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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존경] 21전 1; 14-18 바람을 잡는가 하나님을 잡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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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14-18 바람을 잡는가 하나님을 잡는가_1

  

 

  

2021. 4. 25. . 주일오전.

  

 

  

*개요: 전도서에서 나타난 믿음의 소원, 4극본적해석, 44존경, 56충만, 3시가서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이번 달 전도서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일들 속에서 믿음의 소원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믿음과 배치 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신앙 생활이 이 세상에서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저 세상에서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신앙생활이라면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은 가장 부유한 삶을 살다가 가장 평안하게 세상을 떠나 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모습이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 속에서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다 이루었을 때 마침내 예수님처럼 할 일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삶 속에서 구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을 살다 보면 생활 속에 주어진 일들에 몰입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또한 반대로 하나님을 바라 보며 살아간다고 해서 생활의 일들이 저절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바라 보면서 살다가 극심한 궁핍이나 극도의 환란 속에 살아 갈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생활에 일들과 하나님의 일들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전도서에서 우리가 발견을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균형에 관한 일입니다. 너무 이 세상의 일에 매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일을 도외시하는 것도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될 때 비로소 우리가 찾는 균형이 완성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러한 균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전도자는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면서 그것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불가능은 없고 하지 못할 일은 없으며 그 모든 것은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다면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일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은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람은 다만 느낄 뿐이지요. 느끼고 경험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잡고 조절 하며 통제 하려고 했을 때 그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처럼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하려고 했으나 할 수 없었고 모자란 것을 채우고자 했으나 채울 수 없었습니다.

  

인생은 순간순간 그로 인해서 아쉬움과 탄식을 하게 되지만 전도자는 그런 한계 속에서 그 이상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전도자가 깨달은 새로운 유형의 지혜이며 온전한 의미의 믿음입니다. 구부러진 것을 굳게 할 수 있는 하나님과 모자란 것을 셀 수 있는 하나님을 묵상 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안에서 바라보고 사모한다면 그것은 바람을 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바람을 잡으려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잡으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는 하나하나가 헛되지 않고 의미가 있습니다.

  

 

  

전도자의 깨달음과 통찰은 우리에게 삶의 여러 가지 상황과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어야 할 것을 보여 줍니다. 그 다음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1: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크게 되기를 바랐고 지혜를 많이 얻기를 바랐으며 이전에 있던 모든 사람들 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지혜를 찾았고 지식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 속에서 그는 그 일들이 완벽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크게 되고 더 많이 얻으며 더 낮게 된다는 것이 사실은 작았음을 의미하고 부족했음을 의미하며 낮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전 세대 비교해서 더 나아지는 것을 생각했지만 그 또한 다음 세대가 되면 자신 보다 더 뛰어난 자들의 존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떤 비교 자체가 없어지려면 어떤 개념이 있어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완벽 그 자체 입니다. 완벽 그 자체가 있을 때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좋아지거나 더 나아지거나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전에도 완벽 했고 지금도 완벽하며 앞으로도 완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 헛됨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는다면 그것은 가장 놀라운 지혜가 됩니다. 세상 자체가 높지 않고 낮음과 많지 않고 적음과 높지 않고 낮음을 보여 주는 세계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 속에 있다면 피할 수 없는 이 헛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바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아무리 생각해 보고 아무리 알고자 하며 아무리 마음을 썼지만 그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그 대상은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지식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지혜가 많아도 그 지식이 더하여도 번뇌와 근심이 컸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고 그분의 계획은 완전 합니다. 그것을 바라 볼 때에 우리 마음은 충만해지고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게 됩니다.

  

전도서 의 말씀 속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다는 것의 의미를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거하는 자로 해야 할 일을 하지만 하나님을 붙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어느 한쪽에 치우치려고 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자로 하나님을 붙들고자 할 때에 우리의 삶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아니하고 기쁨과 충만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높으신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 하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장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 귀중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바라 보며 살아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전도자는 해 아래의 모든 일들이 바람을 잡는 것임을 깨달았다

  

2. 그는 더욱 높고 낫고 커지려고 했지만 그 노력 속에서 바람을 잡고 있었다.

  

3. 많아지고 더해질수록 번뇌와 근심이 커지는 이유는 바로 세상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4.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모든 의미를 이룰 수 있기에 성도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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