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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41막 13; 1-8 미혹에 대한 경고와 담대해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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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3; 1-8 미혹에 대한 경고와 담대해져야 하는 이유_1

  

 

  

2020. 4. 5. . 주일오전.

  

 

  

*개요: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 56충만, 2관점, 5복음서

  

[]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13: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13: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1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13: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3: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3월의 어려움이 4월에는 끝날 줄 알았지만 4월에도 여전히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4월에는 끝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상황은 상황대로 진행되고 있는 이 와중에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보았던 말세에 대한 징조와 경고를 마가복음13장에서 다시 보려고 합니다.

  

비슷해 보이는 말씀이지만 약간은 다른 성경의 기록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도 한번 볼 때에는 전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지만 다시 반복해서 보게 되면 좀더 세부적인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말세에 대한 내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가복음 13장에서 유월절을 앞두고 살펴보는 말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4월 첫째 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과 둘째 주에 있을 부활절의 의미를 더욱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24장 다음에 25장의 가르침이 있고 그 다음에 26장에서 마지막 유월절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말세에 대한 가르침이 마지막 유월절과 이어지는 십자가의 고난과의 연결성은 좀 약하지만 마가복음에서는 13장에서 말세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곧 이어서 14장에서 마지막 유월절의 사건이 나오기 때문에 연결성이 강합니다. 우리가 말세를 살펴보면서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마가복음의 의미를 잘 깨닫게 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가복음 13장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의 연결성입니다. 말세가 단순히 고통당하고 미혹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되면서 우리가 정말로 말세에 붙들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바람이 불면 몸을 가누기 힘들고 지탱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에 의지해야 합니다파도가 치면 이겨내기 위해서 대비를 해야 합니다. 번개가 치고 지진이 일어나고 난리가 일어난다면 우리에게는 의지할 그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고난과 환란 속에서 자연히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말세에서도 더욱 중요하게 강조되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할 때에 말세를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바로 그러한 의미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모든 무너지는 것들 속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십니다.

  

“[]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마태복음에서와 동일한 상황에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뒤에 있는 돌들과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성전에서 나가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그 뒤에 남겨진 성전건물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죄로 인한 심판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건물의 무너짐을 말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무너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보여줄 뿐입니다. 또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세의 모습은 단순히 죄에 대한 심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의 악함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보여주십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희생과 구원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건물은 무너지지만 그 건물은 다시 세워지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총반격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아군을 보호하고 적군을 무찌르는 과정입니다. 지금까지 수세에 몰려서 패색이 짙었던 아군을 다시 살리고 아군을 공격하던 적군에 대해서 분명한 우세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총반격을 감행합니다. 그럴 때 아군은 새 힘을 얻고 적군은 압도적인 공격에 기세가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재앙을 주실 때 무너지는 건물들만 보면 우리의 마음은 약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처럼 그 말씀 대로 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마음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분명한 예고를 해주셨고 그 예고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머쓱해질 뻔 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고 있고 우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은 성전을 나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전건물은 무너질 것이지만 예수님은 진실한 성전되시니 그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우리의 신앙은 건물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무너질 성전건물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따라갈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앞으로 될 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중요한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3: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13: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1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조용히 다가가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물어보지만 않는다면 주님은 다 대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죄지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죄에 이용당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친히 심판을 받으셨고 그 다음에는 심판을 행하러 세상이 오십니다. 이 원리를 잘 기억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느 때에 무슨 징조가 있을지를 물어보았지만 예수님은 원하는 것을 대답하지 않으시고 필요한 것을 대답하셨습니다. 어느 때를 알아서 그 때를 피하고 무슨 징조가 있을지를 알아서 그 때를 대비하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방법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였습니다.

  

그것은 어느 때에 심판이 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무엇이 징조인지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재림은 갑작스럽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재림이 갑작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인 이유는 그 재림이 심판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불시방문을 하는 이유는 미리 준비하고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항상 그 날과 그 시간에 집착하면서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주님을 잘 따라가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해야 하는 것은 그 날과 그 시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따르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알려주신 말씀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기 위해서는 항상 본질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여러 가지 사람의 미혹을 이길 방법은 그리스도의 뜻을 잘 깨닫고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일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 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가 언제든지 간에 항상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예수님과 진정으로 동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상휴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뭔가 잘하는 일이 있을 때 휴가를 보내주는 것인데 잘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고 휴가를 언제 보내줄 것인가만 생각한다고 해보십시오. 그런 사고방식은 자연히 포상받을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꾸만 휴가에만 집착하고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하게 됩니다. 말세 이후에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림의 시기와 징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정작 재림하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는 등한시 한다면 어느 때이든지 예수님이 오셔도 부끄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예수님 바로 한 분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할 때에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칭찬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혜에 대한 보답입니다. 새로운 물질이나 더 커다란 평안을 얻기 위한 칭찬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항상 인격적이고 신령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감당해 주십니다. 스승에게 교육을 잘 받은 제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제자의 훌륭함은 스승에게도 기쁨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승을 공경하며 잘 배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승에게 오만하고 무례하지만 실력이 뛰어나다면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의 거만함과 오만함 때문에 다시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모든 인간의 미혹을 극복할 수 있게 될 때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보여주십니다.

  

“[]13: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3: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해야 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앞으로 진행될 재난과 다양하게 닥칠 미혹들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때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심판들과 세상에 대한 정죄 속에서 잘 인도하심을 받아서 그 이후에 임하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끝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재앙의 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소망의 끝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계속적인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대로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그 모든 재난 속에서도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을 때 교회에는 커다란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스데반과 같이 집사가 되었던 빌립도 박해를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와중에 빌립을 인도하셔서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게 하시고 거기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길로 내려가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그에게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 두려워하지 않을 때 주님은 놀라운 인도하심을 주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예수님을 잘 따라갈 수 있습니다. 4월에 두려움이 아니라 사모함을 가지고 예수님을 잘 따라 나가서 이 달에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뜻을 이루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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