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절망] 6수 2; 10-14 증표를 요구하고 그것을 내어준 이유Loading the player...
6수 2; 10-14 증표를 요구하고 그것을 내어준 이유_1
2020. 12. 20. 주. 주일오전.
*개요: 여호수아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소원, 4극본적해석, 33절망, 4용서,
[수]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2: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수]2: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수]2: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예수님이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이제 며칠 안남았습니다. 성탄절 이전에 4주전부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대강절, 혹은 대림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로교를 중심으로 한 개혁교단에서는 그런 교회력이 그리스도 보다는 성도들의 고행과 공덕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개혁교단에서는 오직 ‘고난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은 제한된 절기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사는 성탄절을 준비하는 마음자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고자 할 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구원을 받았으니 더 이상 고통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하나님 곁으로 우리를 데려 가십니다. 그 구원의 소망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면서 예수님을 잘 의지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올해 성탄절은 예년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전부터 해 오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교회 문화도 전통도 활동도 다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의 이 땅의 오신 의미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비록 문화도 전통도 활동도 사역도 없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마음에 품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귀한 결정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문화가 있고 전통이 있고 활동과 사역이 있다 하더라도 무의미한 성탄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개혁주의 교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의 것에 의미를 갖는 것을 지양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호수아서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리고성에 정탐을 왔던 두 명의 정탐꾼과 그들을 숨겨주고 구원의 증표를 요구하던 라합과의 이야기 속에서 나타납니다.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사건이 구원과 믿음이라는 주제 속에서 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상의 일치성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의 유사성을 생각해 보는 것뿐입니다.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왔던 두 명의 정탐꾼을 대하던 라합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믿음과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두 정탐꾼을 도와주었던 라합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수]2: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라합은 이미 두 정탐꾼을 지붕에 펼쳐놓은 삼대 사이에 숨겨놓았습니다. 삼대는 ‘the stalks of flax’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마(亞麻)의 줄기’라는 뜻입니다. 그 속이 숨을 만 했기 때문에 그 속에 정탐꾼들을 숨겼습니다. 그 자신의 생명도 위험해 질 수 있는 도피를 도와주는 위험한 일을 했던 이유는 바로 10, 11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라합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수]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이스라엘 백성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적을 무찌르게 하시며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하게 하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았을 때 여리고 백성들은 자신들이 도저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길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얼마나 좌절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서 라합은 특별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만 본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하늘과 땅에서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두 정탐꾼들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그에 대한 맹세와 증표를 요구하였습니다. “[수]2: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수]2: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진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절망과 낙심 속에서 그녀가 택한 방법은 이 정탐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살길이 없었기 때문에 정탐꾼들을 통해서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이 있고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직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 사람이고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온 사람들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증표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라합의 요청에 대해서 정탐꾼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수]2: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그들은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실 때에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증표를 준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안전을 보장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탐꾼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살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살려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자하고 진실하게 그를 대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여리고에 살던 기생이었지만 정탐꾼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과거에 무엇을 했든지 지금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스라엘에 의지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라합에게 정탐꾼들은 구원을 약속했으며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인자하고 진실하게 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하나님께 대한 진심을 보았으며 자신만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형제와 속한 사람들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착한 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라합은 그 증표와 맹세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유다지파의 살몬이라는 사람과 결혼해서 다윗의 계보에 이르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어떤 견해에는 이 라합과 결혼한 살몬이 정탐꾼 중의 한명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도 그런 이야기가 있어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 다른 한 사람이 만약에 여호수아의 아들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그 정탐꾼들이 해준 맹세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이었는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라합은 여호수아의 아들을 살려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예수님으로 돌아와서 이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정탐꾼 중의 한명이 여호수아의 아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려고 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목숨의 댓가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죽으심을 부정하지 않고 그 죽으심의 효과가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만 않으면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인자하고 진실하게 우리를 대우해 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함께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요한복음에 나타났습니다.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러한 구원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임마누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임마누엘 되심 속에서 우리는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증표를 요구하였고 그 증표를 맹세로 내어주었던 모습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주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그 구원의 약속을 맹세로 내어주십니다. 그 신뢰롭고 진실한 관계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의 의미를 잘 기억하고 2020년 모든 치장이 사라진 이 성탄절에 우리 각자에게 오신 예수님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주님께 대한 신앙과 증표를 기억하고 그 주님의 약속의 맹세 속에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강림하셨고 그분을 믿는 자들은 그 구원을 받는다. 2. 여리고의 라합은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만나서 그들을 도와준 다음에 구원의 증표를 요구하였다. 3. 두 정탐꾼이 라합에게 준 구원의 증표는 그들의 목숨을 대신하는 구원의 보장이었다. 4.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고 그분을 믿을 때 성탄의 의미를 온전히 이루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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