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희생] 41막 13; 9-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Loading the player... [크게보기] [오디오듣기]
41막 13; 9-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_1
2020. 4. 19. 주. 주일오전.
*개요: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 2관점, 5복음서 [막]13: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막]13: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막]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13: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막]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13장은 동일한 말세의 현상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없는 이야기가 마가복음에는 나오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구절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말세의 모습과 또한 그 때에 성도가 가져야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말세가 닥친다고 해도 항상 피할 수 있기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면 말세는 그리 힘든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어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말세의 어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난리와 난리의 소문과 재난의 시작들이 오직 안 믿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비켜 나가게 되면 정말 좋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모두 난리와 재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믿는 자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계획을 살펴보고 그 계획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를 때에 비로소 그 계획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명을 이루는 자가 될 때 말세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이 성도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막]13: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막]13: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여기서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일어날 일과 해야할 일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고 회당에서 매질을 하며 예수님으로 인해서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어떤 사람들은 주의 제자들이 이렇게 넘겨지고 매질을 당하며 심판을 받게 되는 일들을 왜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었습니다. 성도들이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시는 대로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는데 그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넘겨지고 매질 당하며 세상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서 전파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더 좋은 방식의 복음 전파가 있을 텐데 왜 예수님은 이런 식의 복음 전파를 하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반드시 이와 같이 넘겨지고 매질당하고 심판받는 것 이외에도 다른 식으로 복음의 전파와 증거를 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어떤 취급을 받게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원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은 바로 복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만약 인간이 선호하고 인간이 좋아할 수 있는 증거는 인간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개 선호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증거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높아짐으로 그가 믿는 하나님도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세에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높아지시고 인간은 그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넘겨지고 매질당하고 심판받게 되더라도 그 모습 속에서 하나님만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아지심으로 증거하지 않으시고 오직 나타내심을 통해서 증거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신 장면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당대에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위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의미가 이해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영광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 가장 본질적인 핵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증거의 핵심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증거하셔서 천국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복음을 통해 구원과 생명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높아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낮아짐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의 길을 알려줄 수 있고 복음의 증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말세는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미리 알려주시고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를 때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아버님 장례식을 치르면서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알려주셨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1월에 꿈에서 양복을 잘 차려 입고 교회에 오신 아버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2월에는 함께 근무하던 군인 분들이 자신을 데려다 준다고 하셨습니다. 3월에는 아버지 자신이 꿈에서 꽃으로 장식한 버스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를 데리고 가기로 하셨고 그 인도하심을 알리셨습니다. 그 인도하심은 복된 인도하심입니다. 갈 곳이 있고 상급과 영광과 칭찬이 있습니다. 할일을 다 마치시고 그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이유는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들어갈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복음 속에서 모든 천국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게 되면 우리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증거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를 성령님이 알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막]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말세에 복음증거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도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과연 무슨 말을 하면서 복음이 전파되게 할 수 있을까는 고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는 원래 평이했던 상황에서의 대처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는 단순히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이나 교회를 다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상의 말이 필요합니다. 천국의 존재를 증거하거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거나 예수님의 사랑하심을 고백하거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는 말은 진실한 신앙고백이고 간절한 주님께 대한 의지이며 분명한 인생관입니다. 그렇게 분명하게 준비했을 때 그 다음에 당면하는 어려운 상황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혹독한 일들속에서도 분명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막]13: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막]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가족관계가 파괴되어서 형제와 형제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 대적하게 될 때에 그 상황은 얼마나 잔인하며 비참한 상황입니까? 그런 일들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이 세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말세의 가까이 옴과 그런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서 미움을 받게 될 때에 끝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견딘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고 소망을 굳게 붙들어서 마침내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잃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소망 속에서 복음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분명하게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가장 진실하고 온전한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에는 욥의 인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은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 속에서 결코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부인하거나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서 인내하였고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하였으며 그 뜻을 따르는 자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 가족인 아내가 그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욥]2: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을 대적하는 자는 그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마가복음처럼 끝까지 견뎠습니다. 맞서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적하는 가족을 응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차피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모든 수모와 고통을 견딘다면 형제가 형제를,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대적하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견딜 때에 욥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속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았고 마침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42: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욥의 진실함을 아시고 그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또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구원을 받는 자는 끝까지 견디는 자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견딥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를 살아가지만 그 말세는 앞으로 올 그 어떤 시간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말세 속에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그때가 언제 닥칠지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말세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견디는 자들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께 대해서 진실하며 사람에 대해서 의로움을 잘 유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세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들로서 더욱 하나님안에서 끝까지 견디고 견딤으로 마침내 약속된 구원과 상급을 온전히 누리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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