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충만] 40마 24; 29-31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Loading the player... 오디오: 2020_0329-111612.mp3 [크게보기]
40마 24; 29-31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_1
2020. 3. 29. 주. 주일오전.
*개요: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 56충만, 6통찰, 5복음서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3월 한달 동안 우리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은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씨름이었습니다. 보이는 재난의 모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로 인해서 생기는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만 않는다는 것 뿐이지 분명히 실체로서 존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러 가지 심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렸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전염병을 막기 위한 노력들로 인해서 사회는 멈춰 섰고 경제는 어려워졌으며 사랑하는 자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과 아픔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은 그 근원이 다만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그 결과는 너무나 치명적인 상황으로 나타나는 두렵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해당되는 사람이 있고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 피할 방법이 있기도 하고 피할 방법이 없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전염병에 대해서 사람들의 느끼는 괴로움은 처해 있는 위치와 당면하는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 나라를 휩쓸고 있는 이 전염병에 대한 고통이 모두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 전 세계를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전염병이 많은 사람들에게 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통의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공공의 의미에서는 그로 인한 피해와 나타나는 결과가 분명하지만 개개인으로 본다면 그 고통의 정도가 다양하게 경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마태복음 24장을 읽으면서 말세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도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전염병에 대처하는 것처럼 집에 꼭 틀어 박혀서 현관 밖을 나가지 않는다면 피할 수 있는 그런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재림은 보이지 않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앙 중에서도 전염병과는 달리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는 재앙이 있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재앙은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기근과 지진도 역시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림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결코 피할 수 없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하나의 중대한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재림의 전체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날 환난 후’라는 것은 말세의 환난을 의미합니다. 예비된 모든 환난이 다 일어난 다음에 갑자기 해가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달이 빛을 내지 않게 됩니다.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러한 하늘의 변화는 외면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안보고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오기 전 바로 직전의 일들이 이와 같이 일어납니다. 하늘의 변화는 앞으로 일어날 예수님의 재림이 전 세계적이며 전 우주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바로 직전까지 이 세상은 그 한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대한 심판과 죄에 대한 징계로 말미암아 세상은 무너지고 깨어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그 동안 하나님께 대해서 이 세상이 얼마나 강퍅하였고 불순종하였으며 대적하였는지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 전 여러 가지 기능이 하나씩 정지하는 것처럼 세상에 있던 하나님의 축복과 선물들은 하나씩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마침내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셨던 세상이 마침내 하나님에 의해서 종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멸망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환란이 있은 다음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고 그 재림 이후에 이 세상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종말이 이른다면 사람에 의해서 세상이 멸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세상의 종말의 권한과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그럴 권한과 능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커다란 전쟁이 일어나고 대규모의 핵폭발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 세계는 여전히 지속될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 시작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 마지막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는 때는 모든 것이 다 망하고 난 다음이 아니라 환난의 날들이 있은 후에 곧바로 하늘의 징조가 해, 달, 별, 천체에서 나타난 다음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세상의 종말 이후에 재림이 온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환난 이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고 그 재림이 오면서 세상이 종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임하게 되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우리는 30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 모든 하늘의 변화는 사실 인자의 징조였습니다. 이어지는 더욱 분명한 인자의 징조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시는 것을 예고하는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마치 일출 장면 때에 태양이 떠오르기 전 하늘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시기 때문에 하늘에는 인자의 징조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 때가 비로소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의 시간이 끝이 나는 때입니다. 세상의 종말은 세상이 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에 끝이 나게 됩니다. 시험 채점을 위해서 시험지를 걷을 때 비로소 모든 시험시간이 끝이 나는 것처럼 각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예수님이 판단하려고 오실 때에 세상의 시간은 끝이 납니다. 그렇게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주이시기에 큰 능력과 영광으로 오십니다. 더 이상 구세주로서의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이 아닙니다. 구세주이실 때 인간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었지만 심판주이실 때에는 더 이상 아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그 모든 환난과 고통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였다면 주님이 구세주가 되었겠지만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계속 주님을 의지하지만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확연히 갈리게 됩니다. 그 다음에 오는 심판주로서의 예수님은 오직 그 전까지의 믿음과 소망을 심판하실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승천하셨을 때부터 예수님에 대한 모든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시지만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 버리셨으니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경험적으로 제시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직 믿음으로 신앙을 갖는 구원의 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복음은 1세대 성도들의 사명과 충성을 통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졌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믿음을 도우시는 예수님께서는 항상 교회와 성도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환난 속에서 그 신앙과 믿음이 더욱 분명하게 된 다음에 마침내 예수님의 재림이 찾아옵니다. 도자기를 잘 만들고 뜨거운 풀무불에서 잘 구워서 꺼내었을 때 그 빛과 형상이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처럼 환난의 시간 속에서 예수님을 잘 의지하고 사모하는 자들이 세상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기쁨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임재는 커다란 슬픔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인자의 징조 후에 실제로 능력과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는 전 우주적인 사건은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부정과 부인과 거짓에 대한 심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탐관오리에게 암행어사의 출두는 재앙 그 자체입니다. 자신의 죄가 낱낱이 드러나고 그 죄에 대한 혹독한 판결은 지금까지 누리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한 상실이자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심판에 대한 절망입니다. 그와 같이 인자의 재림은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하고 슬퍼하는 일이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한 자들에게만 기쁨이요 소망이 될 뿐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담담하게 자신의 재림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사실은 그렇게 내려오실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이 이렇게 담담하게 표현하셔서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 때가 얼마나 극적이며 엄청나며 놀라운 시간이 될 것인가를 상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느낌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사실 일어나게 될 일은 너무나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스케일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환난과 그 이후에 오게 될 예수님의 재림은 전 세계적이며 전 우주적입니다. 더 이상 우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온 우주가 예수님 안에서 다시 재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마]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여기서의 그는 인자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그럴 때 천사들은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읍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다 나타나고 그 지역과 위치와 환경이 어떠하든지 전부 천사들을 통해서 예수님 앞으로 다 모이게 됩니다. 그러한 장면은 상상만 해도 감격이 넘칩니다. 인류의 역사가 지구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 그 연속선상에 우리가 서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전무후무한 난리의 경험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그 재림은 모든 믿는 자에게 허락해 주시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아 주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었든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아 주실 때에 즉시 그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지구 저 멀리 있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가장 외진 곳에 있다 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내려오실 수 있는 권능과 능력과 영광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권능과 능력과 영광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가끔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주님 만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어려움 속에서 피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의 끝에 우리가 만날 예수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언젠가 우리를 불러 주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서 도피하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비행기편이 없어서 전전긍긍할 때 계속해서 연락하고 조치를 취해주는 대사관을 통해서 마침내 피신할 방법이 생기고 결국에는 마련된 비행기를 타고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부르시면 달려나갈 구원의 비행기표가 있습니다. 그 표를 마음에 새기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 신앙으로 잘 견뎌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앞으로 나타나게 될 모든 환난 속에서도 더욱 주님을 붙드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예수님이 인자의 징조와 함께 하늘에 나타나시고 우리를 불러 주실 때에 기쁨으로 나아가서 그분 앞에서 우리가 통과했던 모든 환난과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얻고 예수님의 상급과 칭찬을 받으며 성령님과 함께 영생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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