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존속이나 비속에 대해서 폭행, 치사, 살해 등의 죄악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설사 그런 일이 없더라도 미움, 분노, 절망 등이 가정에 나타난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홀가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부활이 존재한다면 그 부활 때 이전에 문제가 있었던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이 다 살아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부활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아닐까요?

  

 

  

사두개인들의 이러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두개인들이 원하는 대로의 답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사두개인들이 원하던 대답은 형수는 형의 아내이다 혹은 동생1의 아내이다, 혹은 모두의 아내이다라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20: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이 대답에서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생각처럼 누가 누군가의 아내이고 남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아서 부활한 사람들은 남자로서 장가를 가거나 여자로서 시집을 가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이 세대에서는 그렇게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되었고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는 그런 가족관계가 사라진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니 부활 후에는 아무도 누군가의 남편이 아니며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세대에서도 작게나마 그런 위치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선임과 후임이지만 사회에 나오면 다 동일한 사회인입니다. 학교에 들어가니까 선배와 후배이지 학교를 나오면 다 동일한 사회인입니다. 직장에 들어가니까 상사와 부하이지 사회에서는 다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그와 같이 부활 이후에 천국에서도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 이후에 가족관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살았던 가족들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가족들과 함께 꾸렸던 가정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있었고 가정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됨이 부활 이후 천국에서의 삶의 가장 큰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부정하거나 부활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예수님이 특별히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다고 하신 것은 현세에서 죽음이 큰 변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서도 제일 큰 형이 아내와의 사이에서 상속자가 없이 죽었습니다. 또한 그 아내를 취한 동생도 죽었고 그 다음 동생도 그 다음의 다음 동생들도 다 죽었습니다. 최후에는 형의 아내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현세에서는 다 죽을 때가 있었고 그 죽음으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합니다.

  

하지만 부활 이후에는 죽는 것이 없습니다. 죽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한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죽지 않으며 죽을 수도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현세에서의 가족관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아니냐가 제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애초의 사두개인들의 질문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형에게 아내를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형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였고 동생도 형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게 모든 관계가 끝난 뒤에 마지막으로 형의 아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떠납니다.

  

이렇게 되면 부활 후에 각 사람은 누가 누구의 남편이나 아내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그 가족관계 덕분에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누구의 남편이나 누구의 아내가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가족관계에서의 중요성은 천국을 바라볼 때 생긴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지금도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관점에 영향 받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가정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오해하고 부인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관계의 목적이 상속이나 행복이나 자아실현이나 그 어떤 현세적인 것에 둔다면 가족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천사와 동등하여져서 죽을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을 살아가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가족에게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정의 귀함을 온전히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현세로만 가정을 국한시키지 말고 내세로 눈을 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그 하나님의 자녀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정의 의미를 깨달을 때 저 세상에서 새로운 가정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정의 의미가 천국에 이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현세에서 가정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가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가족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는 가족들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 기회와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때로 상속이나 유산이 없어서 행복이나 편안이 없어서 믿음의 가치와 신앙의 중요성을 잃어버린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잃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고 의지할 때 비로소 현세에는 없지만 천국에는 있는 귀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은 없었어도 혹은 은 없었어도 혹은 행복은 없었어도 신앙이 있었다면 천국을 위한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 가치를 생각할 때 가족은 자신에게 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혹시 믿지 않는 가족이었다면 그로 인해서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믿지 않는 가족 속에서 자신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예수님의 말씀조차 들을 수 없었겠지만 믿지 않는 가족 중에 자신만 믿는 사람이었다면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서 갖는 애타는 마음이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그리고 그럴 때 자신은 더욱 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결국은 가족들을 통해서 자신이 부활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였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지만 중간지점인 하란에 머물렀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 데라가 가고자 했던 가나안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가나안으로 인도하고자 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꿈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서 가나안으로 출발했습니다. 그와 같이 한 가족의 상황과 역사와 한계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형제들은 서로간의 관계는 친밀했지만 부자는 그 가족들 속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결국은 영원토록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이 좋든지 나쁘든지 만족하든지 만족하지 않든지간에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현세 뿐만이 아니라 내세에서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가정을 사랑하고 가족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우리에게 주신 가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기억하고 그것이 신앙이든 혹은 불신앙이든, 그것이 쉽든 혹은 어렵든 간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계기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가정을 잘 섬기고 감당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부활에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서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부활 이후의 가족관계에 대한 사두개인들의 질문의 의미

  

2. 예수님께서 천국에서의 성도들에 대해 알게 해주시는 것 

  

3. 세상에 있는 가족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와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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